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인 신변잡담이나 말로 전하는 역사적 사실 등은 설화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설화 가운데 사실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사실 자체를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라기보다는 흥미와 교훈을 위해 사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설화는 구전됨으로써 그 존재를 유지해 가는데, 설화의 구전은 일정한 몸짓이나 창곡(唱曲)과는 관계없이 보통의 말로써 이루어지며 이야기의 구조에 힘입어 전승된다. 즉, 화자는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을 그대로 기억하여 고스란히 그것을 전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의 핵심되는 구조를 기억하고 이것에 화자(話者) 나름의 수식을 덧붙여서 전승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설화는 구전에 적합하게 단순하면서도 잘 짜인 구조를 지니며, 표현 역시 복잡하지 않다. 이 점이 구조와 표현에 있어서 복잡성과 특수성을 갖는 소설과는 다른 점이다. 또한, 설화는 율격을 가지지 않고 보통의 말로써 구연되기 때문에 산문적 속성을 지닌다. 이 점에서 서사민요·서사무가·판소리 등과 같은 율문서사(律文敍事) 장르들과 구분된다.
설화는 이야기를 하고 들을 분위기가 조성되면 언제든지 구연될 수 있는데, 이 점에서 어느 일정한 기회에 구연하는 노동요·무가·가면극과 다르다. 설화는 반드시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서, 화자가 청자를 대면하여 청자의 반응을 의식하면서 구연된다.
일반적으로 화자와 청자의 신분은 민중이라고 일컫고 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설화 중에는 양반이나 지식인 사이에서 발생하여 전승되는 것들도 제법 많다. 설화가 문자로 정착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진 것도 양반이나 지식인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문헌설화는 이미 구전을 벗어나고 가변성이 제거되어 엄밀하게 따지면 이미 설화가 아니나, 문자로 정착되기 전에는 구비전승되었을 것이고, 설화로서의 구조와 표현이 의식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설화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설화라는 용어 대신에 고담(古談)·석화(昔話)·민담(民譚) 등을 쓰기도 하나 고담·석화에는 그 용어 자체에 시간적인 제약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한 민담은 설화의 하위분류 가운데 하나인 민담과 혼동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설화의 대치어로는 부적당하다.
〔분 류〕
설화의 분류는 시대와 장소, 그리고 학자에 따라 매우 다양하지만, 보통 신화(神話, myth)·전설(傳說, legend)·민담(民譚, folktale)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이 셋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며, 서로 넘나들기도 하고 상호 전환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같은 3분법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설화의 하위 분류를 동물담·소담·형식담·신이담·일반담으로 나누는 5분법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3분법설을 따라 설화의 하위 종류에 대한 대체적인 차이를 항목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전승자의 태도
신화의 전승자는 신화를 진실되고 신성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일상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아 꾸며낸 이야기라고 인정할 수 있어도, 신화의 세계는 일상적 경험 이전에 또는 일상적 합리성을 넘어서서 존재한다고 믿고 그 진실성과 신성성을 의심하지 않을 때 신화는 신화로서의 생명력을 갖는다. 개천절이 국경일로 유지되는 한 단군신화(檀君神話)는 아직도 신화인 것이다.
전설은 전승자가 신성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으나 진실되다고 믿고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야기이다. 전설의 세계는 일상적 경험을 떠나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전설의 진실성은 끊임없이 의심된다. ‘사실이 아니고 전설일 따름이다.’라는 말이 가능하나, 전설은 사실로서의 근거를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증거물이 이를 입증한다.
민담의 전승자는 민담이 신성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진실되다고 믿지도 않는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을 적에……”라고 시작할 때부터 민담은 사실이 아니고 꾸며낸 이야기임을 화자는 선언한다. 신성한 무엇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실의 전달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흥미를 주기 위해서 민담은 구연된다.
(2) 시간과 장소
신화는 아득한 옛날, 일상적인 경험으로 측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태초에 일어난 일이고, 특별히 신성한 장소를 무대로 삼는 것이 보통이다. 단군신화의 태백산·아사달은 신성한 장소의 좋은 예이다. 신화의 진실성과 신성성은 그러한 시간과 장소가 갖는 진실성이고 신성성이기도 한 것이다.
전설은 구체적으로 제한된 시간과 장소를 갖는다. “이조 숙종대왕 시절 서울 남산골에……”라고 시작되는 것이 전형적인 예이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는 전설이 가지는 진실성을 뒷받침해 주는 구실을 한다.
민담에는 뚜렷한 시간과 장소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옛날 옛적 어느 곳에……”라고 하는데, ‘옛날 옛적’은 신화의 경우처럼 태초라는 뜻이 아니라 서사적인 과거일 뿐이고, ‘어느 곳’은 화자가 이야기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이라는 뜻이다. ‘옛날 옛적’과 ‘어느 곳’으로 화자나 청자의 직접적인 경험과는 구별되는 작품 세계를 자유로이 이룩할 단서가 마련된다.
(3) 증거물
신화의 증거물은 매우 포괄적이다. 천지창조 신화에서는 천지가 바로 증거물이고, 국가창건 신화에서는 국가가 바로 증거물이다.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다.’라는 의식이 바로 단군신화의 증거물이다.
전설은 이와 달리 특정의 개별적 증거물을 가진다. 바위에 관한 전설은 바위 일반을 증거물로 삼을 수는 없고, 어느 곳에 있는 어떤 모양의 바위만이 증거물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바위는 다른 바위와 구별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기에 화자가 늘 주목해 왔거나 쉽사리 찾아낼 수 있는 것이라야 하고, 그 생김새는 누구나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일수록 유리하다.
전설의 증거물은 자연물인 경우도 있고 인공적인 경우도 있고 인물인 경우도 있는데, 어느 것이나 전설을 떠나서도 알려질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전설은 이러한 증거물을 가짐으로써, 이미 알려진 근거에 호소해 진실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거물에서부터 출발하여 그 유래나 특징을 이야기로 꾸며낸 것이며, 증거물이 실재하니 이야기 역시 실제로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꾸며낸 의의가 있다. 증거물을 상실한 전설은 전승이 중지되거나 민담으로 전환된다.
민담은 이야기가 그 자체로 완결되며 증거물에 호소할 필요가 없다. 더러 증거물을 갖는다 해도 널리 존재할 수 있는 현상, 예를 들면 수숫대가 빨갛다든가, 수탉이 하늘을 보고 운다는 것 등이고,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첨부된다.
(4) 주인공 및 그 행위
신화의 주인공은 신이며, 그의 행위는 신이 지닌 능력의 발휘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신은 보통사람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신성한 자라는 뜻이지, 인간과 구별되는 절대적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전설의 주인공은 구체적·역사적 인물로서, 그의 행위는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사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않던 관계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전설의 주인공은 신화나 민담의 주인공보다 왜소하며, 예기치 못했던 관계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인간보다 사물이 중심이 된 전설도 있다.
민담의 주인공은 일상적인 인간이다. 비록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의 심리상태는 일상적인 차원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민담은 주인공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서 타인과 부딪쳐도 타인은 중요하지 않으며, 난관에 봉착하여도 결국은 이를 극복하고 만다. 그의 행위는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5) 전승의 범위
신화는 민족적인 범위에서 전승된다. 민족적인 범위에서 진실성과 신성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한 민족의 신화가 다른 민족의 것과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다른 민족에게는 신화로서 인정되지 않는다. 신화는 민족의 고대사, 실제적인 혹은 가상적인 역사와 관련을 가지고 민족적 융합을 위해서 신성성이 작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씨족적·부족적 신화도 있으나 민족적인 것으로 확대될 때 신화로서의 생명은 확대된다.
전설은 증거물의 성격상 대체로 지역적인 범위를 갖는다. 증거물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면 전국적인 전설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증거물은 일정 지역에서만 알려진 것이다. 한 지역의 전설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전체에게 알려져 있고 지역적인 유대감을 가지게 하는 구실을 한다.
민담은 지역적인 유형이나 민족적인 유형은 있어도, 어느 지역이나 민족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전승은 공동의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며, 분포는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특정 민족에게 흥미로운 민담이라면 약간의 수정만 가해도 다른 민족에게도 흥미로운 민담일 수 있다.
이상으로 신화·전설·민담의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설화 가운데에는 신화·전설·민담 중 두 가지 이상에 관련되는 것도 많으며, 이 셋 중 어느 것에도 포함시키기 곤란한 것도 있고, 야담·일화 등도 포괄하면서 구전설화와 문헌설화까지도 고려 대상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설화를 삼분하여 분류하는 것에 문제가 없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여러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설화의 분류 방법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자료수집〕
설화자료의 채록은 ≪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 등의 역사서나 ≪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읍지와 같은 지리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본격적인 설화집 간행은 15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弁齋叢話≫, 강희맹(姜希孟)의 ≪촌담해이 村談解蓬≫ 등이 대표적이고, 이들에 이어 17세기 전반에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 於于野譚≫이 나타났고, 19세기에는 ≪계서야담 溪西野談≫·≪청구야담 靑邱野談≫·≪동야휘집 東野彙集≫·≪동패낙송 東稗洛誦≫ 등의 설화집이 나왔다.
개화기 이후의 설화집은 주로 한국을 외국에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선교사들이 서구어로 간행하거나 한국통치의 부산물로 일본인이 일본어로 간행한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들은 동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원래 이야기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고쳐져 있어 자료집으로서의 가치는 크지 않은 편이다.
이 무렵에 간행된 설화집 가운데 의미 있는 것은 심의린(沈宜麟)의 ≪조선동화대집 朝鮮童話大集≫인데, 설화력(說話歷)은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한국인의 손으로 이루어졌고, 92편이나 되는 많은 설화가 채록되어 있는 점이 주목된다.
손진태(孫晉泰)의 ≪조선민담집 朝鮮民譚集≫은 일본어로 씌어졌다는 흠은 있으나 최초로 설화력이 명기되어 있고, 또 한국의 대표적인 민담이 154편이나 수록되어 있어 자료집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학술연구에 이용할 만한 자료집의 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69년부터 1981년까지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각 도별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가 간행되었으며, 개인과 학회에 의한 조사 보고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1979년에 시작하여 1980년부터 자료집이 나오기 시작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구비문학대계 韓國口碑文學大系≫는 전국의 각 군을 대상으로 한 방대한 자료집으로서, 구연 현장의 상황, 제보자, 그 지역의 역사·사회·문화 등을 수록하고, 구술자의 원문을 그대로 채록하는 등 자료 수집의 표본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것이다.
설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료 수집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설화의 전승 기반인 공동체의 해체, 대중매체의 확산으로 인한 직접적인 접촉 기회의 축소, 기록문학이 문학으로서의 역할을 전담해 가고 있는 점 등으로 설화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따라서 설화를 연구하고 전승하기 위해서는 현지 조사를 통한 자료의 채록이 무엇보다 시급히 요청된다 하겠다.
〔의 의〕
설화는 인류의 지혜와 정감이 농축된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오랜 세월 동안 지속성과 변화를 수반하면서 전승된 구비문학이다. 한때 설화는 웃음거리와 심심파적에 불과한 이야기라는 생각 때문에 소홀히 다루어지거나 기록문학의 보조 수단으로만 이용된 적도 있었으나, 설화는 그 자체로서 문학성을 지니며, 소설 등 여타의 기록문학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는 점에서 설화 자체에 대한 연구와 문학의 원천 및 문학사의 원류를 규명하는 연구의 두 갈래 작업이 요망된다.
≪참고문헌≫ 朝鮮民族說話의 硏究(孫晉泰, 乙酉文化社, 1947), 韓國說話文學硏究(張德順, 서울大學校出版部, 1970), 口碑文學槪說(張德順 外, 一潮閣, 1971), 韓國口碑文學選集(韓國口碑文學會, 一潮閣, 1977), 우리 民俗文學의 理解(김열규 외, 開文社, 1979),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 韓國口碑傳說의 硏究(崔來沃, 一潮閣, 1981), 民談學槪論(金烈圭 外, 一潮閣, 1982), 韓國說話의 類型(曺喜雄, 一潮閣,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