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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 처용가(處容歌)

지식창고지기 2009. 7. 4. 23:36

 

처용가(處容歌)


처용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脚烏伊四是良羅            

二 隱吾下於叱古二 隱誰支下焉古          

  本矣吾下是如馬於隱奪叱良乙何如爲理古

셔블 발기 다래
밤드리 노니다가
드러자 자리 보곤
가라리 네히어라
둘흔 내해엇고
둘흔 뉘해언고
본대 내해다마난
아자날 엇디하릿고

서울 밝은 달에
밤 늦도록 놀며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내 아내) 것이었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
본디 내 것이다만은(내 아내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겠는가.

* 옛글자가 지원되지 않아, 아래아는 ㅏ 로, 반치음은 ㅈ 으로 표기함 *

 

 

● <처용가> 배경 설화 처용탈을 쓰고 처용무를 추는 모습

  신라 제 49대 헌강왕 때에는 서울에서 지방까지 집과 담이 연이어져 있고 초가집은 하나도 없었다. 길거리에 풍악이 그치지 않고 비바람도 사철 순조로웠다.
헌강왕이 개운포(지금의 울산)에 놀이를 베풀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홀연히 구름과 안개가 일고, 천지가 캄캄하여 앞길조차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괴이하여 좌우에게 물어보니 일관이 여짜옵기를 "이것은 동해용의 조화이오니, 무슨 좋은 일을 행하여 이를 풀어야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소관 관리에게 칙령을 내려서 용을 위하여 그 근처에 절을 세우도록 하였는데, 이 칙령이 내리자 구름과 안개가 다 개었다. 그래서 거기를 개운포(開雲浦-구름이 개인 포구)라 불렀다.
  동해의 용은 기뻐서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어전에 나타나서 왕의 덕을 찬송하여 노래하고, 음악을 올리며 춤을 추고, 그 한 아들을 왕께 주었다. 함께 서울에 와서 정치를 보좌하게 하였다. 이 용의 아들이 처용이다. 왕은 처용을 오래 멈추어 두기 위해서 아리따운 아내를 주고, 또 벼슬을 주었다.
처용의 아내는 절세의 미인이어서 역신이 그를 흠모해서 사람의 모양으로 변신을 하고, 어느 날 밤 그의 집에 이르러서 몰래 함께 자고 있었다. 처용은 바깥에 나갔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둘이서 함께 자고 있는 지라 자기는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물러났다. 이 때에 역신은 모양을 나타내고 처용의 앞에 꿇어 앉아서 "제가 공의 부인을 흠모하여 지금 범했는데, 공이 보시고도 노여워 하지 않고 도리어 노래를 부르시니 이 후로는 공의 모습만 있는 곳이라도 결코 들어가지 않고, 피하리다." 하고 사죄하였다.
그로부터 나라 풍속에
처용의 그림을 문간에 붙여서 역신의 해를 피하곤 하였다.
이때 처용이 지어부른 노래를 <처용가>라 하고, 춘 춤을 처용무라 하여 후대까지 전해내려왔다.
한편 설화에서는 처용을 동해 용왕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당시 울산 지방에 있었던 호족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혹은 당시 신라에 내왕하던 아라비아 상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  문이나 지붕에 처용 그림을 붙이게 된 기원
이 노래는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조에 실려 있다. 처용은 용왕의 아들로 경주에 들어가 예쁜 아내를 얻고 급간 벼슬을 하였다. 밤에 그의 아내가 역신과 함께 동침하는 것을 보고 이 노래를 불렀더니 그 역신이 물러났다고 한다. 뒤에 처용의 화상은 역신을 내모는 기능을 하여
문신(門神)이 되었다.

 

 

● 처용은 무당이다?
역신(疫神)을 물리치기 위한
축사(逐邪-사악함을 쫓음)의 노래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집단적인 주술성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의 가사는 매우 개인적이며, 보통 사람들의 공통적인 정서가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이 노래에 쓰인 영탄의 표현 기법은 분노와 슬픔, 체념과 관용의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함축하면서 전체적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킨다. 이러한 양면성으로 인하여 이 노래는 종교적, 역사적, 축사 및 벽사진경의 시각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전반 4구는 아름다운 아내를 탐한 역신의 침범을, 후반 4구는 역신에 대한 처용의
관용 또는 체념을 노래하고 있다.
배경설화에 의하면, 결국 역신은 처용의 관용에 감복하는데, 이리하여 처용의 형상이 벽사진경의 효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처용은 무당으로, 처용의 형상은 부적으로 이해되기도 함으로써 이를 무가(巫歌)로 분류하기도 한다.
역신이 처용의 너그러운 태도에 감복하여 자신의 본체를 밝히고 물러간 내용과 관련하여 무속(巫俗)에서는 아무리 악한 신이라도 즐겁게 하여 보낸다는 풍속과 한국인의 여유있는 생활의 예지를 엿볼 수 있다.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라는 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처용의 초월적 관용성을 보여 주는 것으로, 체념은 결코 무력함이 아니라 하나의 아름다운 결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처용의 이야기는 뒤에 처용무, 처용희 등으로 극화되었으며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이 노래와 춤이 지속되었고, 12월 그믐에 잡귀를 몰아내는 나례 때에 처용놀이를 하기도 했다. 처용랑 망해사 설화에는 망해사 창건에 얽힌 이야기와 그리고 몇 차례에 걸쳐 나라가 망할 것을 신이 미리 예고했지만 왕과 신하들은 방탕한 생활에 젖어 끝내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처용가>의 내용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민속학의 관점에서 처용을 무속과 관련하여 보는 견해와
둘째, 정치사의 관점에서 처용을 지방 호족의 아들로 보는 견해
셋째, 신라 시대에도 멀리 서역(지금의 인도) 지방과 교역이 있었다고 보아 처용을 이슬람 상인으로 보려는 견해 등이 있는데, 처용을 무속과 관련하여 보는 견해가 가장 타당할 듯하다. 이는 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자고 있는 것을 보고도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물러났다'고 하는 것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무격사회에나 있을 법한 풍습이기 때문이다. 또한 악신(惡神)이라도 즐겁게 해서 보낸다는 무속의 풍속과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 <처용가> 정리
* 출전 : 삼국유사
* 연대 : 헌강왕
* 형식 : 8구체
* 성격 : 축사(逐邪), 벽사진경 (酸邪進慶-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아들임)
* 주제 :
아내를 빼앗은 역신을 쫓은 벽사의 노래
* 의의 1) 벽사진경의 민요에서 형성된 무가
          2) 의식무 또는 연희의 성격을 띠고 조선 시대까지 계승
          3) 현전하는 신라 최후의 향가
* 시상 전개
   1 - 4구 : 역신의 침범
   5 - 8구 : 처용의 관용

 

 

 

천년 전, 죽음 앞에 뿌린 월명의 눈물


   인간의 죽음을 노래한 향가에 <제망매가>가 있다. 작가 월명은 이 노래를 젊은 나이로 죽은 누이 동생을 위해 바쳤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왕조의 역사와 풍속은 변해도 '죽음'을 생각하는 인간의 비극만은 한결같다. 천년 전 죽음 앞에 뿌린 월명의 이 눈물이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감동적인 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라인의 마음을 간직한 한국인일 뿐이다.
   <제망매가>에서 보는
신라인의 사생관은 어떤 것이었을까? 인간이 살고 있는 자리를 월명은 '생사(生死)길'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두려움 속에서 생사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며, 할 말도 다하지 못한 채 죽음이 오면 그 길로 가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절실한 것만이 아니다. '말도 못다 이르고 간다'는 말에서 우리는 현세의 한계에 체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참으로 묘한 표현이다. 생을 하나의 이야기의 내용으로 본다면 그 말을 다하고 죽을 때는 한이 없는 것으로 보았다. 지금도 우리는 '여한이 없겠다'거나 '죽어도 억울하지 않겠다'는 말을 쓴다. 무작정한 생의 욕망, 끝없는 인생을 바란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생만을 다 살면 죽음이란 그렇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라인은 추상적인 죽음 자체에 공포를 느꼈다기보다 '제 명을 다 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제망매가>에서도 '말도 못다 이르고 가야 하는가?'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가을날 떨어지는 나뭇잎 자체에 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철 이른 바람에 떨어지는 그 잎 - 이른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을 애석히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월명사의 눈앞에 어른거리는
죽음이란 도끼와 사슬을 가진 검은 악마로서 그려진 서양인의 죽음과는 또 다르다. 죽음이란 가을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하나의 계절로서 나타난다. 먼 곳에서 내습해 오는 적군이라기보다는 나뭇잎이 지는 현세의 한 조용한 질서였다. 저항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바람이 불면 떨어져야 한다. 다만 그 비장감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잎이 떨어진다는 것보다 똑같은 한 가지에서 자란 나뭇잎이면서도 떨어질 때는 제가끔 뿔뿔이 흩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가끔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는 괴로움이다.
   그것은 '내가 죽는다'는 슬픔이 아니다. 내가 너와 같은 핏줄기(여동생- 한 가지)와 함께 죽을 수 없는 것의 서러움이었다. 월명사가 나무를 통해서 죽음을 파악했다는 것은 한 가족이라는 현세의 핏줄기를 통해서 그것을 인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싣달타의 죽음은 '누구의 죽음인가'가 문제가 아니었다. 싣달타가 동문에서 본 시체는 아무런 속세적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자로의 죽음을 보고 애통한 예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월명사는 그러한 일반적인 생의 한 조건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또 나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누이 동생의 죽음이 문제가 된다. 나와 누이동생의 관계를 끊어 놓은 것으로서의 죽음, 이별로서의 그 죽음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월명사는 마지막에 죽음의 비장감에 이러한 처방을 한다.
        '미타찰에 만날 나는 도(道) 닦아 기다리겠다.'
   
죽음의 극복은 현세적인 것으로부터의 해탈이라기보다 만남에 있다. 만난다는 것은 현세의 관계를 지속시키려는 감정이다. 불도를 닦는 것도 바로 이 관계의 지속에 있다. 이별을 없애는 것은 만남이며, 그 만나는 장소는 내세든 지옥이든 현세 안의 것이다. 지금도 아녀자들은 임종의 무렵에서, 자기의 죽음보다는 그 죽음 때문에 일어나는 현세의 변화에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어린 자식들 때문에, 혹은 풀지 못한 원한 때문에 눈을 감지 못하겠다고 한다. 죽음은 이렇게 현세의 단절이 아니라 도리어 강력한 현세와의 또 다른 맺음(변화)의 형태로 파악되는 것이다.             

 - 이어령, <신화 속의 한국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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