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바다위에 떠있는 섬 사량도에는 봄은 일찍 찾아오지만 가을과 겨울은 늦다. 입동이 지나고 이미 된서리가 내린 육지 단풍은 찬바람에 낙엽으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사량도는 이제 시작이다. 단풍나무가 많지 않아 빛깔은 화려하지 않지만 수려한 산세와 어우러진 단풍은 유명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사량도 단풍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그린 한 폭의 수채화 같고 동양화를 닮은 품격이 있다. #뱀 많고 닮아 작명된 사량도
사량도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한다. 멀리 바다 가운데 떠있는 산을 바라다 보며 다가가는 것도 지리산을 찾는 매력 중 하나다. 처음에는 산의 실루엣만 보이다가 다가갈수록 모습이 뚜렷해지는 뾰족한 바위 봉우리와 천애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세에 놀라게 된다. 지리산의 수려한 산세와 매력은 오래전부터 산 꾼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온다.
뱀이 많아, 또는 뱀을 닮았다고 이름이 붙었다는 사량도는 행정구역상으로 통영시 사량면에 속한다. 사량면은 윗섬과 아랫섬, 수우도 등 3개의 유인도와 누에섬과 죽도 등 6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행정구역과 달리 섬이 위치한 곳은 고성군과 사천시 삼천포와 더 가깝다.
[img2] 면사무소와 면단위 기관이 자리하고 있는 윗섬에는 동서로 뻗은 산줄기가 솟아 있다. 지리산(398m)~불모산(399m)~가마봉(303m)~옥녀봉(261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높이는 낮지만 육지의 여느 산에 뒤지지 않는 산세를 지녔다. 지리산의 본래 이름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을 바라다보는 산이라는 뜻에서 지리망산이었다가 최근에 지리산으로 줄여 부르고 있다.
지리산 산행은 보통 돈지나 내지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진행한다. 배편이 여의치 않으면 면소재지 금평에서 하선하여 배 시간에 맞춰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이용, 돈지까지 갔다가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야생초산행은 마을버스 운행시간이 맞지 않아 옥동에서 시작하여 성자암~갈림길~지리산~갈림길~불모산~가마봉~옥녀봉~금평으로 하산했다. #기름나물 꽃은 폭죽놀이 중
성자암까지는 임도를 따라간다. 임도주변에는 산국과 개쑥부쟁이, 구절초, 이고들빼기 등 국화과식물이 대부분이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속은 송악과 마삭줄, 자금우 등 늘푸른식물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섬이나 바닷가에서 주로 발견되는 천문동을 볼 수 있었으나 벌써 줄기가 노랗게 말랐다. 그 옆으로 하얀 꽃이 있어 다가서니 ‘기름나물(아래 사진 오른쪽)’이다.
‘기름나물’은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피는 산형과 식물로 드물게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도 발견이 된다. 바다에 둘러싸인 사량도는 육지보다 계절이 늦게 찾아오기 때문일까, 꽃 한 송이 잎 한 장 다치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있다. 자리한 곳이 숲속이라 서리를 피할 수 있었고 보온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우산살처럼 활짝 펼친 꽃차례가 폭죽놀이를 하는 것 같다.
성자암은 산행 중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성자암을 지나면 해송이 우거진 숲속으로 길은 이어진다. 길가에는 못다 핀 꿀풀과의 산박하와 둥근배암차즈기가 마지막 꽃을 매달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차례 한파라도 몰려오면 이들 식물의 생체시계도 멈추고 말 것이다. #숲속 열매 매단 키작은 나무들
숲속에는 열매를 매단 키 작은 나무가 많다. 청미래덩굴의 빨간열매, ‘작살나무’(맨 위 사진)의 보라색 열매. 덜꿩나무와 가막살나무의 붉은 열매가 풍년이다. 이 중에 ‘작살나무’의 보라색 열매가 가장 인상적이다. 여름에 피는 ‘작살나무’의 분홍색 꽃은 작고 보잘것 없지만 가을에 익는 열매가 더 예쁘다. 마편초과인 ‘작살나무’라는 이름은 이 나무의 생김에서 유래했다. 잎과 가지는 항상 마주나서 갈라지기 때문에 그 모양이 마치 고기 잡을 때 사용하는 작살을 닮아 얻은 이름이다.
산행은 능선 갈림길에서 지리산을 갔다가 되돌아와 불모산으로 향했다. 능선에 올라서면 전망이 좋은 암릉과 바위가 많아 조망이 빼어나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멀리 지리산이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사천과 고성, 남해의 산과 섬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나무없어 트인 조망 일품 ‘불모산’
갈림길을 다시 지난 산길은 불모산을 향해 솟아오른다. 위태로운 바윗길 급사면을 힘들게 오르면 달바위 정상이다. 이 봉우리가 달맞이를 했다고 전해지는 지리산의 최고봉 불모산(399m·不毛山)이다. 나무가 없어 붙여진 이름으로 사방으로 확 터인 조망이 일품이다.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옥녀봉으로 나아가는 암봉이 설악산의 한 부분을 옮겨다 놓은 듯하다. 아랫섬과 윗섬사이를 갈라놓은 동강의 푸른 물이 흡사 강물이 흐르듯 굽이치고 있다.
불모산의 급경사를 타고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타나고 길은 우회로와 험로로 갈라진다. 그대로 직진하면 위험한 암봉과 직벽을 올라야하는 험로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처음 로프가 깔려있는 바위를 타고 오르면 가마처럼 생겼다는 가마봉이다. 가마봉을 내려서는 구간에는 철 계단이다. 말이 철 계단이지 경사가 너무 가팔라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한 곳이다.
가마봉을 넘어면 이번에는 로프가 여러 군데 걸려있는 위험한 바윗길이다. 아래서 올려다보면 거문고를 닮아 탄금대라 부르는 수직암봉이다. 이곳에는 로프가 하나만 걸려있고 길도 외길이라 주말이면 지체가 심한 곳이다. 탄금대를 지나면 줄사다리가 기다리는 암벽 내리막, 이곳도 경사가 보통이 아니라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쇠파이프가 설치된 난간을 조심스레 지나면 옥녀봉이 바로 앞에 기다린다. 욕정에 눈먼 홀아버지로 인해 몸을 던져 죽은 옥녀의 애절한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img1] #바위 겉 촛대처럼 선 하얀 ‘바위솔’
옥녀봉에 이르기 전 남쪽바위 겉에서 촛대처럼 선 하얀 꽃을 발견했다. ‘바위솔(왼쪽)’이다. 돌나물과의 다육식물인 바위솔은 햇볕이 잘 드는 바위 겉이나 메마른 곳에서 자란다. 오래된 기와지붕에서 자라는 소나무라하여 와송(瓦松)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곳 지리산의 바위 겉에는 ‘바위솔’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발견이 쉽지 않았다. 특히 꽃이 핀 ‘바위솔’을 찾기란 더욱 힘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와지붕이나 바위 겉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남획되어 귀한 식물이 됐다.
옥녀봉을 내려서는 길도 쉬운 길은 아니나 철 계단이 놓이고 손잡이가 설치되었다. 이곳만 내려서면 이 후 평범한 산길이 이어지고 내려다보이는 금평까지는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등산에 걸리는 시간은 4~5시간이면 충분하나 때때로 암벽에서 지체가 심하기 때문에 넉넉하게 잡는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