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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끼전> 읽어보기 1

지식창고지기 2009. 7. 31. 10:35

<장끼전> 읽어보기 1

<장끼전> 읽어보기 2


  천생만물이 저마다 복이 있으니 일포식(一飽食-한 톨의 음식)도 재수라고 점점 주워 들어갈 제, 난데없는 붉은 콩 한 낱 덩그렇게 놓였거늘, 장끼란 놈 하는 말이,
   "어화, 그 콩 소담하다
(탐스러워 먹음직하다)! 하늘이 주신 복을 내 어찌 마다하랴? 내 복이니 먹어 보자."
  까투리 하는 말이,
  "아직 그 콩 먹지 마소. 설상(雪上)에 유인적
(有人跡-사람의 자취 있다)할지니 수상한 자취로다. 다시금 살펴보니 입으로 훌훌 불고 비로 싹싹 쓴 자취 심히 괴이하니, 제발 덕분 그 콩 먹지 마소."
  장끼란 하는 말이,
  "네말이 미련하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동지 섣달 설한(雪寒)이라 첩첩이 쌓인 눈수꿩(장끼)이 곳곳에 덮였으니, 천산(千山)에 조비절
(鳥飛絶-새가 나는 것이 끊어짐)이요 만경(萬經-만 개의 이랑. 넓은 땅)에 인적멸(人跡滅-사람의 자취가 없다)이라 사람 자취 있을쏘냐??"
  까투리 이르는 말이,
  "시기는 그럴 듯하나 간밤에 꿈을 꾸니 크게 불길하온지라 자량처사
(自量處事-스스로 헤아려 일을 처리함)하옵시오."

  장끼가 또 하는 말이,
  "내 간밤에 한 꿈을 얻으니 황학을 빗겨 타고,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께 문안드리니 상제께서 나를 산림처사로 봉하시고, 만석고에서 콩 한 섬을 내주셨으니, 오늘 이 콩 하나 그 아니 반가우냐? 옛글에 이르기를 '주린 자 달게 먹고 목마른 자 쉬 마신다' 하였으니 주린 배를 채워 봐야지."
  까투리 또 말하기를,
  "그대의 꿈은 그러하나 이내 꾼 꿈 해몽해 보면, 어젯밤 2경 초에 첫잠이 들어 꿈을 꾸니,북망산 음지쪽에 궂은비 흩뿌리며 청천에 쌍무지개 홀연히 칼이 되어 그대의 머리를 뎅겡 베어 내리치니, 그대가 죽을 흉몽에 틀림없으니 제발 그 콩은 먹지 마소,"
  장끼 또한 그대로 있지 아니한다.
  "그 꿈 염려마라! 춘당대 알성과에 문관 장원으로 참례하여 어사화 두 가지를 머리 위에 숙여 꽂고 장안 큰 거리로 왔다갔다할 꿈이로다. 과거에나 힘써 보세나."
  까투리가 다시 하는 말이,
  "3경야에 또한 꿈을 꾸니 천근들이 무쇠가마 그대 머리 흠뻑 쓰고 만경창파 깊은 물에 아주 풍덩 빠졌기로, 나 홀로 그 물가에서 대성통곡하였으니, 이 아니 그대가 죽는 꿈이 아니겠소. 부디 그 콩 먹지 마소."
  장끼 또 하는 말이,
  "그 꿈은 더욱 좋구나! 명나라가 중흥할 때, 구원병 청해 오면 이 몸이 대장되어 머리 위에 투구 쓰고 압록강 건너가서 중원을 평정하고 승전대장 될 꿈이로다."
  까투리는 또 말한다.
  "그는 그렇다 하려니와, 4경에 꿈을 꾸니 노인은 당상에 있고 소년이 잔치를 하는데, 스물두 폭 구름 차일을 바쳤던 서발 장대가 별안간 우지끈 뚝딱 부러지며 우리들의 머리를 흠뻑 덮어 버렸으니 어찌  답답한 일을 볼 꿈이 아니리까? 5경 초에 또 꿈을 꾸었는데 낙락장송이 뜰 앞에 가득한데 삼태성 태을성이 은하수를 둘렀는데, 그 중 별 하나가 둑 떨어져 그대 앞에 걸려졌으니 그대 별이 그리 된 듯 삼국 때의 제갈무후가 오장원에서 운명할 때도 장성이 떨어졌다 하옵니다."
  "그꿈도 염려할게 없으니라. 차일이 덮여 보인 것은 일모 청산 해저물어 밤이 되면 화초병풍 둘러치고, 잔디 장판에 등걸로 베개삼아 칡잎으로 요를 깔고 갈잎으로 이불삼아 너와 나와 추켜덮고 이리저리 궁글을 꿈이요, 별이 떨어져 보인 것은 옛날 헌원씨 대부인이 북두칠성 정기타서 제일 생남하였고, 견우직녀성은 칠월칠석 상봉이라, 네 몸에 태기 있어 귀한 아들 낳을 꿈이로다. 그런 꿈만 많이 꾸어라."
  까투리는 또 다른 꿈 이야기를 한다.
  "닭 울 때 꿈을 꾸니, 색저고리 색치마를 이내 몸에 단장하고 청산녹수 노니는데, 난데없는 청삽사리 압술을 악물고 와락 뛰어 달려들어 발톱으로 허위치니 경황실색 갈 데 없이 삼밭으로 달아날 때, 신 삼대 쓰러지고 굵은 삼대 춤을 추며 잘룩 허리 가는 몸에 휘휘친친 감겼으니 이내 몸 과부 되어 상복 입을 꿈이오니, 제발 덕분 먹지 마소. 부디 그 콩 먹지 마소."
  이 말을 들은 장끼란 몸은 매우 노해서 까투리를 이리 차고 저리 차며 하는 말이,
  "화용월태 저 간나위년 기둥서방 마다하고, 타인 남자 즐기다가 참바, 올 바, 주황사로 뒤쭉지 결박해서 이 거리 저 거리 종로 네거리를 북치며 조리 돌리고, 삼모장과 치도곤으로 난장맞을 꿈이로다. 그런 꿈 얘기란 다시 말라!  앞정강이 꺾어 논다."
  그래도 까투리는 장끼를 아끼는 마음에서 입을 다물지 않는다.
  "기러기 물가를 울어 옐 제 갈대를 물고 날음은 장부의 조심이요, 봉이 천길을 날을 수 있으되 주려도 좁쌀을 쪼아먹지 아니함은 군자의 염치로다. 그대 비록 미물인나 군자의 본을 받아 염치를 알 것이며, 닷소를 낙으로 삼고 백이숙제 주속을 아니 먹고, 장자방의 지혜 염치 사병벽곡 하였으니 그대도 이런 것을 본을 받아 근신을 하려거든 부디 그 콩 먹지마소."
  장끼 또한 그대로 있지 아니한다.
  "네 말이 무식하다. 예절을 모르거든 염치를 내 알소냐? 안자님 도학염치로도 삼십밖엔 더 못 살고, 백이숙제의 충절 염치로도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으며, 장량의 사병벽곡으로도 적송자를 따라 갔으니 염치도 부질없고 먹는 것이 으뜸이다. 호타하 보리밥을 문숙이 달게 먹고 중흥천자 되었고, 표모의 식은 밥을 달게 먹은 한신도 한국대장 되었으니, 나도 이 콩 먹고 크게 될 줄 뉘 알 것이랴?"
  까투리는 그래도 잠자코 있어선 안 되리라 여겨서,
  "그 콩 먹고 잘 된단 말은 내가 먼저 말하리다. 잔디 찰방수망으로 황천부사 제수하여 청산을 생이별하오니 내 원망은 부디 마소. 옛글응 보면 고집이 과하다가 패가망신한 자 그 몇이요. 최고의 진시황의 몹쓸 고집 부소의 말을 듣지 않고 민심 소동 사십 년에 이세 때 나라를 잃고 초패왕의 어린 고집 범증의 말 듣지 않다가 팔천 명의 제자를 다 죽이고, 면목이 없어져 자살하고 말았으며 굴삼려의 옳은 말도 고집불통하다가 진문관에 굳이 갇혀 가련공산 삼혼 되어 강 위에서 우는 새 어복충혼 부끄럽다. 그대 고집 과하다가 오신명하오리다."
그렇지만 장끼는 고집을 버리지 아니한다.
  "콩 먹고 다 죽으랴. 옛글을 보면 콩 태(太)자 든 사람은 모두 귀하게 되었더라. 태고적의 천황씨는 일만 팔천 살을 살았고, 태호복희씨는 풍성이 상승하여 십오 대를 전했으며, 한태조 당태종은 바람과 티끌이 이는 세계에서 창업지주
(나라를 세운 왕)가 되었으니 오곡 백곡 잡곡 가운데 콩 태자가 제일이라. 궁팔십(窮八十-강태공이 가난하게 살다 80살에 벼슬을 함) 강태공은 달팔십(達八十)을 살았고, 시중 천자 이태백은 기경 상천(고래를 타고 하늘에 올라감)하였고 북방의 태을성은 별 가운데 으뜸이다. 나도 이 콩 달게 먹고 태공같이 오래 살고 태백같이 상천해서 태을선관 되리라."
  장끼가 끝끝내 고집을 세우니 까투리 하릴없이 물러섰다. 그러자, 장끼는 얼룩 장목 펼쳐 들고 꾸벅꾸벅 고개짓하며 조츰조츰 콩을 먹으러 들어간다. 반달 같은 혓부리로 콩을 꽉 찍으니 두 고패
(덫의 일종) 둥그러지며 머리 위에 치는 소리 박랑사중에 저격 시황하다가 버금수레 맞치는 듯 와지끈 뚝딱 푸드드득 푸드드득 변통없이 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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