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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끼전> 읽어보기 2

지식창고지기 2009. 7. 31. 10:35

<장끼전> 읽어보기 2

<장끼전> 읽어보기 1


이 꼴을 본 까투리 기가 막히고 앞이 아득해서,
  "저런 광경 당할 줄 몰랐던가. 남자라고 여자 말 잘 들어도 패가하고 계집의 말 안 들어도 망신하네."
  위아래 넓은 자갈밭에 자락머리 풀어놓고 당글당글 뒹굴면서 가슴 치고 일어나 앉아 잔디풀을 쥐어뜯어가며 애통해하고 두 발을 땅땅 구르면서 성을 무너뜨릴 듯 대단히 애통해한다.
  아홉 아들 열두 딸과 친구 벗님네들이 불쌍하다 말하면서 조문 애곡하니 가련공산 낙목천에 울음소리뿐이었다.
까투리는 슬픈 가운에서도,암꿩(까투리)
  "공산야월 두견성은 슬픈 회포 더욱 섧다. 통감이 이르기를 좋은 약이 입에는 쓰나 병에는 이롭고, 옳은 말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롭다 하였으니, 그래도 내 말을 들었으면 이런 변 당할 리 없지, 답답하고 불쌍하다. 우리 양주 좋은 금실 누구에게 말할손가. 슬피 서서 통곡하니 눈물은 못이 되고 한숨은 비바람 된다. 가슴에불이 붙네. 이내 평생 어이할꼬."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장끼는 그래도 차위 밑에 엎디어서 하는 말이,
  "에라, 이 년 요란하다! 호환을 미리 알면 산에 갈 사람 어디 있겠느냐? 미련은 먼저 오고 지혜는 누구나 그 뒤의 일이니라. 죽는 놈이 탈없이 죽으라. 그것은 그렇거니와 사람도 죽고 삶을 맥으로 안다 하니 나도 죽지는 않겠나 맥이나 짚어 봐라."
까투리는 장끼의 말을 듣고 그대로 장끼의 맥을 짚어 보다가,
  "비위맥은 끊어지고, 간맥은 서늘하고, 태충맥은 굳어가고 명맥은 떨어지오. 아이고 이게 웬일이오,원수로다 원수로다. 고집불통 원수로다."
장끼란 놈도 하는 말이,
  "맥은 그러하나 눈청을 살펴보오.동자부처 온전한가."
  까투리는 장끼의 눈청을 살펴보고는 한숨을 쉬면서,
  "이제는 속절없네. 저편 눈의 동자부처 첫새벽에 떠나가고 이편 눈의 동자부처는 지금 떠나려고 파랑보에 봇짐 싸고 곰방대 붙여 물고 길목버선 감발하네. 애고애고, 이내 팔자 이다지도 기박한가. 상부도 자주 한다. 첫재 낭군 얻었다가 보라매에게 채여가고, 둘째 낭군 얻었다가 사냥개에 물려가고,셋째 낭군 얻었다가 살림도 채 못 하고 포수에게 맞아 죽고, 이번 낭군 얻어서는 금실도 좋거니와 아홉 아들 열두 딸을 남겨놓고 남혼여가 채 못 해서 구복이 원수로 콩 하나 먹으려다 차위에 덜컥 치었으니 속절없이 영이별하겠구나. 도화살을 가졌는가 상부살을 가졌는가, 이내 팔자 험악하다.불쌍토다 우리낭군, 나이 많아 죽었는가, 병이 들어 죽었는가.망신살을 가졌는가, 고집살을 가졌는가. 어찌하면 살려낼까. 앞뒤에 섰는 자녀 뉘라서 혼취하며 뱃속에 든 유복자 해산 구완 누가 할까. 운림초당 넓은 들에 백년초를 심어두고 백년해로 하잤더니 단 삼 년이 못 지나서 영결종천 이별초가 되었구나. 저렇게도 좋은 풍신 언제 다시 만나 볼까.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한탄 마라. 너는 명년 봄이 되면 또다시 피려니와 우리 낭군 이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미망일세 미망일세,  이 몸이 미망일세."
  한참  동안 통곡을 하니 장끼는 눈을 반쯤 뜨고,
  "자네 너무 서러워 말게. 상부 잦은 네 가문에 장가간 게 내 실수라. 이말 저말 잔말 말라. 죽은 자는 불가부생이라, 다시 보기 어려우리니 나를 굳이 보겠으면 내일 아침 일찍 먹고 차위 임자 따라가면 김천장에 걸렸거나, 전주장에 걸렸거나, 청주장에 걸렸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 감령도나 병영도나 수령도나 관청고에 걸렸든지 봉물짐에 얹혔든지 사또 밥상에 오르든지, 그렇지도 아니하면 혼인집 폐백 건치 되리로다. 내 얼굴 못 보아 서러워 말고 자네 몸 수절하여 정렬 부인 되어 주게. 불쌍하다  불쌍하다 이내 신세 불쌍하다.우지마라 우지 마라 .내 까투리 우지 마라. 장부 간장 다 녹는다. 네 아무리 슬퍼해도 죽는 나만 불쌍하다."
  그러고는 장끼는 기를 쓴다. 아래 고패 벋드디고 윗고패 당기면서 버럭 버럭 기를 쓰나 살 길은 전혀 없고 털만 쑥쑥 다 빠진다.

  이 때 창애(짐승을 잡는 덫의 일종) 임자인 턱첨지가 망을 보고 있다가 만신드리 서피 휘양모자 우그려 쓰고 지팡이를 걷어 짚고 허위허위 달려들어, 장끼를 빼어들고 희희낙락 춤을 추며,
  "지화자 좋을씨구, 안남산 벽계수에 물 먹으러 네 왔다냐? 밖 남산 작작도화 꽃놀이 하러 네 왔더냐? 탐식몰신 모르고서 식욕이 과하기로 콩 하나 먹으려다가 녹수청산에 놀던 너를 내 손으로 잡았구나. 산신님께 치성드려 네 구족을 다 잡으리."
하면서, 장끼의 빗문 혀를 빼내어 바위에 얹어 놓고 두 손 합장하고 빈다.
  "아까 놓은 저 차위에 까투리마저 치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꾸벅꾸벅 절하며 빌고 난 탁첨지는 어깨마저 들먹이며 내려간다. 까투리는 뒤미처 밟아서 가 바위에 얹힌 털을 울며불며 찾아다가 갈잎으로 소렴하고 댕댕이로 매장하고 원추리로 명정 써서 어린 소나무에 걸어놓고 밭머리 사태난 데 금정 없이 산역하여 하관하고 산신제와 불신제지내고 제물을 차린다.
가랑잎에 이슬받아 도토리잔에 따라  놓고, 속샛대로 수저를 삼아 친가 유무 형세대로 그렁저렁 차려놓고, 호상의 소임대로 집사를 나누어 정하니, 의관이 좋은 두루미는 초헌관이 되었고, 몸이 가벼운 제비는 접빈객이 되었으며,  말 잘하는 앵무새는 진설을 맡았다. 따오기는 제상 앞에 꿇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미망 까투리 감소고우 현벽 장끼 학생 부군 혼귀둔석 신반실당 신주기성 복유존령 사구종인 시빙시의'
  따오기의 축문이 끝난 뒤 제물을 철상할까 말까 하는 때 소리개 한 마리 떠오다가 주린 배를 생각하고 내려다보며,
  "어느 놈이 맏상제냐? 내 한 놈 데려가리라."
하고 주루룩 달려들어 두 발로 꿩새끼 한 마리를 툭 차가지고 공중에 높이 떠서 층암절벽 상상봉에 너울 덤썩 올라앉아 이리저리 뒤적뒤적하면서,
  "감기로 몸도 불편하여 십여 일 굶주려 입맛이 떨어졌더니 오늘에야 인간 제일미를 얻었구나. 문어 전복 해삼찜은 재상의 제일미요, 전초자반 송엽주는 수재중의 제일미요, 십년일경 해궁도는 서왕모의 제일미요, 일년장춘 약산주는 상산사호 제일미요, 저절로 죽은 강아지와  꽁지 안 난 병아리는 연장군의 제일미라. 굵으나 작으나 꿩새끼 하나  생겼으니 배고픈 김에 먹고 보자."
  너울너울 춤을 추다가 아차하고 돌아보니 꿩새끼는 바위아래로 떨어져 어디론지 자취없이 숨어 버렸다.
  소리개는 어안이 벙벙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탄식을 한다.
  "삼국 명장 관공님이 화용도 좁은 길에서 잡은 조조를 놓아 주었음은 대의를 생각하심이다. 험악한 연장군도 꿩새끼 놓아 주었으니 이는 또한 선심이라, 자손 창성하리로다."
  이 때 태백산 갈가마귀 북악을 구경하고 도중에서 배가 고파 요기를 하고서 까투리에게 조상하고 과실을 나눠먹고 나서 탄식하기를,
  "그 친구 풍신 좋고 심덕 좋아, 장수할 줄 알았더니, 붉은 콩 하나 잘못 먹고 비명 횡사한단 말인가, 가련하고 불쌍하다. 우리야 그런 콩 보기로 먹을소냐. 여보, 까투리 마누라님 들어 보소. 오늘 이 말씀하는 것은 체면으로는 틀린 일이나, 고담에 이르기를 장수 나면 용마가 나고 문장이 나면 명필이 난다 하였으니,당신은 상부하고 나는 상처하여 오늘 여기 오게 되니 삼물조합이 맞음이라, 꽃본 나비가 불을 주저하며 물본 기러기 어옹을 두려워하겠소. 그성세와 그 가문 내가 알고 내 형세와 내 가문 그대 알 터이니 우리 둘이 자수성가할 셈잡고 백년동락 어떠하오."
말하면서 함께 살자고 청한다.
  이 말은 들은 까투리는 하도 한심스러워 한 마디를 쏘아붙인다.
  "아무리 미물인들 삼 년상도 못 마치고 개가하는 법을 누구의 예문에서 보았소? 옛말에 운종용하고 풍종호라 하였고 여필종부라 하였는데 임마다 따라가겠소?"
  까투리의 말을 들은 까마귀 자기의 경솔함은 생각지 않고 크게 노해서,
  "네 말이 가소롭다. 시전 개풍장에 이르기를 유자칠인 하되 막위모심이라 하였으니 이는 사람도 일곱 아들을 두고 개가 해 갈 때 탄식한 말이다. 사람도 그렇거는 하물며 너 같은 미물에게 수절이 당할 말이냐? 자고로 까투리의 열녀 족문을 본 일이 없다."
  이 때 부엉이가 들어와 조상을 끝내고 까마귀를 돌아보며,
  "몸뚱이도 검거니와 주둥이도 고약하다. 어른이 오게 되면 몸을 일으켜 인사를 할 일이지 기거도 아니 하고 그대로 앉았느냐?"
하고 까마귀를 책망한다. 까마귀 그대로 있을 리가 없다.
  "완만한 부엉아! 눈은 우묵하고 귀가 쫑긋하면 어른이냐. 내 몸 겸다 웃지 마라. 거죽은 검지만 속까지 검은 줄 아느냐? 우연비과 산음하다가 이내 몸 검어진 것이다. 내 부리를 비웃지 마라.남월왕 구천이도 내 입과 방불하나 삼시로 장복하고 십년을 돌아들어 제후왕 되었는니라. 옛글도 모르면서 어찌 진정 어른을 홀대하느냐. 내일 식후에 통문 놓아 대동회 방 붙이고 양안에서 제명하리라."
  이렇게 까마귀와 부엉이가 다투고 있을 때 청천의 외기러기 운간에 떠올라가 우연히 내려와서 목을 길게 늘이고 좌우를 크게 책망하기를,
  "너희들이 무슨 어른이냐? 한나라 소자경이 북해상에 십구 년을 갇혀 있을 때 고국의 소식을 몰라하기로 한 장 서간 맡아다가 한나라 천자에게 바쳤으니, 이런 일을 보면 내가 먼저 어른이지 너희들이 무슨 어른이냐?"
  이 때 앞 연당 물오리가 일곱 번 상처하고 남녀간 혈육이 없어 후처를 구하더니, 까투리가 상부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혼도 아니 하고 혼인 잔치를 하겠다고, 옹옹 명암 기러기로 안부장이를 삼고 관관저구 진경으로 함진 아비를 하고 쾌활 좋은 황새를 후행을 삼았으며, 소리가 큰 왜가리로는 길잡이로 삼았고 맵시있는 호반새는 전간 하인을 삼았다.
  이날 전감 하인 호반새가 들어와 이르기를,
  "까투리 신부 계신가? 우리 신랑 들어가네."
  이 모양을 당하게 된 까투리는 울던 울음을 그치고,
  "아무리 과부가 만만타고 하지만 궁합도 아니 보고 이런 억지 혼인을 하자는 법이 어디 있노?"
뒤따라오던 오리가 나서서 하는 말이,
  "과부 홀아비 만났는데 예절 보고 사주 볼까? 신부 신랑 둘이 자연 궁합 되느니라. 그럴 것 없이 택일이나 하여 보세. 일상생기, 이중천의, 삼하절체, 사중유혼, 오상화해, 육중복덕일이요, 천덕일덕이 합하였으니 오늘 밤이 으뜸이라, 이성지합은 백복의 근원이니 잔말 말고 조금 자세."
 울고 있던 까투리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자네가 남아라고 음흉한 말 제법 하네."
  오리가 또 입을 연다.
  " 이내 호강 들어 보오,  영주 봉래 청강수에 모든 신선 배를 타고 완월장취하는 양을 역력히 구경하고, 소상 동성 넓은 물에 홍요백민 집을 삼아 오락가락 노닐면서 은린옥척 좋은 생선 식량대로 장복하니,천지간에 좋은 생애 물밖에 또 있는가?"
 물에서 사는 오리의 자랑을 듣고, 까투리도 잠자코 있지 아니한다.
  "물 생애가 좋다한들 육지 생애 같을손가. 육지 생애 이를테면 우리 생애 들어 보소. 평원 광야 넓은 들에 오락가락 노닐다가 층암절벽 높은 봉에 허위허위 올라가서 사해 팔방 구경하고 춘삼월 늦은 봄 객사청청 버들잎 새로울 때 황금 같은 꾀꼬리는 양류간에 오락가락 춘풍도리 꽃핀 밤에 초혼조 슬피 울어 불여귀하는 소리 초목과 금수라고 심회가 산란하니 그도 또한 경이로다. 추팔월 누런 국화  피었을 때 만산에 있는 실과 주워다가 앞뒤로 쌓아놓고 치장군의 좋은 옷과 춘지자명 우는 소리 고금에 비길 데 없다. 수궁 생애가 좋다 한들 육지 생애를 당할소냐."
 할 말 이 없는 양, 오리가 잠자코 있는데 그 옆에 조상왔던 장끼란 놈이 썩 나와서 하는 말이,
  " 이내 몸 환거한 지 삼 년이 되었으되 마땅한 혼처가 없더니 오늘 그대 과부 되자 내가 조상하러 왔음은 천장  배필을 하늘이 도우심이라. 우리 둘이 짝을 지어 유자 생녀하고 남혼여가시켜 백년해로함이 어떠한고?"
 이 말 들은 까투리 하는 말이,
  "죽은 낭군 생각하면 개가하기 야박하나, 내 나이를 꼽아 보면 늙도 젊도 아니한 중늙은이라. 숫맛 알고 살림할 나이로다. 오늘 그대 풍신 보니 수절 할 마음 전혀 없고 음란지심 발동하네. 허다한 홀아비가 예서 제서 통혼하나 유류상종이라 하였으니 까투리가 장끼 신랑 따라감이 의당 당한 상사로다. 아무러나 살아 보세."
  장끼의 통혼을 받아들이는 까투리였다. 까투리의 허락을 받은 장끼란 놈은 껄껄 뿌드득 하더니 벌써 이성지합이 되었다.
 이 모양을 보게 된 통혼하던 까마귀, 부엉이, 물오리들은 무안에 취해서 훨훨 날아가 버린다. 이 뒤를 따라 각색 손님들도 다 날아간다. 깜장새 호루룩, 방울새 딸랑, 앵무, 공작, 기러기, 왜가리, 황새, 뱁새 다들 돌아가 버린다. 이러자 까투리는 새 낭군 앞세우고, 아홉 아들 열두 딸을 뒤세우고 백설풍 무릅쓰고, 운림벽계로 돌아갔다.
  다음해 삼월 봄이 되매 남혼여가, 아들딸 다 여의고 자웅이 쌍을 지어 명산대천으로 노닐다가 시월이라 십오일에 양주부처 내외자웅과 함께 큰 물속으로 들어가 조개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이를 치입대수위합이라 하여 치위합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