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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문학으로 본 역사 <7> 神이라도 法의 결정 따라야

지식창고지기 2009. 8. 3. 17:30

주경철의 문학으로 본 역사 <7> 神이라도 法의 결정 따라야

아이스킬로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자비로운 여신들』

주경철 | 중앙선데이 제49호 | 20080216 입력
일러스트=남궁유
피의 보복!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으로 찾을 수 있는 현상이다. 부모형제에 대한 원수를 내 손으로 직접 처단하여 보복한다는 이 원시적 감정만큼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문제는 피가 다시 피를 부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데 있다. 때로는 대를 이어 내려가기도 하는 이 사적(私的) 복수의 연쇄는 사회 전체로 보면 결코 정의가 아니며, 어떻게 해서든 멈추도록 해야 한다. 과연 어떻게 원시적 복수의 연쇄를 중단시키고 공적(公的) 정의를 세울 것인가?

아이스킬로스의『오레스테이아』3부작은 이 문제를 정면에서 제기하고 있다. 『아가멤논』『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자비로운 여신들』이라는 세 편의 작품을 통해 펼쳐지는 아트레우스 가문의 비장한 피의 복수는 어떤 식으로 끝맺을 것인가?

지난번에 『아가멤논』을 소개하면서 살펴보았듯이 아가멤논은 신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지우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신에 대한 희생물로 바쳤고, 이에 원한을 품게 된 부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와 함께 아가멤논을 죽여 복수를 한다. 극의 말미에 시민들은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아직 살아있다면 언제건 운명의 손이 그를 고향으로 인도하여 두 사람을 살해할 때가 오리라”는 예견을 하는데, 이것이 두 번째 작품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 실현되는 내용이다.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에는 아들 오레스테스와 딸 엘렉트라가 있었는데, 오레스테스는 일찍이 이웃 나라에 피신해 있는 상황이고 엘렉트라는 노예 신분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자기가 낳은 뱀이 젖을 빠는데 젖 대신 피가 나오는 무서운 꿈을 꾼다. 극심한 공포에 빠진 그녀는 신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엘렉트라에게 아가멤논의 묘에 찾아가 술을 올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녀가 부친 아가멤논의 묘에 가 보니 어떤 청년이 머리카락을 잘라 묘석에 바친 것을 보게 된다. 자기 동생 오레스테스가 몰래 귀국하여 아버지의 묘소에 찾아와 경모(敬慕)의 정을 고하고 복수를 다짐한 것을 직감한 엘렉트라는 이제 동생과 함께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한다. 오레스테스는 우연히 찾아온 나그네인 척하며 왕궁에 들어가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만난다. 그를 알아보지 못한 어머니에게 당신 아들은 이미 죽었다고 거짓말로
안심시키고는 기회를 봐 그녀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모두 살해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은 좋지만 그러기 위해 어머니를 죽이는 것 또한 큰 죄가 아닌가? 과연 어떤 것이 더 정의로운 일인가? 원수를 갚는 것인가, 어머니의 목숨을 구하는 것인가? 그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라는 아폴론 신의 뜻에 따라 결국 어머니를 살해했지만 친족 살인이 일어나자 곧 피 냄새를 맡은 분노의 여신들이 오레스테스를 향해 달려든다.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고 부모 살인자에게만 보이는 이 여신들은 이 세상 어디를 가든 끝까지 살인자를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아, 저것을 보시오! 저 여자들! 고르곤처럼 검은 옷을 입고 머리에는 뱀들이 칭칭 감긴 저 여인들! 저들이 마구 몰려옵니다. 눈에는 증오에 찬 검은 피를 흘리면서!”
마지막 세 번째 작품인 『자비로운 여신들』에서 오레스테스는 아폴론 신의 도움을 받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아폴론은 그를 자기 신전에 보호하고는 있으나 분노의 여신들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는 없다.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 신들의 세계에서 올림포스의 열두 신, 심지어 최고신인 제우스라 하더라도 이러한 ‘군소’ 지방신(地方神)들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폴론 신은 오레스테스를 아테네로 보내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얻고자 한다. 그러는 동안 오레스테스를 보호하기 위해 분노의 여신들을 잠들게 하였지만 죽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망령이 나타나 이 여신들을 도로 깨워 그를 쫓도록 한다. 두런두런 소리를 내며 일어나 오레스테스의 피 냄새를 따라 다시 그를 쫓아가는 이 장면을 보던 임신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이후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 최고의 호러물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신과 인간, 게다가 죽은 자의 망령까지 원고와 피고 및 변호인으로 등장하는 이 희대의 난제를 떠맡게 된 아테나 여신은 아테네에서 중대 사건을 판결하는 기구인 아레오파구스 법정에서 재판을 열기로 한다. 여신은 판정을 내릴 열두 명의 아테네 시민을 데려오고 그 뒤에는 수많은 군중이 따라와 재판을 지켜본다.

아테나 여신은 이 재판의 의의를 중히 여겨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어떤 인간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두도록 하라.” 재판이 본격적으로 개시되기 전부터 분노의 여신 대표가 아폴론 신에게 “신의 관할이면 뭣이든 통치하시지만, 이 사건하고도 관계가 있으신지요?” 하면서 신경전을 벌인다.

원고(분노의 여신들)와 피고(오레스테스) 간 다툼의 쟁점은 우선 남편을 살해한 죄와 어머니를 살해한 죄 사이의 경중(輕重) 문제다. 오레스테스는 분노의 여신들에게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해서 나에게 비난을 가하지만 그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했을 때는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따지는데, 이에 대해 분노의 여신들은 피를 나눈 친족 살인자에 대해서만 응징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반박한다. 이때 변호인 자격으로 아폴론이 피고를 도와 제우스 신께서 신탁을 통해 말씀하셨듯이 집안의 부친에 대한 죄가 가장 큰 죄라고 발언하자 놀랍게도 분노의 여신들은 제우스 신까지 싸잡아 공격한다.

제우스도 자기 아버지 크로노스를 옥에 가둔 적이 있으니 “아폴론 신께서 방금 증언하신 것과 모순이 있다”는 예리한 지적을 한 것이다. 아폴론 신이 “이 저주받을 괴물들!” 하고 버럭 화를 낼 뿐 별로 신통치 못한 응답을 하더니, 재판장 아테나 여신께서 피고를 잘 보호하신다면 아테네 시민들에게 대대손손 좋은 동맹이 될 것이라는 ‘청탁성 멘트’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 논리 싸움에서는 오히려 원고가 한 수 위라는 느낌도 든다.

이제 최종 판결은 열두 명의 시민과 아테나 여신의 표결에 따라 결론이 내려지게 되어 있다. 재판관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단지 안에 표를 던지는 동안에도 분노의 여신들은 아폴론 신에게 “신은 억측을 요구하오. 이제 보니 신탁도 거짓이오” 하는 식의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아테나 여신은 제우스의 몸에서 직접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가 없어 피고에게 동정이 간다는 이유로 오레스테스 편에 한 표를 던진다. 그런 후 단지 속 표를 계산해 보니 시민 대표들의 의견은 6 대 6으로 갈린다. 결과적으로 아테나 여신의 한 표가 오레스테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제 오레스테스는 지긋지긋한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인자에게 들러붙어 괴롭히는 흉악한 역할을 해 왔던 분노의 여신들도 이 사건을 계기로 아테네 시를 보호하는 명예로운 선신(善神)으로 역할을 바꾸게 된다. 이런 식으로 이 3부작은 ‘해피엔드의 비극’으로 결말을 맺는다.
아레오파구스 법정의 판결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판결은 신들에 의해 내려진 저주의 연쇄, 그로 인해 몇 대에 걸쳐 지속된 복수의 문제를 인간이 만든 공식 제도를 통해 명료하게 끝맺은 것으로 되어 있다. 내 원수를 내 손으로 직접 처단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일지 몰라도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문명화가 진행되면 어느 시점에서는 사적 복수라는 원시적 해결 방식 대신 제도화된 사법기구가 공적인 판결을 내려야 한다.

이 작품에서는 신들도 사법제도의 규칙에 따르고 그 결정을 받아들인다. 『오레스테이아』는 심지어 신까지도 법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절대적 규칙을 고대 그리스인 스스로 인식하고 또 정당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