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남궁유 |
이렇게 주장하며 초강력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타고 해저 세계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신비의 인물, 거의 만능에 가까운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무서운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는 ‘까칠한’ 성격의 주인공,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가장 널리 읽혀 왔던 해양 모험소설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네모 선장이다. 네모(Nemo)는 사각형과는 관련이 없고 라틴어로 ‘누구도 아닌 자(nobody)’라는 뜻이다.
|
소설 속 화자인 프랑스인 아로낙스 박사는 세계의 바다 이곳저곳에 출몰하여 선박들에 피해를 주는 어떤 고래를 처치하는 사업에 동참하게 된다. 그를 보조하는 두 인물로는 해양 동물 분류의 전문가 역할을 하는 플랑드르 출신의 하인 콩세유, 그리고 건장한 체격에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프랑스계 캐나다인 작살꾼 네드 랜드가 있다. 네드 랜드가 한번 작살을 던지면 고래 한 마리의 심장을 꿰뚫고 또 다른 고래의 머리에 꽂혀 두 마리를 한 번에 잡는다. 조선에 임꺽정이 있으면 캐나다에 네드 랜드가 있다고나 할까….
그들은 미국 군함을 타고 바다를 헤매다가 드디어 문제의 ‘고래’를 만나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오히려 군함이 손상을 입고 난 뒤 세 사람은 ‘고래’의 등 위에 올라타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금속성 선박의 표면이었다. 이것이 바로 네모 선장이 지휘하는 잠수함 노틸러스호였던 것이다. 세 사람은 곧 이 배 안에 잡혀 들어가 네모 선장의 포로 겸 손님으로서 세계의 바다를 함께 여행한다.
네모 선장은 결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지만 막대한 부를 소유한 대부호로서 어떤 정치적 격변으로 큰 피해를 본 뒤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는 인물이 되었으며, 그 결과 문명 세계를 벗어나 해저에서 과학적 탐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주인공들이 전 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니며 관찰하는 신기한 해양 현상들을 접하게 된다. 그 가운데에는 순전히 허구로 지어낸 이야기들도 있지만 쥘 베른이 읽은 각종 여행기와 과학 서적의 내용들을 옮긴 것도 많다. 예컨대 암보이나 해안과 주변 바다에서 바다 색깔이 우윳빛으로 되는 우유바다 현상(젤라틴처럼 반투명하고 희미한 빛을 내는 몸길이 0.2㎜의 원생동물인 적충류가 모여 몇㎞가 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진주의 종류와 채취 방법, 생긴 모양 때문에 인어로 오해받으며 고기 맛이 좋아 남획되어 거의 멸종 위기에 몰린 듀공(dugong)이라는 동물, 또 이 작품을 통해 더욱 유명해진 몸길이 8m짜리 대왕오징어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도대체 네모 선장은 어느 나라 사람이며, 그를 바다로 내몬 그 사건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작품에서는 이 점을 일부러 모호하게 남겨놓았다가 다음 작품인 『신비의 섬』에서 밝히는 방식으로 처리했지만, 그러는 동안 저자의 원래 구상이 크게 바뀌고 말았다. 원래 네모 선장은 폴란드 귀족으로서 이 가문 사람들이 러시아의 폴란드 지배에 항의하는 봉기(1863)에 가담했다가 러시아 군에 의해 모두 학살당했기 때문에 그가 러시아에 대해 적개심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와 러시아는 동맹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에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러시아를 비판하면 외교 문제로 비화될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그의 소설이 러시아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출판사 측에서 이 부분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 결과 후속 작품에서 네모 선장의 미스터리가 밝혀지는 부분에서는 그가 원래 아메리카 인디언인데, 1857년 인디언의 봉기에서 영국인에 의해 일가친족이 몰살당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라이벌인 영국을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던 모양이다. 다만 선장의 방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이민족의 억압에 저항한 영웅들의 초상화들이 걸려 있는데, 그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이 “폴란드는 끝났는가!”라고 외치며 죽어간 코슈추슈코의 초상화라는 점이 원래의 구상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그러한 구상의 변화가 크게 문제가 되는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군함 한 척이 노틸러스호를 괴물 고래로 오인하고 포격을 가했는데 네모 선장은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배를 반드시 격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배는 “저주받은 나라의 배”, 즉 네모 선장의 불행을 가져온 국가의 선박이다. 이 배는 노틸러스호의 공격을 받아 모든 선원이 비참하게 익사하고 만다. 수많은 무고한 선원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이 부분이 너무 잔혹하지 않느냐고 출판사가 문제를 제기하자 저자는 격론 끝에 결국 이 배의 국적을 명백하게 밝히지는 않은 채 배를 침몰시키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엄청난 인명 살상을 하고 난 뒤 네모 선장은 자신의 방에 칩거한 채 괴로워한다. 이처럼 배의 지휘를 방기하는 동안 노틸러스호는 노르웨이 앞바다의 거대한 소용돌이인 메일스트롬에 말려들어가 위기를 맞는다. 아로낙스 박사와 두 명의 동료들이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 보니 세 사람이 어느 바닷가 오두막집에 누워 있었다”는 식의 고전적 방식으로 일단 이 책은 마무리되고, 뒷이야기는 후속작 『신비의 섬』에서 새롭게 전개된다.
『해저 2만리』는 지금부터 140년 전에 쓴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아직도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작품이다. 그 시대의 과학기술을 소개하는 측면도 생각보다 그렇게 구식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노틸러스호는 19세기 후반의 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전기산업과 기계산업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용골은 프랑스의 크뢰조 제철소, 구동축은 영국의 펜 회사, 선체의 철판은 리버풀의 레어드 회사, 기계류는 독일의 크루프 회사, 정밀기기는 뉴욕의 하트 형제 회사가 만든 다음 이 모든 것들을 가져다가 작은 무인도의 공장에서 직접 조립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19세기 프랑스 민족주의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예컨대 이집트 원정을 감행했던 나폴레옹과 수에즈 운하를 건설한 레셉스를 두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 모세에 비견되는 영웅으로 서술하는 식이다. 이 소설은 아직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이전 시대의 작품이어서 “이제 곧 운하가 뚫리면 홍해가 다시 옛날처럼 중요한 교통로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점도 흥미롭다. 영국에 대한 적대감도 상당하다. 프랑스혁명 당시 영국 함대와 싸우다가 침몰한 방죄르호(Vengeur·마침 배 이름이 ‘복수’라는 뜻이다)를 해저에서 발견하는데 마침 그날이 바로 그 배가 침몰한 날로, 혁명력(프랑스혁명 당시 제정했던 달력)으로 목월(牧月) 13일이라는 식이다!
바다는 누구의 것도 아닌 자유인의 세계라고 네모 선장이 주장하지만 이 작품의 내용 자체가 이미 그것과는 다르게 그려져 있다. 바다는 더 이상 각국의 투쟁에서 비켜나 있는 곳이 아니다. 이전에 강대국이 대지를 분할하고 통치하듯이 과학기술을 앞세운 강력한 국가가 곧 바다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이 나온 바로 얼마 후 미국의 유명한 해군 전략사가인 앨프리드 머핸(Alfred Mahan)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일찍이 쥘 베른은 노틸러스호를 가지고 해저 세계를 선점하는 꿈을 꾸었지만, 실제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을 건조하여 바다를 종횡으로 누빈 것은 미국이었다. 그 잠수함은 이 소설에 나오는 잠수함의 이름을 따라 노틸러스호라 명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