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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문학으로 본 역사<9>. 위화『허삼관매혈기』

지식창고지기 2009. 8. 3. 17:33

주경철의 문학으로 본 역사

9. 위화『허삼관매혈기』

피를 팔아 중국 현대史를 헤쳐온 사나이

주경철 | 중앙선데이 제51호 | 20080302 입력
일러스트=남궁유
한참 웃다가 결국 눈물을 글썽거리게 만드는 소설이 있다. 현대 중국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위화(余華)의 『허삼관매혈기(許三觀賣血記)』가 그런 경우다. 이 소설은 문화대혁명을 전후한 포악한 시대를 피 판 돈으로 힘겹게 헤쳐 나가는 한 사나이의 슬픈 인생역정을 그리고 있다. 자칫 한없이 암울한 이야기로 빠질 법한 소재지만, 저자는 걸쭉한 입담과 재치 있는 구성으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고 가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밝고 명랑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비참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오히려 우습게 그림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사회의 내면을 더욱 예리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이 사회에 대해 절망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있어 이들이 결국 힘든 시대를 버티고 이겨냈다는 점을 강조한다.

피를 팔아 버는 돈은 각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함께 피를 판 한 젊은 친구가 말하듯이 땅 파 버는 돈은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밖에 안 되므로 “여자를 얻고 집을 짓고 하는 돈은 전부 피를 팔아 버는” 수밖에 없다. 허삼관 역시 피 판 돈으로 허옥란에게 접근하여 결혼에 성공한다. 공짜인 줄 알고 만두·만둣국·사탕에 수박까지 잔뜩 먹고 난 허옥란은 돈을 물어내느니 차라리 그와 결혼하는 길을 택하게 되고, 그 후 5년 동안 일락이·이락이·삼락이 세 아들을 낳는다. 그런데 허옥란이 결혼 전 잠깐 사귀었던 하소용과 ‘딱 한 번’ 있었던 일로 인해 장남 일락이가 허삼관의 아들이 아니라 하소용의 아들이라는 점이 밝혀진다. 허삼관은 남의 아이를 공짜로 키워 주는 ‘자라 대가리(자라 대가리는 중국말로 남자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욕이라고 한다)’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이 아들이 동네 아이와 싸우다가 돌멩이로 머리를 여러 번 찍어 거액의 치료비까지 물어줘야 하게 되고 그 때문에 인부들이 들이닥쳐 집안의 가재도구를 몽땅 들어내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런 인생살이의 온갖 구질구질한 사건 속에서 위기 때마다 자기 피를 뽑아 팔면서 한 가족을 이끌고 아슬아슬하게 시대의 격랑을 헤쳐 나가는 허삼관의 애틋한 모습이 끝내는 장엄해 보이기까지 한다.

1958년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과 ‘대약진운동’을 제창했다. 진정한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위해 우선 철강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려 영국을 앞지르고 농업 생산량을 100% 이상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지방에서 순 거짓으로 올린 보고서에는 모든 것이 초과 달성되지만, 실제로는 일반 민중의 삶이 결딴나고 말았다. 철강생산을 늘린다고 동네마다 고로(高爐)를 지어두고는 밥솥까지 모두 징발해 녹였지만 아무 쓸모 없는 쇳덩어리만 만들어냈고, 농기구까지 모조리 집어간 터라 농사짓기도 힘든 데다 3년 연속 자연재해가 잇따라 농업 생산량은 거의 반 토막이 되었다. 이 3년 동안 중국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4000만 명에 가까웠다.

누에를 날라주는 일을 하던 허삼관이 생사공장 제강공(製鋼工)이라는 이상한 직책을 맡게 된 이 시기, 식구들은 하루 두 번 옥수수죽을 먹으며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그나마 허삼관의 생일날 저녁에는 아껴두었던 설탕을 쳐 평소보다 진하게 만든 옥수수죽을 한 그릇 더 끓인다. 그러나 죽 그릇 바닥까지 혀로 싹싹 핥아먹은 세 아들놈이 빈 그릇을 내미는 바람에 남은 죽도 모두 아이들 차지가 되고 만다. 아이들이 바닥에 머리를 쿵쿵 박는 소리가 나도록 세 번씩 절을 하는 것으로 생일선물을 대신한 다음 잠자리에 누워 허삼관은 가족들에게 말로 요리 한 접시씩 만들어 먹인다. 아이들에게는 홍사오러우(기름에 튀긴 돼지고기에 간장·설탕·오향 등을 넣고 푹 고아 만든 요리)를, 아내에게는 붕어찜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돼지간볶음 요리를 만드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온 가족은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으며 침을 꼴딱꼴딱 넘긴다.

이렇게 굶으면서야 어찌 살 수 있겠는가. 57일 동안 옥수수죽만 먹고 나자 허삼관은 식구들에게 밥 한 끼 사 먹이기 위해 다시 병원에 찾아가 피를 두 사발 팔고 나온다. 그런데 피 판 돈으로 남의 자식까지 먹일 수는 없다면서 일락이한테는 푼돈을 쥐여 주고 나가서 군고구마를 사먹게 하고 남은 식구들만 데리고 승리반점에 가 국수를 먹인다. 다음날 서러움이 복받친 일락이는 집을 나가 하루 종일 울며 돌아다니다 저녁때가 돼서야 집 앞에 돌아와 쭈그리고 앉는다. 너 같은 자식은 필요 없다는 말에 일락이가 다시 울면서 비청비청 떠나려고 하자 허삼관은 일락이를 등에 업고 쉴 새 없이 욕을 퍼부으며 어디론가 걸어간다. 한참 업혀 가던 일락이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관이 문득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답한다. “그래.”

이렇게 해서 아버지와 아들은 화해한다.

대약진운동의 실패 이후 본격적으로 문화대혁명의 집단광기가 기세를 올리는 때가 왔다. 자신의 실수를 가리기 위해 마오쩌둥은 홍위병을 앞세워 정치투쟁을 벌였다. 사방에 대자보가 붙어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가 고초를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첫째 아들이 친아들이 맞네 아니네 하며 동네방네 싸우던 일이 많았던지라, 어느 날 아내 허옥란이 15세부터 하룻밤에 2원짜리 기생이었다는 얼토당토않은 대자보가 붙고, 결국 붉은 완장 찬 사람들에게 끌려간다. 대자보 내용이 맞고 틀리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만인비판투쟁대회가 열리는데 지주, 부농, 우파분자, 반혁명분자, 자본주의 노선 당권파 같은 죄인은 다 갖추었지만 마침 기생 하나가 필요했던 것이다. 허옥란은 주요 비판 대상에서는 제외되었고 그저 들러리를 서는 정도였지만, 머리 한쪽을 박박 밀리고 매일 거리에 나가 의자 위에 서 있어야 했다. 험악하기 그지없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그 후에 마오 주석께서 매일 뭔가를 말씀하셨는데, ‘말과 글로 투쟁해야지 무기를 들고 투쟁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뒤로 사람들은 손에서 칼과 곤봉을 내려놓았다. 마오 주석께서 ‘혁명을 견지하며 생산을 촉진하자’고 말씀하시자 허삼관은 다시 공장에 출근했고 허옥란은 매일 새벽 꽈배기를 튀기러 갔다. 세월이 좀 흐른 뒤 마오 주석께서 천안문 성루에 모습을 보이셨는데, 오른손을 들어 서쪽을 향해 흔들며 수천, 수백만의 학생에게 ‘지식 청년들은 농촌으로 가서 빈농과 하층 중농에게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 일락이는 요와 이불을 말아 등에 지고, 손에는 보온병과 세숫대야를 들고 붉은 깃발이 이끄는 대열을 따라나섰다.”

이제 소설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어두워진다. 일락이가 간염에 걸려 상하이의 큰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허삼관은 치료비와 교통비를 마련하느라 계속 피를 팔아가며 상하이까지 찾아가는 애끓는 매혈(賣血)의 여로를 이어간다. 원래 피를 한 번 팔면 석 달을 쉬어야 하지만, 이틀이 멀다 하고 피를 팔다가 드디어 어느 시골 도시에서 쓰러져 할 수 없이 수혈을 해야 했고 이전에 두 번 피 판 돈을 날리기까지 한다. 피를 파는 것은 힘을 빼 팔고, 다음에는 몸의 온기를 파는 것이며, 그 다음에는 아예 생명을 꺼내 파는 것! 자기 온몸의 기운을 끄집어내 가족을 살려내는 가장의 이야기가 눈물겹다.

위화는 한 인터뷰에서 자기 이야기가 극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중국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저자는 자기 생애 전반 20년은 사람들이 가난과 압제 속에서 살았던 때고, 후반 20년은 자유롭게 돈벌이하느라 시간을 전부 보낸 때였다고 말했다. 그 두 시기는 너무나도 달라 유럽으로 치면 중세와 근대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자신은 벌써 100세 정도 먹은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이 어째 그리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리라. 1970년대만 해도 사람들이 삶에 쪼들리다 보면 매혈소에 가 피를 팔아 생계를 연명하곤 했다. 대학생들이 여름에 놀러 갔다가 돈 떨어지면 피 팔아 그 돈으로 고기 사먹던 때도 있었다. 우리 역시 허삼관이 살아온 그 시대만큼이나 애달프고도 기괴한 시대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까닭에 이 소설을 읽을 때 그토록 애틋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