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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문학으로 본 역사 <5>냉혹한 사회 꿰뚫어 본 노예의 처세술

지식창고지기 2009. 8. 3. 17:45

주경철의 문학으로 본 역사 <5>냉혹한 사회 꿰뚫어 본 노예의 처세술

이솝우화집

글=주경철 |출처=중앙선데이  제47호 | 20080203 입력
일러스트=남궁유
사자와 나귀, 여우가 함께 사냥을 했다. 사냥감을 많이 얻은 후 사자는 나귀에게 수확물을 분배해 보라고 했다. 나귀는 셋이 함께 일했으므로 나누는 것도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수확물을 정확히 삼등분했다. 사자는 화가 나서 나귀를 잡아먹어 버렸다. 그러고 나서 다시 여우에게 사냥감을 나누어 보라고 시켰다. 여우는 아주 작은 몫만 자신이 갖고 나머지 전부를 사자에게 돌렸다. 이를 보고 크게 만족한 사자가 여우에게 물었다. “아주 잘했다. 그런데 누가 이런 걸 가르쳐 줬지?” 여우가 답했다. “죽은 나귀가 가르쳐 주었답니다.”

이것이 바로 ‘lion’s share’(최대의 몫이라는 뜻)라는 영어 표현이 나오게 된 ‘죽음이 전해 준 교훈’이라는 우화다. 이솝(기원전 620∼560년경)이 동물들을 등장시켜 전개하는 이야기는 대개 이런 식이다. 세상에는 사자같이 힘센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힘없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몰아친다. 이럴진대 나귀처럼 멍청하게 굴다가는 언제 피해를 볼지 모르므로, 때로는 비굴해 보이더라도 여우처럼 약게 처신하는 것이 낫다.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모하게 덤볐다가는 신세 망치기 십상이며, 그런 사람은 결코 동정을 받지 못하고 잔인하게 놀림만 당할 뿐이다.

독수리 한 마리가 높다란 바위 위에서 내리꽂히듯 날아와서 양 한 마리를 낚아챘다. 이를 본 까마귀가 자기도 똑같이 해 보기로 결심했다. 독수리처럼 멋지게 날아가서 숫양에게 덤벼들었다. 그런데 그의 발톱이 억센 양털에 엉겨서 아무리 해도 날아갈 수 없었다. 놀란 양치기가 달려와서 까마귀를 잡고는 날개 끝을 잘라놓았다. 날지도 못하고 뒤뚱거리며 걷는 까마귀를 보고 동네 아이들이 무슨 새냐고 물어보자 양치기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 내가 보기에는 까마귀 같은데 저 새는 자기가 독수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란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동물들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자신의 처지에 맞는 동물들의 도를 배워두는 것이 한 세상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이즈음에서 생각나는 인물이 한 명 있다. 인간은 원래 반쯤 길들여진 동물과 같으므로 그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짐승 다루는 법 혹은 짐승의 도를 배워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마키아벨리가 그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군주는 사자와 여우의 기질을 배워서, 여우처럼 함정을 피하고 사자처럼 늑대를 혼내주어야 한다. 마키아벨리 역시 인간세계가 성숙한 도덕성에 따라 움직이진 않는다는 진실을 꿰뚫어 보았다는 점에서 이솝과 맥이 통한다.

그동안 우리는 이솝 우화가 어린이들에게 착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내용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었다. ‘토끼와 거북이’ ‘북풍과 해님’ ‘양치기 소년과 늑대’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이솝 우화가 아니었던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우리들에게 거짓말하지 말고 성실하게 노력해야 하며,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착한 교훈들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솝 우화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그런 교훈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바른 생활’용 우화들 중 많은 수가 이솝의 이야기가 아니라 후대에 왜곡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에 이솝 우화를 번역·출판하면서 도덕주의가 강하게 덧칠되었다. 이때 도덕주의자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이 빠지고, 그 대신 편집자 스스로 창작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들은 우화라는 이 강력한 교육 수단을 이용해서 그 시대가 중시하는 덕목들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다.

이솝이 살았던 고대 그리스 사회는 어떤 곳일까? 우리는 어쩌면 다소 편향된 시각으로 그리스 문명을 바라보는지 모른다. 피디아스라는 전설적인 건축가가 인류사상 가장 훌륭한 신전을 짓고, 저녁에는 시민들이 아이스킬로스나 아리스토파네스의 위대한 작품 공연을 보러 가며, 소크라테스와 같은 대철학자들이 거리에서 심오한 대화를 나누는 곳으로만 그리는 것이다. 물론 그런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문명이 이후 서구 문명에 심오한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오직 그런 빛나는 측면들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다른 모든 사회와 마찬가지로 권세를 누리는 소수의 사람들과 가난에 시달리는 다수의 서민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벌어졌고, 더구나 사회 최하층에서는 수많은 노예가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곳이다. 고대 그리스의 탁월한 문화적 산물들은 그와 같은 고통스러운 현실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빚어진 결과인 것이다.

이솝의 출생과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나마 가장 신빙성 있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점령지 포로 출신 노예였다. 고대의 노예는 워낙 신분이 다양해서 철학자나 문인 역할을 맡아서 하는 수도 있었는데, 이솝이 바로 그런 경우로 보인다. 그는 종래 그리스 세계 최고의 지식인이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감옥에서 그의 우화들을 운문으로 다듬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이 그의 작품들을 정리해 출판하였으며, 아리스토파네스는 자신의 희곡 작품에서 여러 차례 이솝의 이름을 직접 거론할 정도로 이솝은 이미 당대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다 하더라도 노예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못해 냉소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범선 한 척이 승객들을 고스란히 태운 채 바다에 가라앉았다. 이 장면을 본 한 사람이 신들을 비난했다. 사악한 인간 한 명을 벌하기 위해 다른 무고한 사람들을 이렇게 죽이는 것이 가당한가? 그런데 그 순간 개미 한 마리가 그의 발을 물었다. 화가 난 그 사람은 거기에 있던 개미들을 모두 밟아서 뭉개버렸다. 이때 헤르메스 신이 나타나 그를 지팡이로 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이 사람을 심판하는 과정도 네가 개미를 심판하는 것과 똑같다.”

그가 보기에는 우주 질서를 관장하는 신들도 결코 정의롭기만 하지는 않다. 하물며 인간들이야 오죽하랴.

제비 한 마리가 법원 건물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제비가 잠시 둥지를 비운 사이에 뱀이 새끼들을 잡아먹었다. 어미 제비가 슬픔에 정신을 잃고 통곡하자 다른 제비들이 와서 위로했다. 그러자 어미 제비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법원 아닙니까? 내 새끼들을 잃은 것도 슬프지만, 법원에서까지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더 슬프군요!”

이솝이 그리는 이 세상은 냉혹하며, 법이 있다고 해서 꼭 공평하게 정의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남에게 관대하게 대하며, 서로 돕고 살라는 식의 도덕적 조언들도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명료하게 파악하고 거기에 알맞은 세상살이의 지혜를 터득하라는 것이 현명한 노예 이솝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이솝은 아폴론의 신탁으로 유명한 델포이 시민들에게 참혹한 죽음을 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신앙심이 끓어 넘치는 그 고장 사람들에게 괜히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맞아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해 본다. 그렇게 현명한 말을 잘하던 이솝이 정작 자신이 설파한 교훈대로 살지 못한 것을 보면 정녕 지혜롭게 한세상 사는 것이 어렵기는 어려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