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fe/사오정국어

가전체 - 국순전(麴醇傳)

지식창고지기 2009. 8. 6. 17:04

국순전(麴醇傳)
술을 의인화한 작품


/ 가전체의 문학사적 의의 / <역사신문>의 기사 보기 /
/
임춘의 또다른 가전체 <공방전> 알아보기 / 가전체 흉내 내보기

임춘

● <국순전>의 줄거리
  주인공 국순의 조상은 농서 사람으로 90대 조상인 모(牟-보리)가 후직(농사를 맡은 벼슬)을 도와 백성들을 먹여살린 공이 있었다.
  모는 처음에 숨어살며 벼슬하지 않고 이르기를 '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만 먹으리라'고 하며 밭에서 살았다. 임금을 좇아 원구(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에 종사한 공으로 중산후로 봉하여졌고,
국씨(麴氏)라는 성을 받았다.
위나라 초기에 이르러 국순의
아버지 주(酎-소주)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 상서랑 서막과 더불어 서로 친해져서 주가 입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국순의 기국과 도량은 크고 깊어 출렁거리고 넘실거림이 마치 만경창파의 물과 같아 맑게 해도 더 맑지 않고, 흔들어도 흐려지지 않았으며, 그 맛이 한때에 드날리고 자못 사람에게 기운을 더해 주었다.  군신의 회의에는 반드시 국순이 나아감에 그 진퇴와 수작이 임금의 뜻에 맞아 마침내 권세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손님 접대, 노인봉양, 고사(告祀) 및 종묘제사를 모두 국순이 주재했다.
  그러나 국순은 전벽(錢癖-돈을 밝히는 병통)이 있어서 당시의 의론이 그를 더럽게 여겼다. 국순이 늙어 관을 벗고 물러날 때 임금에게 아뢰기를, '신이 작(爵)을 받고 사양하지 않으면 마침내 망신할 염려가 있사오니 신을 집에 돌아가게해 주시면 족히 그 분수를 알겠나이다'라 하고 집에 돌아와 갑자기 병이 들어 하루저녁에 죽었다.
  사신이 이르기를,
  '국씨의 조상이 백성에게 공이 있어 국순이 벼슬에 발탁되었으나 왕실이 어지러워 엎어져도 붙들지 못하더니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이는 거원(중국 진나라의 문인인 산도를 이름)의 말이 족히 믿을 만하다'고 하였다.

 

● <국순전> 본문 읽어보기
  국순(麴醇)의 자(字)는 자후(子厚)이다. 그 조상은 농서(濃暑-진한 시대 군 이름) 사람이다. 90대조인 모(牟-보리)가 후직(后稷-주나라의 선조)을 도와 뭇 백성들을 먹여 살린 공이 있었다. 시경(詩經)에 '우리에게 밀과 보리를 주었네'란 구절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모(牟)가 처음 숨어 살며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스스로 밭을 갈아야 먹으리라."
하며 밭에서 살았다. 임금이 그 자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서(詔書-임금의 명령을 쓴 문서)를 내려 안거(安車-앉아서 탈 수 있게 만든 좋은 수레)로 부를 때, 군(郡)과 현(縣)에 명하여 곳마다 후하게 예물을 보내게 하였다. 신하를 시켜 친히 그 집에 나아가, 드디어 방아와 절구 사이에서 교분을 정하였다. 화광동진(和光同塵-자기의 뛰어난 재주의 빛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일)하게 되니, 훈훈하게 찌는 기운이 점점 스며 들어서 온자( 속이 너그럽고 편함)한 맛이 있어 기뻐 말하기를,
  "나를 이루어 주는 자는 벗이라 하더니, 과연 그 말이 옳다."
하였다.
드디어 맑은 덕(德)으로써 들리니, 임금이 그 집에 정문(旌門-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하여 나라에서 세워주던 붉은 문)을 표하였다. 임금을 따라 원구(園丘-천자가 동지 때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에 제사한 공으로 중산후(中山侯)에 봉해졌다. 식읍(食邑-공신에게 내리어, 나라에서 거두어 들여야 하는 조세를 그 공신이 맡아 쓰게한 고을)은 일만 호(戶)이고, 식실봉(食實封-실봉과 식읍. 실봉은 봉읍(封邑) 안에서 바치는 조세를 실제로 취득할 수 있는 식봉)이 오천호(五天戶)이며
성(姓)은 국씨(麴氏-누룩 국)라 하였다.
  5세손이 성왕(成王)을 도와 사직을 제 책임으로 삼아 태평 성대를 이루었고, 강왕(康王)이 위(位)에 오르자 점차로 박대를 받아 금고(禁錮-신분에 허물이 있어 벼슬에 오르지 못하게 하던 형벌)에 처해졌다. 그리하여 후세에 나타난 자가 없고, 모두 민간에 숨어 살게 되었다. 위(魏)나라 초기에 비로소
순(醇)의 아비 주(酎-소주를 의인화한 말)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상서랑(尙書郞) 서막(徐邈-중국 진나라 사람. 술을 좋아했음)이 그를 조정에 데리고 들어가 입이 닳도록 칭송하니, 한 신하가 임금에게 탄핵하기를,
 "서막이 주와 사사로운 교분을 빌미로 조정의 기강을 점전 어지럽힙니다."
하므로 임금이 화가 나서 막을 불러 힐문(힐책하여 물음)하였다.
서막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신이 주를 따르는 것은 그에게 성인(聖人)의 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그 뒤에 진(晉)이 이어 일어서매 주는 벼슬에 뜻을 잃고, 유령(劉伶), 완적(頑敵) 같은 죽림칠현들과 어울려 죽림(竹林) 속에서 놀다가 그 일생을 마쳤다.
  순(醇)의 기국(재주)과 도량은 크고 깊었다. 출렁대고 넘실거림이 만경 창파와 같아 맑혀도 맑지 않고, 뒤흔들어도 흐리지 않으며(맑은 술-청주를 뜻함), 자못 기운을 사람에게 더해 주었다. 일찍이 섭법사(葉法師)에게 나아가 온종일 담론할 때, 일좌(一座-온 좌석)가 모두 절도(絶倒-까무라쳐 넘어짐)하도록 만들어 유명하게 되었으며, 호(號)를 국처사(麴處士)라 하였다. 공경(公卿), 대부(大夫), 신선(神仙), 방사(方士-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들로부터 머슴, 목동, 오랑캐, 외국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향기로운 이름을 맛보는 자는 모두가 그를 흠모하여, 성대(盛大)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순(醇)이 오지 아니하면 모두 다 추연(湫然- 근심하는 모양)하여 말하기를,
  "국처사가 없으면 즐겁지가 않다."
하였다. 그가 당시 세상에 애중(愛重)됨이 이와 같았다.  (이하 생략)

 

● <국순전> 내용 정리
* 연대 :고려 중엽
* 작자 : 임춘(林椿)
* 형식 : 가전체
* 성격 : 풍자적, 교훈적
* 의의 : 최초의 가전체
            이규보의 <국선생전>에 영향을 줌
* 주제 :
향락에 빠진 임금과 이를 따르는 간신들에 대한 풍자
* 출전 :서하선생집(西河先生集)

 

● <국순전> 이해하기
  이 작품은 최초의 가전으로 술을 의인화하였고, 이규보의 <국선생전>에 영향을 주었다.
  작자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생과 술의 관계를 문제삼고 있다.
  곧, 인간이 술을 좋아하게 된 것과 때로는 술 때문에 타락하고 망신하는 형편을 풍자하고 잇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인간과 술의 관계를 통해서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조명해본 것이다. 이 작품은 당신의 여러 가지 국정의 문란과 병폐, 특히 벼슬아치들의 발호와 타락상을 증언하고 고발하려는 의도로 작자가 거듭 비분강개한 소인배들의 득세와 뛰어난 인물들이 오히려 소외되는 현실을 풍자,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국순전>과 <국선생전>의 차이점
이규보의 <국선생전>은 임춘의 <국순전>과 마찬가지로
술(누룩)을 의인화의 대상으로 하였지만 그 주제는 다르다.
<국순전>은 도량과 인품을 갖추고 있는 국순이 방탕한 군주에게 등용되었다가 세상을 어지럽히고는 은퇴해서 곧 죽었다는 내용으로, 정사를 돌보지 않는 군주까지 비판하면서
술로 인한 폐해를 드러낸 것이다. 반면에 <국선생전>의 국성은 도량이 크고 성품이 어질며 충성이 지극한 긍정적 인물로 서술되었다. 국성이 '국선생'이라 불린 점이라든가, 만년가지 제 본분을 지키고 화평한 삶을 누린 것이 이와 같은 인식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두 작품은 술의 내력, 성질, 효능 등을 사람의 개성, 기질, 욕구 등으로 의인화하는 수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나, 사건 구조와 인물형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 가운데서 술의 효능과 가치를 훨씬 긍정적으로 표현한 쪽은 물론 이규보의 <국선생전>이다.

 

국순전

국선생전

차이점

요사하고 아부하는 정객들을 꾸짖고 방탕한 군주를 풍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미천한 몸으로 성실히 행동했기 때문에 등용되었고 총애가 지나쳐 잘못을 저질렀지만 물러난 후 반성하고 근신할 줄 아는 인간의 모습을 그림

공통점

* 술을 의인화함
* 제목에서부터 시작하여 관련 인물과 지명, 서술 방식 등이 유사함
* <국선생전>은 이보다 앞서 나온 <국순전>의 영향을 받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