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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체 -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지식창고지기 2009. 8. 6. 17:12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거북을 의인화한 작품


/ 가전체의 문학사적 의의 /

이규보

  ● <청강사자현부전>의 줄거리
  주인공 현부(玄夫-거북)의 선조는 신인(神人)이며 굉장한 힘이 있어서 바다 가운데 있는 산을 지탱하였다. 그러나 자손대에 이르러 형체가 작아지고 힘도 사라져서 다만 점을 치는 것으로 직업을 삼았다.
  먼 조상 문갑(文甲)은 요시대에 살아 이상한 그림을 임금에게 바쳐 낙수후로 봉함을 받았고, 증조부는 상제의 사자라 자칭하였는데, 홍범구주를 백우에게 주는 등 대대로 국가에 공적이 있었다. 성품이 무를 숭상하여 항상 갑옷을 입고 다녔다. 임금이 그 이름을 듣고 초빙하였으나 현부는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노래하기를,
  '진흙 속에 노닐어 재미가 무궁한데 문갑 속에 담기는 사랑을 어이 바랄까!'
  하며 자연세계가 더 좋다고 하여 응하지 않았다.
  송 원왕 시절 왕 앞에 끌려가게 되어 왕의 존중을 받았으나, 벼슬은 사양하였다. 그러자 왕이 묻기를,
  "신명의 후손이요, 좋고 나쁜 일을 환히 알면서도 어찌하여 붙잡히게 되었는가?" 하자, 현부는
  "밝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으며, 지혜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아뢰니 왕이 웃었다.
  자손 중에는 오월 사이에 은거하며 동현선생이라고 자호한 자도 있었고, 사람들에게 붙잡혀 삶아 먹힌 자도 있었다.

  사신이 말하기를,
  "지극히 은미한 상태에서 미리 살피며, 징조가 나타나기 이전에 예방하는 것은 성인이라도 어그러짐이 있는 법이다. 현부의 지혜로도 예저의 술책을 방지하지 못하였고, 두 아들이 삶아 먹힘을 구제하지 못하였으니 하물며 다른 이들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 <청강사자현부전> 본문 읽어보기
  현부(거북)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그의 선조는 신인(神人)이었다. 형제가 15명이었는데, 모두 체구가 크고 굉장한 힘이 있어서, 하늘이 명하여 바다 가운데 있는 다섯 개의 산을 붙들게 한 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러나 자손들에 있어서는 덩치도 작아지고 힘이 센 것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도 없으며, 다만 점을 치는 것으로 직업을 삼았다. 터가 좋고 나쁜 것을 보아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출신지와 계보도 자세히 알 수 없다.
먼 조상은 문갑(文甲)인데 요임금 시대에 낙수가에서 은거해 살았다. 임금이 그의 훌륭함을 듣고 흰 옥을 가지고 그를 초빙하였더니, 문갑은 이상한 그림을 등에 지고 와서 바치므로 임금이 그를 가상히 여겨 낙수후(洛水侯)에 봉했다.
  증조부는 하늘의 사자라고 하면서 자기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는데, 홍범구주(洪範九疇 : 서경의 주서(周書)편 홍범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우(禹)가 정한 정치 도덕의 아홉 원칙)를 지고 와서 백우(하나라의 시조 우임금)에게 전해 준 사람이다.
  할아버지는 백약인데, 하나라 때 곤오에서 솥을 주조(鑄造)하고 있었는데 옹난을과 함께 힘을 다해 공로가 있었다.
  아버지는 중광으로, 나면서부터 왼쪽 옆구리에 글씨가 있었는데, 그 글에는 '달의 아들 중광이다. 나를 얻는 사람은 서민의 경우 제후(諸侯)가 될 것이며, 제후일 경우 천자(天子)가 된다'라고 했다고 하여 중광을 이름으로 삼았던 것이다.
  현부는 더 침착하고 속이 깊었다. 그의 어머니가 요광성(북두칠성의 일곱 번째 별)이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나서 아기를 잉태했었다. 처음 낳았을 때 관상쟁이가 보고서
"등은 웅크리고 있는 산언덕과 같고, 무늬는 나열한 성좌를 이루었으니 반드시 신성하게 될 인물이로다."
라고 했다.
  자라면서 천문, 역상을 깊이 연구하여 모든 하늘과 땅, 해와 달, 음양, 추위와 더위, 어둠과 밝음, 재난과 상서, 화와 복의 변화에 대해 미리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또한 신선으로부터 기를 호흡하여 죽지 않는 법을 배웠다. 성품이 무(武)를 숭상하기에 언제나 갑옷을 입고 다녔다. 임금이 그의 이름을 듣고 사신을 시켜 초빙했으나 현부는 거만스럽게 굴면서 돌아보지 않고 노래를 부르기만 했는데,
  "진흙 속의 놀이가 재미있는데 문갑 속에 넣는 사랑을 내가 어찌 바라리."
라고 웃을 뿐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불러들이지 못했는데, 그 뒤 송의 원왕 때에 '예저'라는 자가 그를 강제로 협박하여 임금에게 데려가려고 했다. 그 와중에 임금의 꿈속에서 어떤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수레를 타고 와서는
"나는 청강사자인데 왕을 뵈오려 한다."
라고 했다. 이튿날 과연 예저가 현부를 데리고 와서 왕을 알현하였다. 왕은 기뻐하며 그에게 벼슬을 주려 하니, 현부는
  "제가 예저에게 협박을 당했고, 또한 왕께서 덕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와서 뵈온 것뿐이지, 벼슬은 저의 본뜻이 아닙니다. 왕께서는 어찌 저를 억류하시면서 보내주시지 않습니까."
라고 했다. 그러자 왕이 그를 돌려 보내려고 하는데, 위평이 몰래 말리므로 그만두고, 그를 수형승에 임명했다. 다시 옮겨 도수사자를 맡겼다가 바로 뽑아올려 대사령을 시키고 모든 나라의 시설하는 것, 인사(人事), 사업, 만들거나 없애는 것 등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그에게 물어서 행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왕이 한번은 농담으로,
"그대는 신명의 후손으로 길흉사에 대해 환하게 알고 있는데 어찌 일찍이 단속을 하지 못하고 예저의 술책에 떨어져 사로잡혔는가?"
라고 물었다. 현부가
"밝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으며, 지혜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왕은 크게 웃었다. (후략)
                          
<청강사자현부전> 이해하기
  
작자는 이 작품을 통하여 인간의 삶 자체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를 말한다. 성인도 삶에 어그러짐이 있고, 현부처럼 앞일의 길흉을 점칠 수 있는 자도 어부의 꾀에 빠져 사로잡히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잡혀 삶아 먹힘을 당하기도 하니 여타의 인간이야 자칫 잘못하다가는 삶을 망치기가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입신행도(立身行道-출세하여 도를 행함)를 추구함이 본질이 되는선비들은 모름지기 나라를 어질게 다스리고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히는 치국의 도리를 다하되, 안분지족의 천리를 명심하여 수신함으로써 어지러운 시대를 뚫고 살아갈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복무(卜巫)가 삶을 구제할 수 있는 방편이 되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미신적 신앙보다는 지족(知足)의 처세가 더욱 소중함을 밝히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