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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연구가 정형진의 고대문화 새로 읽기 <2> 우리 곰 신앙은 어디로 사라

지식창고지기 2009. 8. 7. 08:08

역사연구가 정형진의 고대문화 새로 읽기 <2> 우리 곰 신앙은 어디로 사라졌나?
이주한 공공족과 홍산문화 웅녀족이 만나 단군신화 탄생
일부 학자 곰 대신 호랑이 주장 곰 토템은 일본까지 전해져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중국인 황강태가 소장하고 있는 웅녀상. 어미곰이 아기곰을 업고 있다.
필자가 한민족 공동체를 구성한 초기 주민에 관심을 가진 계기 중 하나가 우리 고유 종교유산의 비밀을 알고 싶어서였다. 사찰에 가면 어김없이 칠성각·삼성각·산신각이 있다. 이곳에는 대체로 칠성·용왕·산신·독성을 모신다. 불교와 관련된 독성을 제외하면 모두 우리 고유의 신이다.

필자의 의문은 이들 세 신이 언제 어떤 집단에 의해 모셔지게 되었는가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해답은 아직 정확히 설명된 적이 없다.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상고시대 한민족을 주도했던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그래야만 그들의 우주관과 생사관이 반영된 종교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신들 말고도 우리에게 오랫동안 모셔졌을 법한 대상신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곰이다. 한민족 공동체의 영원한 어머니인 웅녀가 믿었던 곰신앙은 왜 우리 곁에서 사라졌을까? 한국인이라면 단군신화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단군신화는 외부에서 이주해온 환웅이라는 세력과 현지의 곰토템 부족이 만나 단군을 탄생시켰으며, 그것이 한민족의 모태라고 가르치고 있다. 필자는 환웅 세력을 요임금 시절 중원에서 지금의 북경 북쪽에 있는 밀운현 공공성으로 쫓겨났던 공공족으로 파악했다. 이들이 연산을 넘어 홍산문화 지역의 웅녀족과 만나 단군신화의 역사적 배경을 만들었다.

홍산문화의 제단유적인 우하량 유적 발굴에 참여했고 현재 중국고고학회 상무이사인 곽대순은 제단유적에서 나온 흙으로 만든 용 두 마리를 곰룡(熊龍)으로 파악했다. 그는 옛 기록에 황제를 '유웅 씨'라고 한 것과 연결하여 그 곰룡을 황제와 결부시켰다. 또한 우하량 홍산문화 적석총 유지에서도 여러 건의 곰뼈(熊骨)가 발견됐다. 이는 홍산문화인들이 곰을 제사한 습속을 반영하는 것이다.

 
  2001년 발견된 곰 형상 사람 얼굴.
뿐만 아니라 〈사진1〉에서 보듯 어미곰이 아기곰을 업고 있는 옥기도 이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물론 이 옥기는 중국에서 홍산옥기를 가장 많이 수집한 황강태가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정식 발굴을 거치지 않은 것이어서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2001년 발굴된 웅녀상이라 할 만한 옥기가 있다〈사진2〉.

이와 같은 고고학적 정황으로 볼 때 홍산문화 지역은 단군신화가 발생할 수 있는 토양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서 지적한 대로 중국학자들은 그곳에서 나온 곰을 황제족과 연결한다. 그러나 기존 정설에 따르면 황제족은 섬서성의 황토고원 지대에서 출발하여 산서와 하북성 일대로 이동했다. 즉 황제족의 원주지는 홍산문화지역이 아니었다. 이들 곰 토템 부족은 '맥(貊)'부족을 가리킨다. '후한서'에 "맥이(貊夷)는 웅이(熊夷)다"라고 명백하게 기록돼 있다.

아무튼 필자의 가설대로 중원 앙소문화의 주인공인 공공족이 밀운지역을 거쳐 이곳 홍산문화 지역으로 넘어와 곰을 제사지내는 웅녀족과 만나 단군조선을 탄생시켰다면 곰을 숭배하는 흔적이 이후 한민족에게 전달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흔적은 너무나 미미하다.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혹 단군의 어머니가 곰이 아니고 호랑이였을지 모른다고까지 한다. 그가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조선시대 승려 설암(雪巖 1651~1706)이 지은 기행문인 '묘향산지'의 '단군신화'다. 그 내용을 보면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신단수 아래 살았다. 환웅이 하루는 백호(白虎)와 교통하여 아들 단군을 낳았다. 그가 요임금과 같은 해에 나라를 세워 우리 동방의 군장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기존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를 바꾸어 놓았다. 왜 그랬을까? 정말 조선시대까지 그런 전설이 전해져 왔을까? 아니면 처음에 제시한 대로 우리 고유의 신으로 산신은 존재하는데 곰신이 없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어떤 사람이 곰을 호랑이로 바꾼 것일까?

그러나 단군신화에 등장했던 곰은 서해안을 타고, 혹은 진한지역을 거쳐 일본 규슈로 들어간 흔적이 분명히 보인다. 서해안을 타고 내려왔던 흔적은 공주의 '곰나루(熊津)'전설에 보이며, '일본서기'에 나오는 '고마나리'는 백제의 '곰나루'에서 유래했다. 이는 고조선이 멸망한 뒤 이 지역으로 내려온 곰 숭배 사상이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말한다. 또한 진한 지역으로 들어왔던 곰신앙은 수인천황 3년에 신라왕자 천일창(天日槍)이 가지고 간 귀중품인 웅신리(熊神籬)로 알 수 있다. 이 웅신리는 곰을 신으로 모시는 휴대용 신전이다. 다음 회에는 곰신앙이 한반도에서 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저자
  입력: 2009.04.23 20:33 / 수정: 2009.04.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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