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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건축, 바다를 끌어안다 <11> 지역문화의 '진정성' 담아내야

지식창고지기 2009. 8. 7. 08:48

해양건축, 바다를 끌어안다 <11> 지역문화의 '진정성' 담아내야
그대 안의 '블루 욕망', 부산이 최적지다
어촌 체험·해양레포츠·수산물… 웰빙 꿈꾸는 사람들 바닷가로 몰려
수영강 하구·남항~북항 블루라인, 영도 중리길·보수동 산복도로 등
부산 다운 빼어난 경관 활용
그 원형과 모태에 현대양식 입혀 친환경·생태적 개발 서둘러야

 
  김정하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바닷가에 집짓기'의 유쾌한 발상에 일차적 걸림돌은 바다를 기피해온 한국인의 전통적 사고다. 바닷가의 삶을 은둔자의 것으로 노래한 고려가요 '청산별곡'부터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문학작품에 투영된 바다부터가 도무지 긍정적이지 않다. 사정은 오늘날이라고 다르지 않다. 동해안을 따라가다 모처럼 만난 풍광 좋은 어촌에서도 괴이하게 바다를 향해 창을 낸 집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비 죽고 남편 죽은 바다를 천 날 만 날 보고 살아야겠느냐?"는 동네아낙의 푸념에 이어붙일 말이 궁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닷가 사람들이 바다를 애증(愛憎)의 대상이자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은 안쓰러우리만치 확고하다.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총각을 그리다 죽은 처녀의 혼을 달래느라 지은 '해랑각(海娘閣)'이 그런 마음을 잘 보여주는 예다. 집이란 모름지기 그처럼 모질고 질긴 사연이 깃들고야 비로소 완전한 '존재의 거소'가 된다.


■ 웰빙 이어 '바닷빛 인생'(Blue Life)이 뜬다

 
  하늘에서 본 기장 용궁사 전경. 해안 절경과 사찰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용궁사 소장 사진)
바다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이 마냥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었다.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전승'이나 '거타지 설화', 판소리 '수궁가'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용궁'이 등장한다. 수로부인은 용에게 붙들려가서 본 바다 속 정경을 "일곱 가지 보물로 꾸며진 궁전이 있고, 음식들은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 세계의 요리와는 전혀 달랐다"고 전했는데, 과연 부인의 옷에선 세상에서 맡을 수 없는 향내가 스며 있었다. 신라의 감은사지 석탑에는 용이 바다를 드나드는 통로가 있었고, 문무대왕릉에선 죽어 용이 된 왕이 나라를 지켰다. 고려 태조의 조부도 수시로 육지에서 용궁엘 드나들었고 조선은 숫제 용의 후손이 세운 나라라 했다.

그래서 용궁이 한국인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타향이다. 홍콩인들은 오늘날 홍콩섬의 리펄스 베이에 용궁을 형상화해놓은 해양공원을 만들고, 인근 오션 파크에 아쿠아리움을 지어 용궁을 되살리는가 싶다. 장차 해상뿐 아니라 해중, 해저에서의 레저와 생활까지를 가능케 할 한국의 해양건축도 용궁의 재현을 꿈꾸는 것으로 믿고 싶다.

 
  기장 바닷가 언덕의 800년 묵은 노송 사이를 비집고 지은 당집. 바다에서 질긴 삶을 이어오며 자연과 일치를 추구한 어촌주민의 사고가 엿보인다.
사실 해양건축 한 분야가 해양관을 비롯하여 바다에 관련된 모든 책임을 걸머질 이유는 없다. 하지만 건축이 본래 우주관과 세계관의 응집이고 보면, 바다와 어우러지는 해양문화를 전제하지 않고는 해양건축을 말하기 어렵다.

더구나 오늘날엔 바다를 정복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일상생활도 더욱 바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웰빙 붐'에 이어 택한 '그린 라이프'는 점차 '블루 라이프'로 전환되는 추세다. 신선하고 안전한 먹거리는 으레 해산물에서 찾고 최적의 휴양지로는 바닷가를 꼽는다. 어촌에 머물며 어부체험과 해양레포츠로 심신을 재충전하며 해양사와 해양문화를 배우는 '블루투어리즘'도 각광받고 있다. 향후의 해양건축은 그런 '블루 라이프'와 '블루 투어리즘'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 부산이 '가진 것' 생각보다 많다

 
  포구와 배, 주택이 바다와 조화를 이룬 채 뒤섞인 부산 남항 전경. 소박하나마 바다와 어우러진 부산의 경관이다.
한국에서 그런 추세에 맞는 지역을 찾자면 부산보다 좋은 곳도 달리 없다. 바다를 안아들인 해수욕장은 물론, 강과 바다가 만나는 낙동강이나 수영강 하구, 육지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달리는 남항과 북항의 '블루 라인'이야말로 해양건축의 적지다.

이제부터라도 그곳에 친수 공간과 보행로를 비롯한 리조트와 마리나, 낚시공원을 비롯한 해양레포츠와 해양레크리에이션 시설, 혹은 해녀체험장이나 피셔리나를 갖춰야 한다. 특히 마리나 옆에는 요트 수리장이나 선용품 판매장, 해양레포츠용품점 외에 해산물 특산품판매점까지 복합적인 부대시설을 갖춰야 한다. 가족을 위한 숙박업소나 쇼핑 몰을 비롯해 젊은이를 위한 인디카페나 X-sports 테마파크, 소공연장, 야외공연장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이겠고, 영화관이나 해양테마파크, 해양박물관까지 어우러진 마리나 지구를 구상해봄직 하다.

 
  도심 속 포구로 명맥을 잇고 있는 영도 하리항 전경. 친수공간을 만들기에 적합한 경관이다.
마리나 지구의 좋은 예는 미국이나 프랑스, 호주 등 선진지역에 두루 널려있다. 하지만 부산 마리나 지구는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자연과 생태의 변형 및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개발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결과물이라야 한다. 그래야 남보다 늦게 해양건축을 시작하더라도 좀 더 친환경적이고 장기적인 해양문화를 누리고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당장에 선례가 없어 '마리나', '피셔리나'란 남의 용어를 빌어다 쓰긴 하더라도, 그 바탕만은 부산다운 경관에서 찾아야 한다. 바다를 보고 곤두박질치는 영도 중리의 내리닫이길이나 부산항의 조망을 넉넉히 확보한 보수동 산복도로, 파도소리와 솔숲 바람소리 섞여드는 송도 산책로, 기장 용궁사 앞 해안 등의 빼어난 경관을 활용해야 한다.


■ '경관의 사대주의' 벗고 부산다움 진정성 찾자

 
  몰디브의 원주민 수상가옥을 재현한 리조트.
부산다운 경관은 그 뿐이 아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까꼬막 언덕'에 무등을 타거나 어깨를 겯고 서 있는 서민주택을 비롯해 해안선을 따라가며 포진한 부두와 방파제, 선착장과 물양장, 등대와 창고가 모두 훌륭한 해양문화 자원이다. 그 바위와 나무, 시설과 도로, 집의 형상과 내력이야말로 부산 해양문화의 '진정성(authenticity)'에 다름 아니다.

그래도 구태여 남의 예를 들자면, 싱가폴의 센토사섬, 아쿠아리움과 박물관, 각종 놀이시설이 들어찬 섬의 남쪽 바닷가에 울타리를 쳐놓고 보존하는 말레이 원주민의 수상가옥을 꼽고 싶다. 새삼 떠올려보면 타히티와 발리, 몰디브와 카리브 해안에 늘어서서 이국인의 눈길을 끄는 것 역시 현지의 전통수상가옥을 재현한 리조트 시설이다.

그런 남의 나라 토속 경관에는 찬사를 보내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의 흔적을 무시하는 모순이자 '경관의 사대주의'다. 이제 더 이상은 남의 것에 매달릴 게 아니라 부산다움의 진정성을 찾아 그에 귀의할 때다. 낡고 어수선해 보이는 부산의 해안경관이라 하더라도 그로부터 원형과 모태를 찾아내어 현대양식을 입히는 일이 그 첫걸음이 돼야 할 것이다.

나아가 '블루 라이프'를 지향하는 생태적이고 친환경적 해양건축으로 부산의 지형 및 경관과 빈틈없이 조화되고, 부산의 바람과 물, 햇빛에 적절히 반응하면서 그 에너지를 활용하고 오염원까지 완벽하게 처리하는 해양건축, 그것이야말로 육지건축이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이 아닐 수 없다. 그 꿈을 실현할 책임과 권리 모두가 진정한 해양도시로 거듭나야 할 부산의 몫이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국제신문 공동기획
  입력: 2009.05.10 20:45 / 수정: 2009.05.1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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