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 삼국(촉한) - 미부인/미축/비위/부첨

지식창고지기 2009. 8. 9. 08:00

미부인

? ~ 208


유비의 부인.

유비에게는 감부인과 함께 두 부인이 있었는데, 미부인에게서만 한 아들을 두어 아명을 아두(阿斗), 이름을 선(禪)이라 하며, 유비의 뒤를 이어 황제위에 오르므로, 흔히 후주(後主)라 부른다.

당양파 싸움에서 난군중에 부상을 당하고 조운을 만나 아두의 보호를 당부한 뒤, 자신은 헌 우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미축

? ~ ?


촉의 중신.

동해 구현사람으로 자는 자중(子仲).

서주의 명문 출신으로 수많은 자산에 노비가 1만이나 되었다고 한다.

서주태수 도겸의 별가종사로 있다가 조조의 침공을 받자, 그를 위하여 동분서주하며 공융의 원병을 청하고, 도겸의 유탁으로 유비를 지성껏 도왔다.

195년, 유비가 여포에게 하비를 빼앗기고 유랑하게 되었을 때도 그가 자금을 대주고 누이동생을 그에게 출가시켜 두 번째 부인이 되니 유비에게는 처남이다.

201년, 유비의 형주 망명 때 사전 준비를 위해 유표에게 사신으로 갔었다.

아우 미방이 배반하여 오에 항복한 것을 고민하다 병들어 죽었다.

벼슬은 안한장군(安漢將軍).

 

 

비위 費褘

? ∼ 253


촉의 중신. 자는 문위(文褘). 강하 맹 사람.

제갈량은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그의 출사표에서 내정을 맞길 사람으로 그와 곽유지, 동윤 등을 지적해 시중일을 맡아봄.

그는 남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서류를 읽고 또 일단 읽은 것은 절대로 잊지 않았다.

제갈량이 본 대로 그의 능력은 내정 면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제갈량이 죽은 뒤에는 승상이 되어 수성의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강경파인 강유를 억제하며 촉을 잘 유지했다.

그러나 253년, 연회석상에서 자객에게 암살되고 말았다.

여러 차례 오에 사신으로 가서 공을 세움.

 

 

부첨 傅僉 

? ~ 263


촉한의 장수.

제갈량이 죽은 뒤 강유의 추천으로 군대를 거느리게 되었는데, 강유가 특별히 위를 대비하여 조련시킨 무장. 무용이 대단하여 위의 양초를 쌓아 둔 장성을 칠 때는, 사마망의 수하 왕진, 이붕의 두 장수를 삽시간에 사로잡고 철간으로 쳐죽여 용맹을 떨치었다.

종회가 위병을 끌고 침범했을 때 양평관을 지키어 잘 싸웠으나 같이 지키던 장수 장서가 적에게 항복한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위군 속에 뛰어 들어, '살아서도 촉나라 신하요, 죽어서도 촉나라 귀신이 되련다'고 외치고 싸우다 세궁역진하여 스스로 목을 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