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겐의난(保元之亂)
1156년 7월 11일 일어난 호겐의 난의 발단은 원정을 실시하고 있던 도바법황이 그의 장남인 스토쿠 상황[崇德上皇]과 불화한 가운데 황태자의 책봉문제를 놓고 대립한데서 비롯되었다.
스토쿠상황은 자신의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려 했으나, 도바법황은 스토쿠상황의 동생을 황태자로 세웠다가 그를 즉위시키니 그가 곧 고시라카와 천황[後白河天皇]이다.
이런일로 스토쿠 상황이 도바법황에 불만을 품고 있을때 도바법황이 죽자, 스토쿠상황은 즉시 군사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천황측에서도 군사를 증강하는 한편 궁성의 경비를 더욱 튼튼히 하였다.
한편 스토쿠상황측의 작전회의에서는 다메토모[源爲朝]라는 젊은 장수가 야습을 주장하였는데, 요리나가는 천황의 자리를 다투는 중대한 전투에 그런 전투는 할 수 없다 일축하였다.
그러나 천황측에서는 다메토모의 형 미나모토 요시토모[源義朝]가 역시 야습을 제의한 끝에 받아들여져 1156년 7월 11일 새벽 상황이 근거하고 잇던 교와궁(白河官)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교토의 가모강 연변에 있는 시라카와궁에서는 뜻밖의 기습에 대오를 채 갖추지도 못하였다.
다이라 기요모리[平淸盛], 미나모토 요시토모[源義朝]가 거느리는 1700기가 들이닥쳤고, 부랴부랴 좌대신 요리나가, 미나모토 다메요시[源爲義], 다메토모[源爲朝] 등이 응전 하였으나, 대패하였다.
이 사건으로 하여, 스토쿠 상황은 시누키로 유배되고, 요리나가는 자결하였으며, 다메요시, 다다마사등 장수들이 참수당하였다.
이 하룻밤의 전투는 귀족의 시대에서 무사의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발판이 되었다.
■호겐의 난 대립구조
상황측 천황측
스토쿠 상황[崇德上皇] ← 황실 형제대결 → 고시라카와 천황[後白河天皇]
(형) (동생)
후지와라 요리나가 ← 셋칸가 형제대결 → 후지와라 다다미치
(동생) (형)
다이라 다다마사 ← 셋칸가 형제대결 → 다이라 기요모리[平淸盛]
(숙부) (조카)
미나모토 다메요시 ← 셋칸가 형제대결 → 미나모토 요시토모
[源爲義](아버지) [源義朝]
※ 대군을 휘하에 둔 기요모리, 요시토모의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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