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일본)

요시다 겐코, 운케이, 지엔

지식창고지기 2009. 10. 20. 11:30

요시다 겐코

吉田兼好


1283 ~ 1350/52.


일본의 시인·수필가.

본명은 우라베 가네요시[卜部兼好]. 당대에 출중한 문필가로 손꼽혔다.

수필집 〈쓰레즈레구사 徒然草〉(1330경)는 특히 17세기 이후 일본 교육의 근간을 이루었으며 그의 사상은 일본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찍이 궁정에서 일했으며 1324년 고우다 천황[後宇多天皇]이 사망한 후 불문(佛門)에 들어갔다. 

그러나 승려가 되었다고 해서 사회를 완전히 멀리한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수필에서 드러나듯이, 사회활동에 지속적이며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시는 틀에 박히고 진부한 편이지만, 수필 〈쓰레즈레구사〉는 통찰력과 기지가 엿보이는 작품으로 14세기 이래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옛 관습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통탄을 통해 그는 삶이 지난날의 영화로부터 비참하게 몰락했다고 하는 평소 신념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쓰레즈레구사〉는 미학적인 문제를 다룸으로써 극찬을 받아왔다.

그에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덧없는 것을 암시했으며, 아름다움은 그 순간이나 대상이 단명하면 단명할수록 더욱 값지다고 생각했다.

 

 

운케이

運慶


1148(?)~1223.


헤이안 시대[乎安時代] 후기(897~1185)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1192~1333] 초기에

활동한 일본의 조각가.


수세기 동안 일본 예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불교 조각 양식을 확립했다.

아버지 고케이[康慶] 역시 조각가로, 헤이안 시대 후기의 가장 유명한 조각가인 조초[定朝:?~1057]의 자손으로 여겨진다.

교토[京都] 근처의 우지[宇治]에 있는 절 뵤도인[平等院]의 봉당(鳳堂)에 모셔진 아미타 여래상은 조초가 제작한 것이다.

운케이는 20세도 채 안 되어 뛰어난 조각가가 되었으며, 나라[奈良]의 고후쿠 사[興福寺]와 도다이 사[東大寺]에 모실 불상을 제작해 달라는 가마쿠라 바쿠후[鎌倉幕府]의 위촉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수제자인 가이케이[快慶]와 20명이 넘는 조수들의 도움을 얻어 이 일에 착수했다. 

이들의 공동 작품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도다이 사 남대문에 있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1203 완공)으로 키가 거의 8m에 이른다.

금강역사상의 사실적이고 힘찬 표현 양식은 운케이 예술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말년에는 주로 가마쿠라 바쿠후를 위해 일하면서 많은 인물상을 조각했다.


 

지엔

慈円


1155. 5. 17 ~ 1225. 10. 28.


일본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초기의 천태종(天台宗) 승려·가인. 시호는 지친[慈鎭].

강력한 귀족가문 후지와라 씨[藤原氏]의 종손으로 태어나 어려서 천태종 승려로 입문하여 처음에는 도카이[道快]라는 법명(法名)을 사용하다가 나중에 지엔으로 개명했다.

얼마 안 가 그는 '삶의 영고성쇠를 이해하고 깨닫기에 힘겨워하는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역사서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220년경에 완성된 그의 대저 〈구칸쇼 愚管抄〉에서 일본사의 제반 사실을 분석하고자 했다. 

〈구칸쇼〉는 불교의 허무주의적인 말법(末法) 사상을 반영하여 저자 자신이 살고 있던 봉건시대를 종교적 몰락과 일본 문명의 해체 시기로 보았는데 이것은 현대의 역사가들도 견지하는 관점이다.

지엔은 봉건구조 변혁의 필요성을 확신하면서도 쇼군[將軍]의 권력 장악은 변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