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일본)

센고쿠 시대 - 혼노사[本能寺]의 변

지식창고지기 2009. 10. 26. 11:19

혼노사[本能寺]의 변


노부나가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강대해졌으나, 아직도 주고쿠 지방에는 강력한 모리씨

[毛利氏]가 버티고 있었다.

모리씨는 노부나가가 처음 교토로 진출한 1568년 무렵부터 서로 대립하였는데,

1576년 모리의 수군이 노부나가의 수군을 격파하고 이시야마 혼간사에 군량을 보낸적이

있었기에 노부나가는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내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에게 모리씨의

공격을 명하였다.


1582년 5월 히데요시는 마침내 빗츄의 다카마쓰성[高松城]을 공략 포위하였다.

다카마쓰성은 4m정도 높이의 언덕위에 구축한 성으로 요새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이 다카마쓰성의 공략에 상당한 고전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기재로 불리던 다께나까 한베에 마져 진중에서 급사하였기 때문에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한편 노부나가는 다케다와의 전투의 공로로 이에야스에게 스루가 일국을 수여했는데,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개선행렬에 누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영지에 최대한의 신경을 썼다.

그리하여 아즈치성의 완공과 더불어 이에야스를 초대하기로 하고 그 접대역을 아즈치의

건설책임자였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에게 일임하였다.


지만 워낙 거센기질의 노부나가의 뜻에 미쓰히데가 맞추지 못하자, 접대역을 회수하고

영지인 단바를 빼앗았으며, 적지인 이즈모[出雲]와 이와미[岩見]가 주어졌다.

또한 주고쿠를 공략중인 히데요시를 지원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이에 불만을 품은 미쓰히데는 1582년 6월 2일 새벽 주고쿠 공략에 투입된 1만 3천명의

군사를 돌연 회군하여 교토에 있는 혼노사[本能寺]를 공격하였다.


당시 혼노사에는 이에야스의 접대로 인해 시간이 지연되었던 노부나가가 주변의 성들에

아들들과 중신들을 배치한 후 최소한의 인원으로 숙박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노부나가가 시간에 쫓기는 것을 감지한 아내 노히메도 시녀들을 데리고 미리

와 있었다.


한편 아들과의 모처럼만의 재회에 흠뻑취해있던 노부나가가 잠들어 있던 새벽.

미쓰히데가 군사를 돌려 노부나가를 공격한 것이었다.

노부나가는 화살이 떨어질때까지 계속해서 쏘았으며, 화살이 떨어지자 십자창을 들고

적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노부나가의 곁에는 아내 노히메와 시동인 모리란마루가 전부였다.

노히메는 도주를 거부한 노부나가가 자결할 시간을 벌기위해 직접 창을 들고 싸우다

죽임을 당했으며, 란마루 또한 최후까지 노부나가를 지키다 죽었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수급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방에 불을 지른후 자결하였다.


이로써 천하통일을 향하던 노부나가의 49년의 도전에 종지부를 찍고, 아케치 미쓰히데는

천하를 잡았으나, 이 소식을 접한 히데요시가 모리와 화친하고 곧바로 군사를 돌려

야마자키[山崎] 에서 아케치 군을 패퇴시켰다.

이후 도주하던중 농민에게 살해되므로, 아케치 미쓰히데의 13일 천하는 끝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