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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엽기 재판 16 편 -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지식창고지기 2009. 12. 7. 10:09

 

 

▲ 사우디 서부에 있는 얀부 해상 터미널 공사 현장

 

 


 

 

 

광풍이 지나간 후의 정적이라고 할까?  한 동안 시끌벅적한 행사도 끝나고
그릅사 임원들의  출장 방문도 꿈 처럼 지나 갔다.

 

대통령 특사로 사우디를 방문 한 최규하 국무 총리의 영접 행사에서 사우디
국왕이 보여 준 예의는 정중 하고  신중 하였다. 국무 총리의 사우디 예방은
석유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을 기하기 위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특사 자격으로 사우디를 방문토록 한 것이다.

 

1970 년대 후반, 석유 소비국들은 1973 년 제 1 차 석유 파동을 겪은  이 후 
산유국들과의 긴밀한 유대를 구축하기 위하여 온 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물론 석유자원의 안정적인 조달을 위한 포석이다.

 

1970 년대 후반에 이르러 석유 소비국들의 석유 자원 확보 경쟁은 극에 달
하였다. 석유 자원을 그 어느  나라보다도 필요로하는  한국으로서는, 백방으로
자원 확보를 위한 수단을 모색하였으나, 그 당시의 국가 위상으로는 역 부족이다.

 

 

 

 

정부는 1972 - 1976 년 제 3 차  경제 개발 5 개년 계획,  국가의 경제 구도를
중화학 공업으로 설정 하였다. 이 경제 구도하에서는,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은 
그 무엇 보다도 먼저  해결 하여야  할  지상 과제였다.

 

그러나 각국 주재 대사관을 통한 통상적인 외교 체널 만으로는 산유국들과의

석유 자원울 보장 받을 수 있는 유대관계의 정립은  불가능 하였다.  급기야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사우디를 방문토록 한 것이다.

 

현지 TV 방송국은  사우디 국왕의 국무총리를 위한  만찬 장면을 생중계 하였다.
국왕과 나란히 서서 축배를 드는 장면은 사우디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잠시나마
긍지를 느끼게 하였다. 최규하 국무총리의 커다란 체구는 큰 체구의 사우디 국왕을
오히려 압도하고 있었으며, 행동이 매우 당당하였다.

 

 

                               ( 1978 년 최 규하 국무총리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사우디
                                  국왕을 예방하였으며, 국무총리의 방문은 건국이래 최초의 
                                  방문이며, 최고 관료의 역사적인 방문이 되는 것이다.)

 

 

사우디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 근로자들은 자국내가 아닌 제 3 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잠재적으로 피해 의식을 갖고있다. 따라서 이번   국무총리의
사우디 방문은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응원군이 되었고 큰 용기를 불러 일으켰다.
국무총리의 방문은 건국이래 최초의 방문이며, 최고 관료의 역사적인 방문이 되는
것이다.

 

국무총리가 사우디에 머무는 동안 정 부장은 수행원들을 위한 안내와 차량 지원
등을 하여 대사관의 일을 도왔다. 대사관에 큰 행사가 있을 때면 현지 진출 업체
들이 인력 지원, 또는 차량 지원을 하는 것은 오래 된 관례다.

 

                           *                 *                      *

 

요즈음 H 그릅의 계열 회사에서는  쉴 새 없이 임직원들을 보내 시장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달이면 평균 100 명은 다녀간다.  특히 자동차와 무역을
주로하는 계열사에서는 부문별로 팀을 보내고 있다. 2 - 3 명으로 구성 된 팀이
제다 지사에 매일 상주 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협조 업무도 다양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항 영접은 물론, 숙소
제공,  거래처 안내, 차량제공, 통신 시설 제공 등  이들을 위한 작업은 모두
정 부장과 지사 직원들의 몫이 된다. 특히 식사 때는 자리가 모자라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오래 간만에 제다 지사는 고요함을 되 찾았다. 국무총리의 방문 행사가 끝나고
계열 회사 임직원들이 모두 귀국 한 것이다. 정신 없이 붐비던 사무실과 식당이
썰렁하게 느껴졌다.

 

" 폭풍 후의 정적이라 . . . . . "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누군가 중얼 거린다.  직원 모두가 긴장 된 시간을 보낸
후  똑 같이 허탈한 상태에 빠져있다.

 

" 이런 땐 술이라도 한잔 있었으면 좋겠구만! "

 

" 말도 말아!,  현장 이야기 못 들었어? "

 

" 무슨 이야긴데?. . ."

 

" 현장에서 또  밀주 빗어  먹다가 경찰에 들켜 2 명이 강제 출국 되었다는거야"

 

" 저런!,  무얼 가지고 밀주를 만드는데? "

 

" 현장 근로자들이 만들어 먹는데,  술 맛이 기가 막힌다는군"

 

" 후식으로 나오는 과일들을 모아서 물에 설탕을 섞어 넣었다가 빵 만들 때
  쓰는  이스트를 넣고,  큰 통에 밀봉하여 일 주일만 햇볓 안드는 구석 진
  곳에 숨겨 두면 훌륭한 밀주가 된다는 거야."

 

" 그런데, 정보가 어떻게 흘러 나갔는지, 예고없이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 닥치
  더라는 거야,  근로자 5 명을 연행해 갔다는군, 그 중 2 명을 강제 출국 시켰
  다는거야 "

 

1970 년 이전만해도 사우디 정부는 외국인들의 음주를 그렇게 심하게 단속
하지는 않았다. 1970 년에 사우디에서 취업하고 있던 영국인 엔지니어가
음주 상태에서 무작정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  후 사우디 정부는
사우디 내에서의 음주를 철저하게 단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장 근로자들의 밀주 사건은 한달 여 전에도 있었다. 직원들도 모르고 있던
밀주를 어떻게 정보가 흘러 나갔는지, 어느 날 느닷없이  경찰차 2 대가 들이
닥쳤다. 경찰들은 밀주가 숨겨져 있는 장소를 쉽게 찾아냈다. 그리고 늘어서
있는 근로자들 가운데 골격이 커 보이고,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근로자
5 명과 함께  밀주통을 압수 해 갔다.

 

그 당시 정 부장과 현장 소장은 근로자 5 명의 구명을 위해서 3 일 동안을
경찰서에 출근하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다. 결국 한 밤 중에 선물 
한 보따리를 들고 경찰서장 집으로 찾아가 사죄하기에 이르렀다.

 

다음 날, 정 부장과 현장 소장은 경찰서에서 다시는 같은 일 재발 하지 않겠
다는 각서를 썼고, 근로자 5 명은  훈방 조치가 이루어 졌다.

 

근로자의 밀주 사건은 그로부터 한달여만에 재발 한 것이다. 이 번에도 직원
모르게 근로자들이  밀주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경찰차가 달려 와 근로자
5 명과 밀주 통을 압수 해 갔다.  정 부장이 국무총리 환영 행사에 매달려 있는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다. 

 

현장 소장과  관리 과장이  경찰서로 달려 갔으나  새로 부임한 경찰 서장은 완강
하였다.  세명은 훈방 조치하고 두명은 보호소에 감금 하였다가 다음 날 소지품과
함께 비행장까지 연행하여 강제 출국 시켰다.

 
그 날 저녁, 정 부장은 알콜 성분이 없는 과일 주를 식탁에 올려 놓았다.
지사 직원들만의 오붓한 식사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  모두들 그 동안 바쁘게 뛰느라 수고들 많았다. 않됐지만 과일 주로 기분을
   풀고,  식사 후에는 집에 편지들을 쓰도록 하게."

 

직원 모두가 가벼운 해방감을 즐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식사 시간은 간혹 업무의
연장이  되는 수가 많다.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담소를 곁들여 의사
전달을 한다. 특히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평소 못하던 이야기를 전달 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음주가 금지 된 이 곳에서는 식사 시간이 유일한 담소 시간
이다.

 

그런데 자재 과장의 표정이 매우 어듭다. 정 부장은 오랜 경험으로 즉시 그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 무슨 일이 있었구나! )

 

" 이봐!,  장 과장!,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

 

"  . . . . . . . . . . "

 

" 이봐!,  장 과장!  묻고 있잖아? "

 

옆에서 업무 이 과장이 한마디 거둔다.

 

" 장 과장하고 김 과장하고 오늘 오후에 한 판 붙었습니다. "

 

" 무슨 일로 ? "

 

" 밤 낮 그 놈의 차 때문이죠. 서로 차를 먼저 써야  한다고 다툰거죠"

 

정 부장은 즉시 사태를 짐작 할 수 있었다. 지사에는 승용차 4 대가
배정 되었다. 정 부장의 차를 제외하면 3 대가  업무, 경리, 자재, 총무
4 개 부서가 공용으로 쓰도록 배정을 해 놓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 차
사용 예정 시간을 차량 사용 일지에 기록 하도록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외부 업무가 주 업무인 업무과에서도 차 한대를 거이 독점하다시피 사용
하고 있다. 결국, 차 2 대로 3 개 부서가 공용하는 셈이다. 그나마, 예정과는
달리 갑자기 차를 사용 하여야 할 경우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경우, 서로 협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
협상이 순조롭지 않을 때가 있다. 서로 촉각을 세워 대립 하는 것이다.
항상 긴장 상태에 있는 해외 직원들은 사소한 시비에도 즉시 신경이
날카로워 진다. 시비가 붙으면  결국  언성을 높히게 되는 것이다.

 

그 날도 자재의 장 과장은 오전 10 시부터 차 배정을 해 놓았다. 다른 차
한대는 총무과장이 일찌감치 세관에 화물 통관 때문에 몰고 나갔다. 그런데
경리에서 갑자기 은행에 갈 일이 생겼다. 결국 자재과장과 경리 과장은 협상
을 했다. 경리 과장이 12 시까지만 사용하기로. 그러나 경리 과장은 2 시가
넘어서야 사무실로 돌아 왔다. 이것이 시비의 발단이다. 두 사람은 언성을
높혀 급기야는 언쟁이 벌어진 것이다.

 

정 부장이 총무 최 과장에게 시선을 돌린다.

 

"  여 봐!  최 과장!  본사에서 아직 차 구매 승인 않 나왔나?"

 

" 아직 않 나왔는데요,  내일 다시 한번 독촉 해 보겠습니다. "

 

정 부장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현장 곽소장
에게 전화를 건다.

 

" 나, 정부장이야!, 저녁 식사는 했어?, 그래 잘 돌아 가? "

 

" 벌써 먹었지, 지금 몇 신데, 그래, 지사의 식사 시간은 좀 늦지?, 정 부장은
  식사 전이겠군,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 "

 

" 곽 소장!  부탁이 하나 있어,  들어 줘야 겠는데, . . .  우리가 본사에 차량
 한대 구매 요청을 낸 것이 있는데, 승인이 늦어지고 있어. 현장에서 차 한대만
 뽑아 주게, 한 일 주일 만 쓰면 될 것 같애."

 

" 그래?, 누구의 부탁이라고 거절 하겠나?,  뽑아 줘야지, 그런데 승용차는
  귀하고,  미니 포터를 한대 빼 주지.  괞찮겠나? "

 

" 미니 포터도 감지 덕지지. 감사하이! "

 

장 과장의 표정이 그제야 펴 진다. 멋 적은 듯 식탁에 다가 앉으며, 김과장의
얼굴을 힐긋 살핀다.

 

정 부장이 한마디 한다.

 

" 들었지?,  현장에서 미니 포터를 한대 뽑아 준다고 하니, 그건 자재용이야,
 그리고 총무는 내일 또 본사에 독촉하고. "

 

그 날 저녁은 특별히 준비한 불 고기 만찬과  알콜 성분이 없는 과일 주로
분위기를 띠우며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다.

 

                 *                       *                          *

 
정 부장은 문득 몇일 전 아내로부터 받은 편지 생각이 났다. 그 동안 바쁜
나날에 답장 쓰는 것을 잊고 있었다. 침실 책상에 다가 앉아 마음을 조용히
추스른다. 펜끝이 흰 종이위를 빠르게 흝고 지나간다.

 

 

"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 편지를 받고도 일찍 답장을 못내어 미안 하구료.  하루 하루가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아  긴장 속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지낸다오. 그래도 같이
  지내는 직원들이 잘 따라주고 모두들 열심히 해 주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없다오.

  두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당신도 힘이 많이 들겠구료.
  조금만 더 참아 봅시다. 이제 곧 월급도 오르고 해외 수당도 오른다니
  조금만 더 참으면 확고한 생활의 터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소.

 

  아이들이 공부 열심히 하고, 말들을 잘 듣는다니 다행이구료. 아무래도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항상 대화를 나누는  당신의 교육 방식 덕분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구료.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절로 뿌듯 해 짐을 느낀다오.

 

  당신이 잘 하고 있겠지만,  아이들은 항상 세심하게 살펴주고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오. 설사 잘 못 한것이 있어도 질책하는 쪽보다는 기를
  살려 주는 쪽으로 다스려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소.

 

  인편에 보내준 와이셔츠와 양말 등 잘 받았소. 당분간은 아무것도 보내지
  않아도 돼요.

 

  큰 놈, 작은 놈, 두 놈에게 주는 선물을 당신 선물과 함께 포장해서 인편에
  보내니, 받아 보구료.

 

  이제 밤이 깊었소.  내일을 위해서 오늘은 이만 펜을 놓아야겠소.

  당신과 아이들의 안녕과 건강을 빌면서,

 

                                당신의 Hus가 "

 


그리고  정 부장은 새로운 종이를 꺼내어 써 내려간다.


" 큰놈, 작은 놈 에게,

 

  엄마가 보낸 사진을 보니, 너희들 무척 컸더구나.  이제는 너희들도
  엄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할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책 가방 싸는 것, 숙제 하는 것, 옷 갈아 입는 것,  이런 것들은  이제
  엄마가 해주기 전에 너희들 스스로 해도 될 것 같다.

 

  지난 학년에도 너희들이 모두 우등 상을 탓다니, 아빠는 기쁘기 한이
  없단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그리고 활발하게 활동 하는
  것도 중요 하단다. 친구들과 어울리는것도 소홀이 하면 안된다.

 

  아빠는 너희가 다음과 같은 5 가지 사항을 꼭 지켜 주기 바란다.

 

   1.  정직하라.  ( 절대로 거짓말 하지마라.)
   2.  책을 많이 읽어라. ( 만화 책도 좋고 동화 책도 좋다.)
   3.  그 날 배운 것은 집에 와서 반드시 복습하는 습관을 길러라.
   4.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적극적으로 어울려라.
   5.  하루에 일어났던 일은 저녁에 엄마에게 반드시 이야기 해라.

 

아빠와의 약속이라 생각하고, 항상 마음속에 담아 두기 바란다.

오늘도 너희들의 건강을 빌면서,         제다에서  아빠가 "


편지의 끝머리를 채우자 눈이 스르르 감긴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12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밤이 깊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