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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엽기 재판 ( 2 편 ) - 현장 답사

지식창고지기 2009. 12. 7. 10:13

 
▲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지 맥카

세기의 엽기 재판  ( 2 편 ) - 현장 답사

 

 

의명  전문을 받은지 2시간 후, 요란한 전화 벨 소리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정부장의 귓전을 때린다.       무의식 적으로 벌떡 일어나 전등을 키고 시계를 본다.  꽤나 기계적인 동작이다.    

제다 지사에 부임한 이후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정부장에게는  밤에 걸려 오는 전화에  꽤나 숙련 된  반응 인 것이다.  본사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왕 회장이 금년 초  이곳을  다녀 간 이후로는 왕 회장으로 부터의 전화가 빈번하게 있었다.   잠을 자도 눈 대신 귀는 항상 열어 놓고 잠을 잔다.

 

시계바늘이  새벽 1시 30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머리 맡에 있는 수화기를 집어 들자 낯 선 부드로운   목소리가 들려 온다.

 

" 수고 많으십니다. 정 부장이시지요? "
" 네, 제다 지사의 정부장 입니다. "
" M 변호사 입니다. 이게...참,  황당한 일을 겪게 되어서 고생 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 ........ '


" 국내 일이라면 모르겠는데, ... 먼 나라의 일이라......재판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
 어떤 절차가 필요 한지?, ... 사우디 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는데, ...
 현지에도  변호사가 있읍니까? "

 

듣고보니 황당 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어쩐다?. 그러나 구원을 절규하는 사람에게 절망감을
줄 수는 없다.
 
" 변호사님!,  우선 이렇게 하시지요,  제게   2 일간만 시간을 주시면, 현지에서 소송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소송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유능한 변호사를 구 할 수 있는지?
 등 기초 조사를 해서 보고를 드리겠읍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고소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 인가요?."


"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 만나서 이야기 하기로 하고, 정 부장님 말씀대로 기초 조사를 해서
 알려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


안도감을 표시하는 " 휴 -"  하는 소리가  통화 끝자락에 가늘게 들려 온다.

 

M 변호사의  안도의  한숨소리는 쉽게 이해 할 수가 있다.  M 변호사는 전체 회의에는 참석 하지 않으나,   내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느닷없이   왕 회장으로 부터    본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지시 받았을 때는 당황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문 변호사도    계약직이기는 하나,  왕 회장 앞에서는 긴장을 풀 수 없는 한낮 임원에 불과 한 것이다.

 

더구나 국내 문제가 아니라 생소한 사우디에서의 문제인 것이다.   사우디가 지구 어느 구석에   자리 한지 조차  관심이 없던 지역이다.   국내  문제만  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 것이다.  하물며, 사우디에서의 소송이라!,   황당 할 수 밖에 없다. 저녁내 고민을 하다가, 막힌 숨을 추수리며 현지의 정부장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정 부장과의 통화 후, 막힌 숨이 다소 가라 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의외로 정 부장의  적극적인   자세가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더 이상 잠자기는 틀렸다. 정 부장은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침대머리에 놓여 있는 책상에 다가 앉았다.    생각을  정리  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장소가  낮 선 사우디 법정이다.  사우디 법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다.     하물며 재판이 어떻게 진행 되는지도 모른다. 재판은 어느나라 말로 진행 될까?     영어?,    독일어?,  일본어?,  한국어?,  그렇지!,   사우디 말이 있었지!.  그런데 사우디 말이라곤   " 인 샬라! ( 신의 뜻 ) "   밖에  아는 것이 없는데... ..      천만분의 일이라도 승산이   있는 게임 일까?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책상위에 팔 베게를 하고 엎드려 있는 자세였다

 

선 잠을 깬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전 7 시다.  사워장으로 달려가  정신없이 물 줄기를
온 몸에 뿌린다. 재판의  악몽이라도 떨어 내려는 듯이.  머리가 약간은 맑아 지는 것 같다.

 

아침 식사를 먹는등 마는등, 커피 잔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 선다.   현지인  조수  마하믇도     이미   출근 해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하믇은 아주  영리한 녀석이다. 이 사무실에서 이미  일년 넘게 근무 했다. 사우디 본토 출신이 아니고 레바논 출신이다. 사우디 본토인과는 행동 규범이 다르다.  눈치가 빠르고, 영어 소통이 잘 되어 비서겸 조수로 쓰고 있다. 우스게 소리도 잘 하여 한국 직원 들과도 곧 잘 어울린다. 출근도 한국 직원들 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7시 50분이면 이미 자기 자리에서 사우디 신문을 펴 놓고  정부장에게  보고 할  그날의 기사거리를  추리고 있다.

 

업무 담당 조과장과 마하믇을 즉시  회의실로 부른다.  지난 밤 M 변호사와의 통화 내용을  설명하고,  점검 할 사항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나간다.  조과장에게는 영문판 전화 번호책을  뒤져  제다에서 개업하고 있는 변호사의 이름,  주소, 전화 번호  리스트를 만들도록 지시 하고,  정부장은 마하믇을 데리고 법원 현장 답사에 나섰다. 백지 상태에서 출발 할 때는 현장 답사가   시발 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정 부장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서뿔리 가설을 앞세운 현장 답사는 방향 설정을  크게 그르치는 수가 있다.   방향 설정이 잘  못 되면  귀중한 시간과 경비의 낭비를 피 할 수 없다. 처음부터 현장을 찾아  현장이 어떻게 구성   되어 있는지?  법원   건물은 어떤 구조 인지?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사람들은 어떤 복장을 하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표정들은 어떤 것인지?,    분위기는 어떤지?, 하다 못해 주차장의 위치와 규모는    어느정도 인지?    화장실 위치는     어디인지?  등을  파악하고 나면, 일단은 법원이라는 개체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기고, 이 자부심은 다음단계로 전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법원 건물을 한 바퀴 휘들러 보고는 곧장 법원의 고시물이 게시되는 방문자 홀로 이동한다.
벽에는 온 통 사우디 법원의 문장이 새겨진 사우디어 공문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붙어 있다.
정 부장은 그 중 하나를 가리키며 묻는다.
 
"  무슨 말이야 ?,"    마하믇이 한 동안 혼자 중얼 거리다 통역을 한다.
"  K 소송건,   2차  사실심리 ( Hearing )가  내 달  25일에 있다는  내용 입니다. "
 
옳지!, 2차 심리부터는 개별 통지 없이 여기에 공고문 으로  대신 하는군.  할 일 없이 공문만
기다리다가 시기를 놓지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겠군.   마하믇에게 정신이 번쩍 나도록 일러준다.

" 알았어 ?, 노트에 적어,  삼일에 한번씩 여기를 들러, 잊지 말고, "

 

마하믇을 앞세워 현재 진행 중인 법정으로 이동한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단층, 또는 2층 건물 들이 법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판이  밀폐 된 공간에서 비 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진행 과정을 엿 볼 수가 없다.  한참을 헤메다가 겨우  진행 중인 재판을 였 볼 수 있는  2 층 법정을 찾아 내어 잠시동안  내부를 엿 볼 수 있었다.


단 위에 판사로 보이는 세 사람, 단 아래에  왼쪽에 피고석,  오른 쪽이 원고석, 등 받이가    없는 낡은  긴 의자가  눈에 들어 온다.     피고석의 변호사가 열심히 변론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쯤이면 오늘의 현장 답사는 만족 할 만한 것이다.

 

법원을 떠나는 마지막 절차는 화장실을 찾아 용변을 보는 것이다. 정 부장에게는 오래전부터  깨어지지 않는 나름대로의 전통 의식이 있다.  관공서이든, 거래처이든  첫 방문 때는   어김없이  화장실을 찾아 대변이든 소변이든 용변을 하고 그 자리를 뜨는 것이다.       상대방의 중요도에 따라    소변이든 대변이든 가려 지는 것이다.  용변 후에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간다는 성취감에  앞으로의 활동에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야생 동물들이 방뇨를 함으로서 자기 구역을 표시 하듯이, 정 부장에게도 이 곳이  장차 자기 영역 임을 표시하는  그런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