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세계)

고대 이집트의 문명과 람세스의 역사[4]

지식창고지기 2010. 2. 2. 19:08

고대이집트 문명에 관하여/

개요


BC 3200
년경부터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이 통일할 때까지 약 3,000년간 오리엔트 지방에 번영했던 세계 최고(
最古)의 문명.


선사 시대


이집트가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금석병용시대를 경유하여 역사시대(왕조시대) 로 이행된 것은 확실

하다. 이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플라이스토세(
)는 자연경 관(自然景觀)도 왕조시대와는 차이가 있었. 유럽 빙하기(氷河期)의 영향으로 우기(雨期)와 건기(乾期)가 교대로 왔으나 그 무렵의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지역 은 현재의 하곡지대가 아니라 주로 서방의 대지(臺地)였다.

아슈르기(
) ·무스티에기 ·솔뤼트레기 등에 속하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은 나일강 에 형성된 단구(
) 위나 파이윰호(),
하르가 등의 오아시스 주변의 높은 지 점에서 발견된다.

중기까지의 문화가 이집트 전토(
全土)에 걸쳐 동일한 데 대하 여 후기에 이르러서는 파이윰 지방에 에피르발루아 문화, 하르가 오아시스의 아 테리안 문화 등의 지방색이 나타났다.

이 시대의 북아프리카는 다우습윤(
多雨濕 )에서 건조(乾燥)로의 이행기(移行期)에 해당한다.

중석기시대(
中石器時代)를 거쳐 신석기시대로 접어들 무렵에는 건조화가 진전되 어 나일강의 수위(水位)도 내려가고 자연환경도 현재와 비슷하게 되었다.

사람들 은 차차 나일하곡에 모여 정주하였으며, 농경 ·목축을 영위하면서 왕조시대로 이 어지는 사람들
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대체로 BC 5000년경의 일이다.

이 시대의 유적은 카이로 서남 80 km에 있는 파이윰(A) 문화, 중부 이집트 동안 (
東岸)의 델 타사 문화가 알려져 있는데 반정주(半定住)의 상태이며, 농경과 수 렵이 반반이었다. 토기 ·석기 ·골각아기(骨角
牙器) ·바구니세공[籠細工] ·직물 · 피혁제품 ·팔레트(화장접시) ·꾸미개[裝身具]
등을 가지며, 미 상 ·하 이집트에 서 각각 그 특징이 나타나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신석기시대의 후기에 속한다. 이에 뒤따르는 금석병용기(
金石倂用期), ()이집트에서는 바다리 문화, ()이집트에서는 메림데 문화가 알려져 있다.

바다리에서는 고타(
敲打)에 의한 것이고, 주조법(鑄造法)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최초의 구리제품이 발견 되었으며, 토기가 현저히 발달했다. 경제는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시나 이 ·누비아산()의 공작석(孔雀石)이나 홍해산(紅海産)의 조개, 시리아산의 삼목 재(杉木材) 등이 수입되었다.


선왕조


이집트의 선왕조시대(BC 3600?∼BC 3100?)는 국가의 형성에 직접 연결되는 중 요한 시대이며, 암라(나카
Ⅰ)문화 ·마아디(Maadi)문화 ·게르제(나카다 Ⅱ)문화 등이 있다.

인공관개(
灌漑)가 도입되고, 인구는 증가하고, 촌락은 도시 규모로 되 었다. 왕조시대의 노모스[]의 기초가 이루어진 것도 이 시기이다.

외국과의 교 역도 더욱 왕성해졌는데, 특히 아시아산(
) ·() ·자수정 ·흑요석(黑曜石) · 금석(靑金石)이나 메소포타미아산 원통인장(圓筒印章) 등이 수입되었다.

토기나 호부(
護符)에 토템을 나타내는 동물이 그려져 있는데, 후세의 하트호르와 닮은 우두(牛頭)의 여성도 보인다. 무덤에는 우샤브티를 연상시키는 인형이 부장 되었으며, 후장(厚葬)의 풍습이 엿보인다.

게르제기(
)에는 노동의 분화와 신분 의 차가 보이며, 파상 파수토기(波狀把手土器) ·유문토기(有文土), 프린트제 ()의 정교한 손칼(刀子)이 한창 만들어졌다. 게르제기의 히에라콘폴리스의 무덤 에는 석회칠이 되어 있고, 그 위에 갖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어, 왕조시대에 성행한 벽화의 조형(祖型)을 이룬.


초기 왕조


이집트의 초기 왕조시대는 제1~2왕조(BC 3100?∼BC 2686?)시대를 말한다
.

국토의 통일과 건설의 시대인 게르제기(
)의 말에 상 ·하 이집트의 각 노모스는 차차 통합되었고 곧이어 남북으로 서로 적대하는 두 개의 왕국으로 발전하였다.

쌍방이 함께 왕가와 같은 종족의 귀족에 의하여 지배되었는데 처음에 하이집트는 부토, 상이집트는 히에
라콘폴리스를 수도로 하였다.

그 뒤 북은 사이스, 남은 티 니스(티스)로 옮겼다. 한때 북왕국이 남왕국을 지배하였으나 최종적으로는
남왕국이 전국토를 지배하 였다.

이 통일에는 스코르피온, 나르미아 두 왕이 활약하였는데 그 기록은 히에라 콘폴리스에서 발견된 석회암
(
石灰岩製)의 곤봉두(棍棒頭)와 봉납용(奉納用)의 팔레트에서 볼 수 있다.

BC 280
년경 이집트의 신관(
神官) 마네토는 상 ·하 이집트 를 처음으로 통일하였고, 새로이 멤피스를 축조한 제1왕조 초대의 왕은 메네스였 다고 하나, 그것은 나르미아와 동일인물인 것 같다. 이 통일은 BC 3100년경에 이 루어졌다고 짐작된다. 마네토에 의하면 제1왕조는 8명의 왕, 2왕조는 9명의 왕이 즉위하였다.

그러나 400년에 걸친 초기 왕조시대에 관하여는 채광(
採鑛)을 위한 시나이 원정과 누비 아 토벌 이외에는 거의 분명하지 않다. 국왕과 그 가족은 아비도스와 사카라에 매 장되었는데 그곳에서의 출토품이 당시 문화의 한 면을 나타낸다. 왕묘는 마스타 바의 형태를 취하였다.

(
)이 되는 왕에 의한 통치사상이 널리 퍼졌으며, 국가 의 조직이나 토목 ·건축의 기술도 크게 진보하였다. 문자도 이 시대에 크게 발전하 였으며, 석제용기 ·동제품(銅製品) ·귀금속 ·보석 가공 등의 공예도 높은 수준에 이 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