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일본)

일본문학(Britannica) - 근대(도쿄 시대)

지식창고지기 2010. 2. 11. 10:10

근대(도쿄 시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 1868]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기를 근대라 부른다. 메이지 신정권이 부국강병책·서구화주의를 추진함에 따라 서유럽의 기술과 지식이 소개되어 문명개화 풍조가 팽배하고 사회 각계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상황은 문학에도 파급되어 근대문학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말하는 근대문학은 그 담당자가 지식인이며 그 근저에 자유주의·개인주의 사상과 인간성의 긍정·해방에 대한 염원이 깔려 있는 것을 말한다. 서구문학의 영향도 그 특색의 하나이며 소설 장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문예 저널리즘 성립에 따라 문학의 의의도 증대되었다.

 

계몽기의 문학과 근대문학의 여명

메이지 유신에 의한 근대화의 발전이 바로 근대문학 창출의 길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정치·경제에 중점을 둔 근대화였기 때문에 문학면에서의 근대화는 지지부진했고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나카무라 마사나오[中村正直], 니지마 조[新島襄], 나카에 조민[中江兆民] 등 지식인들은 서양의 사상·문화를 전하고 계몽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한편 메이지 유신 전후에 일단 쇠퇴했던 게사쿠[劇作 : 통속소설] 문학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 가나가키 로분[假名垣魯文]의 〈세이요도추히자쿠리게 西洋道中膝栗毛〉·〈아구라나베 安愚樂鍋〉가 주목을 받았고, 나루시마 류호쿠[成島柳北]는 〈류쿄신시 柳橋新誌〉를 써서 문명 개화의 풍조를 풍자했다. 1878년을 전후해서 번역소설과 정치소설 출현의 기운이 일었다. 서양사정의 소개가 주목적이던 번역소설은 자유민권운동이 격화되면서 정치소설 번역으로 옮아갔고 정치소설 창작도 출현했다. 야노 류케이[矢野龍溪]의 〈게이코쿠비단 經國美談〉, 도카이 산시[東海散士]의 〈가진노키구 佳人之奇遇〉, 스에히로 뎃초[末廣鐵腸]의 〈설중매 雪中梅〉 등이 청년층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이 번역소설과 정치소설은 근대문학 창출의 전제가 되었다.

 

사실주의의 제창

메이지 초기의 계몽사상은 개량주의 사상으로 발전하여 문학에도 그 여파가 미쳤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쓰보우치 쇼요[坪內逍遙]의 〈소설신수 小說神髓〉(1885~86)에 의한 소설 개량이다. 공리주의 문학관과 유희적 문학관을 배격하고 사실주의 방법을 주장한 쇼요의 제창은 근대문학으로의 성장에 매우 의의있는 일이었다. 그의 이론 실천이 〈도세이쇼세이카타기 當世書生氣質〉(1885~86)이다. 쇼요의 사실주의를 계승하여 보다 높은 문학성을 획득함으로써 근대소설의 여명을 고한 작품은 후타바테이 시메이[二葉亭四迷]의 문학론 〈소설총론 小說總論〉의 구체화인 〈뜬구름 浮雲〉(1887~89)이다. 여기서 그는 독창적인 구어체를 채용하여 언문일치 소설의 효시가 되었다.

 

낭만주의 문학의 여러 양상

시메이와 함께 근대문학에 대한 자각을 촉구한 문학가는 모리 오가이[森鷗外]이다. 그의 소설 〈무희 舞姬〉(1890)는 아문체(雅文體)로 쓴 낭만적인 작품이다. 오치아이 나오부미[落合直文]와 협력하여 낸 번역시집 〈오모카게 於母影〉(1889)는 일본 근대시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시가라미조시 しがらみ草紙〉를 창간하여 비평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쓰보우치 쇼요와 오가이 간의 몰이상논쟁(沒理想論爭)은 문예비평 발전에 기여한 대논쟁이다. 〈뜬구름〉 이후 메이지 20년대(1887~) 소설계를 이끈 것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가 이끄는 겐유샤[硯友社](1885 결성)계의 문학과 고다 로한[幸田露伴]이다. 고요는 〈니닌비쿠니이로잔게 二人比丘尼色懺悔〉(1889)로 문단에 등장하여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또한 〈다정다한 多情多恨〉(1896)·〈금색야차 金色夜叉〉(1897~1902) 같은 작품을 써서 내면적 묘사에 성공했다. 한편 풍부한 고전적 소양을 바탕으로 박력있는 문장을 구사했는데, 〈오층탑 五重塔〉이 대표작이다. 〈소설신수〉의 영향으로 사실주의 경향이 팽배하고 겐유샤의 풍속 사실소설이 문단을 석권한 메이지 20년대 전반 문단 일각에서는 기타무라 도코쿠[北村透谷]를 비롯한 〈분가쿠카이 文學界〉(1893 창간)의 청년들이 등장하여 근대적 자아를 외치며 메이지 낭만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도코쿠는 〈염세시인과 여성 厭世詩家と女性〉(1892)·〈내부생명론 內部生命論〉 등 뛰어난 직관과 철저한 자유주의에 입각한 평론을 썼다. 고요와 로한에 이어 등장한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는 〈키재기 たけくらベ〉·〈니고리에 にごりえ〉 등 서정적이고 사실적인 작품과 많은 일기를 남겼다.

청일전쟁 후 낭만주의와 전후의 사회문제의 영향을 받아 히로쓰 류로[廣津柳浪], 가와카미 비잔[川上眉山], 이즈미 교카[泉鏡花] 등은 관념소설·심각소설을 시도하여 성격·심리 묘사에 사실적인 깊이를 더함으로써 신국면을 개척했다. 도쿠토미 로카[德富蘆花]는 〈불여귀 不如歸〉(1898) 등에서 이상주의적인 정열을 보였고, 〈겐 삼촌 源叔父〉을 써서 낭만주의 작가로 출발한 구니키다 돗포[國木田獨步]는 자연감각을 표출한 단편을 발표하여 뒤이어 대두한 자연주의에의 교량 역할을 했다.

 

자연주의 문학의 성립

메이지 30년대(1897~) 중반 고스기 덴가이[小杉天外], 나가이 가후[永井荷風], 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 등에 의해 초기 자연주의 문학이 출현했다. 이들의 작품에는 프랑스의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의 영향이 강하게 배어 있다. 평론가 하세가와 덴케이[長谷川天溪]가 강력한 운동을 전개한 것은 1906년 이후이다.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은 시에서 산문으로 전환하여 〈파계 破戒〉(1906)를 발표했고, 다야마 가타이도 〈이불 蒲團〉(1908)을 발표하여 일본 자연주의 사소설(私小說)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어 〈생 生〉(1908)·〈시골교사 田舍敎師〉(1909)에서 작가의 주관을 배제하고 사물을 외부에서만 묘사하는 평면묘사의 주장을 구체화했다. 그밖에 마사무네 하쿠초[正宗白鳥], 도쿠다 슈세이[德田秋聲]를 비롯해 작자의 주관을 이입(移入)한 주인공의 시점에서는 일원묘사(一元描寫)를 주장한 이와노 호메이[岩野泡嗚] 등이 활약했다.

 

탐미파의 문학

메이지 40년대(1907~)에는 반자연주의 경향으로 탐미주의가 일어났다. 이들은 어두운 현실에서 유리하여 예술적인 미의 세계를 추구하려는 예술지상주의적·향락적인 면을 지향했다. 대표 작가로는 〈아메리카 모노가타리 あめりか物語〉 등의 나가이 가후와 〈문신 刺靑〉(1910) 등의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를 들 수 있다.

 

모리 오가이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자연주의 문학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을 때 시류를 초월하여 독자적인 문학을 완성한 작가로 모리 오가이나쓰메 소세키가 있다. 오가이는 〈기러기 雁〉(1911~3)·〈아베일족 阿部一族〉(1915)·〈다카세부네 高瀨舟〉(1916) 등 명작을 발표했다. 그의 주지적 작품과 격조 높은 문체는 기노시타 모쿠타로[木下太郞], 나가이 가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등에 영향을 주었다. 소세키는 해학·풍자소설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吾輩は猫である〉(1905)· 〈도련님 坊っちゃん〉(1906)을 썼고 그의 인생관·예술관인 '비인정'(非人情), '저회취미'(低徊趣味)를 구현한 〈풀베개 草枕〉(1906)를 발표했다. 〈산시로 三四郞〉·〈마음 心〉· 〈명암 明暗〉 등에서 현실과 이상의 모순을 추구하고 전통과 근대의 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문명비판을 시도했다.

 

시라카바파[白樺派]의 문학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이상주의 풍조의 영향으로 인도주의를 표방한 신문예가 〈시라카바 白樺〉(1910 창간)를 중심으로 발생했다. 〈행복자 幸福者〉·〈우정 友情〉의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實篤], 〈어떤 여자 或る女〉의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郞], 〈암야행로 暗夜行路〉의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다정불심 多情佛心〉의 사토미 돈[里見煎弴] 등이 주요작가이다. 그밖에 나가요 요시로[長與善郞], 구라타 햐쿠조[倉田百三]가 있다.

 

신시초파와 사소설의 완성

1916, 1917년부터 시라카바파에 이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해서 근대문학의 하나의 정점을 이룬 것은 〈신시초 新思潮〉·〈미타분가쿠 三田文學〉·〈기세키 奇蹟〉 등의 동인지에서 등장한 작가들이다. 〈라쇼몬 羅生門〉·〈지옥변 地獄變〉 등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기쿠치 간[菊池寬], 구메 마사오[久米正雄]가 있고, 야마모토 유조[山本有三], 도요시마 요시오[豊島與志雄]도 〈신시초〉계의 작가이다. 기쿠치와 구메는 통속소설로 전환하여 대중문학 장르의 성립을 촉진했다. 〈미타분가쿠〉에서도 구보타 만타로[久保田萬太郞], 미나카미 다키타로[水上瀧太郞]가 인정을 받았으며 사토 하루오[佐藤春夫]도 지적 권태와 과민한 신경으로 산문시 〈전원의 우울 田園の憂鬱〉 등을 썼다. 또한 히로쓰 가즈오[廣津和郞], 소마 다이조[相馬泰三], 가사이 젠조[葛西善蔵] 등 〈기세키〉(1912 창간)의 동인들과 우노 고지[宇野浩二]는 소설의 제재를 신변에서 찾아 실생활의 사건과 심정의 굴절을 그렸고 시가 나오야 이하 시라카바파 작가뿐만 아니라 시마자키 도손, 도쿠다 슈세이 등 자연주의 작가도 신변사를 소재로 개성미를 보였는데 이 작품들은 독자적 소설양식으로 주목되어 사소설·심경소설을 이루었다.

 

신감각파와 프롤레타리아 문학

쇼와[昭和 : 1926~89] 초기 문단의 특징은 무산계급의 해방을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기성의 문학관념이나 문장표현의 혁명을 지향하는 신감각파·예술파 문학이 대립하면서 활동한 점이다 (→ 색인 : 프롤레타리아 소설).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수차의 분열을 거듭하다가 일부는 전일본무산자예술동맹(NAP)이 결성되면서(1928) 기관지 〈센키 戰旗〉(1928)를 중심으로 센키파를 형성했고, 다른 일부는 사회민주주의적인 노선을 취하여 〈분게이센센 文藝戰線〉(1924)에 모였다. 센키파 작가로는 〈게공선 蟹工船〉의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도쿠나가 스나오[德永直],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미야모토 유리코[宮本百合子] 등이, 분게이센센파에서는 마에다코 히로이치로[前田河廣一郞],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히라바야시 다이코[平林たい子] 등이 활약했다. 신감각파의 대표 작가는 〈기계 機械〉의 요코미쓰 리이치[橫光利一]와 〈이즈의 무희 伊豆の踊子〉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이다. 이들은 신감각파의 기관지 〈분게이지다이 文藝時代〉가 폐간되자(1927) 다시 신흥예술파(新興藝術派)를 결성했다(1929). 이 계통에는 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가와카미 데쓰타로[河上徹太郞]가 있으며, 작가로는 기무라 이소타[嘉林磯多], 이부세 마스지[井伏鱒二], 호리 다쓰오[堀辰雄], 이토 다다시[伊藤整] 등이 배출되었다.

 

문화 통제하의 문학

만주사변(1931)·태평양전쟁(1941)으로 전쟁이 확대되어 정치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언론·사상의 탄압이 강화되고 사상적 불안과 혼란이 깊어갔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려고 활발한 문학운동이 일어나 '문예부흥'이라 불렸으나 중일전쟁 이후의 어려운 사회상황과 문화통제로 쇠퇴하고 대신에 국책문학·전쟁문학이 장려됨으로써 문학 불모의 시대가 되었다. 고바야시 히데오 등이 〈분가쿠카이 文學界〉를 창간하여(1933) 자유로운 입장에서 쇼와 문학추진의 기틀을 마련하려 할 즈음 〈니혼로만하 日本浪漫派〉가 대두하여(1935) 적극적으로 국수주의 사상을 내걸고 일본 정신의 재검토, 전통미의 부활을 꾀했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이 해산된(1934) 후, 이상을 잃고 전쟁 위기에 직면한 작가들은 자학적인 패배문학으로 기울어졌다. 이러한 데카당스에서 다카미 준[高見順],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다자이 오사무[太宰治]가 출현했다. 또 이 시기에 마르크스주의에서 전향한 작가의 전향문학이 등장했다. 또 기성 근대작가인 시마자키 도손, 시가 나오야, 도쿠다 슈세이, 나가이 가후,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이 활약하여 많은 수확을 얻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자(1937), 군국주의가 강화되고 국가권력이 노골적으로 문예간섭을 함에 따라 양심적인 작가활동이 어려워지는 한편 국책문학·전쟁문학이 출현하여 태평양전쟁 이후 패전 때까지 문단은 암흑기였다.

 

전후의 문학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전쟁이 끝나자 전쟁중 무언의 저항을 하던 나가이 가후, 시가 나오야 등 대가들이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무뢰파(無賴派)라 불리던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다자이 오사무 등은 기성질서로부터의 탈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또 전쟁 전 프롤레타리아 계열이던 미야모토 유리코[宮本百合子],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등은 〈신니혼분가쿠 新日本文學〉를 창간하여(1946) 민주주의 문학운동을 추진했다. 패전 후의 활성화된 문단을 대표한 것은 노마 히로시[野間宏], 우메자키 하루오[梅崎春生], 시이나 린조[椎名麟三] 등 제1차 전후파 작가들이다. 혼다 슈고[本多秋五], 히라노 겐[平野謙] 등이 창간한(1946) 〈긴다이분가쿠 近代文學〉는 전후문학의 커다란 추진력이 되었다. 하니야 유타카[埴谷雄高], 오오카 쇼헤이[大岡昇平], 다케다 다이준[武田泰淳], 나카무라 신이치로[中村眞一郞],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등도 쇼와 20년대 전반부터 활약하기 시작했다. 1950년을 전후해 등장한 아베 고보[安部公房], 홋타 요시에[堀田善衛], 시마오 도시오[島尾敏雄] 등은 제2차 전후파라 불린다. 1951년 일본이 미국 등 48개국과 강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전후 점령상태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이룩하자 비정치적인 일상생활을 추구하는 작가들이 등장하는데 야스오카 쇼타로[安岡章太郞], 요시유키 준노스케[吉行淳之介],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등 이른바 제3의 신인들이다. 1955년경부터 1960년경에 걸친 일본의 고도경제성장기에는 공전의 소비 붐이 일고 전후문학도 크게 변질되었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등장하여 이후 일본문학의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어 순수문학파(純粹文學派)라 불리는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가이코 다케시[開高健] 등이 활동하여 폐쇄적이던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근대시

일본의 전통시가와 구별되는 시(詩)는 서양시의 영향을 받아 메이지 시대에 출현했는데 1882년 야타베 료키치[矢田部良吉], 도야마 마사카즈[外山正一],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郞] 등이 펴낸 〈신체시초 新體詩抄〉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테니슨 등의 번역시와 수편의 창작시가 실린 시집으로 내용적으로는 졸렬한 작품이 많다. 그러나 복잡한 사상·감정을 일상어를 써서 새로운 시형으로 표현하려는 혁신적 기개는 신체시 창조의 기운을 낳았다. 모리 오가이의 역시집 〈오모카게 於母影〉(1889)는 신체시의 예술적 가능성을 증명한 것으로 주목된다. 메이지 20~30년대에는 낭만적 시풍의 전성시대를 맞았는데 기타무라 도코쿠의 영향을 받은 시마자키 도손의 〈와카나슈 若菜集〉(1897)는 근대시의 첫 성과이며 도이 반스이[土井晩翠], 묘조파[明星派]의 스스키다 규킨[薄田泣菫], 간바라 아리아케[蒲原有明] 등이 각각 개성을 꽃피웠다. 아리아케는 상징시를 개척했고, 우에다 빈[上田敏]의 역시집 〈해조음 海潮音〉(1905)은 상징시 전개에 영향을 주었다. 메이지 40년대에는 자연주의 영향이 시에도 파급되어 형식의 제약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사건이나 인상을 구어로 읊으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자슈몬 邪宗門〉의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미키 로후[三木露風] 등 탐미파의 상징시가 주류를 이루었다. 다이쇼기[大正期]에 접어들면서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가 철저하게 평이한 일상어로 쓴 자유시를 시도했고,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郞]는 감수성·상징성·음악성을 갖춘 구어시를 써 그 예술성을 확립했다.

다이쇼 말기에는 미래파·다다이즘 등 전위예술운동과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 시의 운동으로 전통적인 시가 부정되고 새로운 현대시 정신이 출현했으며,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시와 새로운 주지적 시를 추구하려는 〈시토시론 詩と詩論〉(1925~28)파의 시가 대립하면서 성장했다. 그뒤 〈시토시론〉 운동을 둘러싼 예술파의 시인들은 각자의 자질이나 개성에 따라 〈시키 四季〉(1934 창간)파 등 여러 유파로 나뉘어 현대시 활동을 전개했다. 전쟁기간 시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성이 지극히 황폐했으나, 전후 부흥함으로써 전전파 쇼와 시인들이 활발한 창작을 재개했다. 한편, 〈아레치 荒地〉의 시인들이 출현하여 문명비판과 인간성을 추구했다. 그리고 전후 10여 년 무렵부터 다시 새로운 움직임이 일었다.

 

단카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서도 전통적 미의식에 의한 게이엔파[桂園派]의 흐름이 주류를 이루어 다카사키 마사카제[高崎正風] 등 궁내성 오우타도코로[御歌所]에 소속된 시인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1893년 오치아이 나오부미가 아사카샤[淺香社]를 창립함에 따라 많은 준재가 배출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단카 개량운동이 시작되었는데 단카론 〈망국의 소리 亡國の音〉의 요사노 뎃칸[與謝野錢幹]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졌다. 메이지 30년대에는 사사키 노부쓰나[佐佐木信綱]가 〈고코로노하나 心の華〉를 창간하여(1898) 와카 혁신을 지향했고, 〈가인에게 주는 글 歌よみに與ふる書〉에서 만요초를 주장한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의 사생파(寫生派)도 일어났다. 1899년 요사노 뎃칸은 신시샤[新詩社]를 결성하고 다음해에 〈묘조 明星〉를 창간하여 메이지 30년대 낭만주의 시가의 중추가 되었다. 이 묘조파에서 많은 시인이 배출되었는데 〈헝클어진 머리 みだれ髮〉를 써서 세인을 놀라게 한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가 주목된다. 메이지 40년대에 이르러 자연주의 문학의 영향이 시가에도 나타나 와카야마 보쿠스이[若山牧水], 마에다 유구레[前田夕暮], 도키 아이카[土岐哀果],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등의 단카와 기타하라 하쿠슈, 요시이 이사무[吉井勇] 등의 탐미적 단카가 중심이 되었다. 다이쇼 시대에는 마사오카 시키의 사생정신을 이은 〈아라라기 アララギ〉파가 단카 시단의 주류가 되었다. 사이토 모키치[齊藤茂吉], 시마키 아카히코[島木赤彦] 등 우수한 시인이 많은데 특히 단카집 〈샷코 赤光〉(1913)의 모키치는 문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다이쇼 시대말부터 쇼와에 걸쳐 구어가(口語歌), 구어자유율 단카 운동[口語自由律短歌運動]이 활발해졌다. 이 움직임은 프롤레타리아 단카와 예술파의 단카와도 결부되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 대부분의 시인이 시류에 영합하는 가운데 도키 젠마로[土岐善], 쓰치야 분메이[土屋文明] 등은 반전적(反戰的)인 시풍을 고수했다. 전후 구와바라 다케오[桑原武夫]의 〈제2예술론 第二藝術論〉을 계기로 단카 부정론이 제기되었으나 신인의 활약에 의해 새로운 단카의 세계가 추구되었다.

 

하이쿠

메이지 20년대에 마사오카 시키에 의해 사생(寫生)을 주장하는 하이쿠[俳句] 혁신운동이 추진되었다. 이때의 하이쿠 시인들은 신문 〈니혼 日本〉이나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 ホトトギス〉를 발표무대로 활약했다. 시키 사후 이 파에서 새로운 경향의 하이쿠를 제창하는 가와히가시 헤키고토[河東碧梧桐]와 그의 제자들이 활약하여 무계자유율(無季自由律) 하이쿠로 발전했다. 한편 전통을 지키는 다카하마 교시[高浜虛子]도 하이쿠에 전념했으며 객관 사생을 중시했다. 쇼와에 이르러 호토토기스파 내부에서 단조로운 사생을 부정하고 근대적 자아나 감각을 중시하는 신흥 하이쿠 운동이 일어났다. 한편에서는 프롤레타리아 하이쿠도 시도되었다. 중일전쟁 개전 후는 전쟁 하이쿠와 인간탐구파 하이쿠의 움직임이 있었고 마침내 공백시대를 맞이했다. 전후에는 하이쿠를 비판하는 〈제2예술론〉이 하이쿠 시단에 충격을 주어 반성의 기운이 일고 새로운 하이쿠가 출현했다.

 

근대의 연극

메이지에 이르러서도 에도 이래의 가부키가 애호되었으나 메이지 10년대말부터 일어난 연극 개량의 기운이 높아졌다. 역사적 사실을 존중한 각본과 쓰보우치 쇼요 등에 의한 신사극(新史劇)이 출현하여 가부키계에 새로운 바람이 일었다. 또 자유민권운동의 정치 선전을 위해 출현한 신파극(新派劇)은 그 현대적 내용이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여 한때 성행했으나 곧 힘을 상실했다. 메이지 30년대 후반에는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깊은 프롤레타리아계의 극단과 예술적 완성을 지향하는 예술파 극단으로 나뉘어 활발한 연극활동이 전개되었고 일본의 현실을 다룬 우수한 희곡을 창작·상연하게 되었다. 전쟁중에는 활동이 어려웠으나 전후에는 많은 극단이 재개·창립되어 다채로운 연극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李賢起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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