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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나라시대-청구시대(치우천왕)

지식창고지기 2010. 2. 16. 09:42

지명 위치 찾기 : 하삭(河朔)=호족(虎族)의 안치지(安置地), 헌구(軒丘)=공손씨 유배지=황제헌원의 첫 수도

2009.06.12 15:50 | 배달나라시대-청구시대(치우천왕) | 天山歷史硏究院

http://kr.blog.yahoo.com/sppopsj/1361762 

-하삭(河朔)

 하(河)의 첫 시작부분이라는 의미가 된다. 초하루 삭이니 시작을 의미한다. 하(河)는 황하(黃河)를 가리키는 말로 보면 하삭은 황하의 시작점 부근이 되는데, 이는 서안 서쪽의 천수(天水) 서쪽 지역이 되겠다.
호족은 원래 백족의 일부로서 웅족과 싸운 족속이며, 한웅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 사해로 추방하였는데 치우천왕이 하삭에 살게 하였다라고 하므로, 호족이 날뛰지 못하도록 하삭에 금치한 것이 된다.

-헌구(軒丘)

강수를 중심으로 한 유웅국의 후손 공손씨가 감병을 잘못 하므로 유배된 장소이다. 이 헌구가 공손의 후손인 헌원이 헌구의 토착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치우천왕에게 반역하여 도전하였던 것이다.
황제헌원은 수도를 동쪽으로 탁록에 옮기고 치우천왕과 전쟁을 하였다.
헌구는 황토고원으로 추정되는데, 강수의 동북에 해당하며 탁록의 서남지역에 해당한다.

*황제헌원의 나라는 황제국(黃帝國)으로서 서안에서 태원을 비롯한 중원지역의 나라를 다스렸다. 서안의 서쪽에는 백제국(白帝國)이 있었다. 동쪽에는 창힐, 북쪽에는 대요가 있었으며 남쪽에는 축융이 있었던 것이 된다. 이들 동서남북중을 모두 다스리는 최고의 임금은 바로 치우천왕인 것이다. 치우는 천왕이며, 다른 황제, 백제, 흑제, 청제, 적제 등 오제는 천하의 임금으로서 천후(天侯) 즉 천자 등에 해당한다.

토착인은 이주민에 상대적인 말인데, 한웅이 개천을 할 당시 호족은 토착민이며, 웅죽은 이주민이었다. 황제헌원이 헌구 토착인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말은 호족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호족은 원래 백족, 백이의 일부로서 웅족과 전쟁을 한 족속으로서 황제헌원의 백성이 된 것이다. 이 호족은 이후 요, 순, 하, 은,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백성으로 지낸 것이 된다. 물론 혼혈로 순수 호족은 사라졌겠지만.

호족과 같은 족속으로 서이가 있다. 서이는 백족, 백이의 일부로서 서안를 중심으로 주나라의 주축이 된 족속이다. 서융도 원래는 백이의 일부로서 서이와 같은 족속이나 주나라에 복속하지 아니하여 서융으로 불리게 된다.

서기전7197년경 마고 분거 이래로 기본 4씨족에 의하여 5족이 형성되었고 다시 9족이 되었으며, 백족(백이)의 일부인 서이(西夷)가 주나라의 주축이 된 서기전1122년경에는 이미 6,000년 이상 흘러 혼혈화가 많이 되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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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는 천왕(天王)이지 중국식 천자(天子)가 아니다-사마천이 고대중국의 왕에 해당하는 천자로 기록한 것!

2009.04.17 22:53 | 배달나라시대-청구시대(치우천왕) | 천산역사연구원

http://kr.blog.yahoo.com/sppopsj/1361708 

사마천이 치우를 구려의 천자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어폐가 있다.
즉 천자는 고대중국의 왕을 가리키는 말인데, 치우는 당시 천하를 총괄하던 배달나라의 임금으로서 천왕이지 천왕에 의하여 봉함을 받는 제후에 해당하는 천자가 아니다.

천자라는 말은 홍범구주에 나오는데, 천자는 백성의 부모로서 천하의 왕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즉 천자는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이라는 말이다. 곧 천하왕(天下王)은 천자(天子)가 된다.

천하는 하늘아래 세상을 가리키며, 곧 지구상의 인간세계를 가리킨다. 천하의 왕을 천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천상(天上)의 왕은 무엇일까? 천상은 지구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하늘나라를 가리킨다. 천상의 왕은 바로 천제(天帝), 천왕(天王), 천군(天君)이 된다.  이에 반하여 천자(天子)는 하늘나라의 자작에 해당하는 제후라는 뜻이 된다. 즉 하늘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지방에 해당하는 지상의 나라를 다스리는 제후가 된다.

고대중국의 임금으로 왕중의 왕을 천자라고 한다. 천자(天子)는 왕(王)을 봉하고 왕아래 군(君)을 두었다. 즉 천자는 봉왕(封王)의 윗자리인 제왕(帝王)을 가리킨다. 즉 지상의 제(帝)에 해당하는 임금이다.

하늘나라의 제일높은 임금이 천제(天帝)이며, 그 아들은 천왕(天王)이 되고, 천왕의 아들은 천군(天君)이 된다. 천군아래 천자(天子)를 두는데, 이 천자는 천제의 손자도 아니고 천왕의 아들도 아니며, 천군의 형제도 아니다. 하늘나라에서 봉한 자작(子爵)에 해당하는 제후인 것이다.

한인은 천제, 한인의 아들인 한웅은 천왕, 한웅의 아들인 단군을 천군 또는 단군이라 한다. 한인의 뒤를 한웅이 이어 천제가 되었고, 단군이 한웅의 뒤를 이어 천제가 되었다. 천제나 천왕이 천자를 봉하는 것이다. 즉 천자는 천군의 아래 계급으로서 천제나 천왕이나 천군과 같은 핏줄이 아니라 봉함을 받은 임금이다. 고대중국의 임금들은 천자로서 바로 한인, 한웅, 단군의 핏줄이 아닌 봉함을 받은 제후로서의 임금이 된다.

치우는 배달나라 천왕이며, 황제헌원이 바로 천자에 해당한다. 태호복희가 진제국의 시조인데, 핏줄로 따지면 한웅의 아들이므로 천군(天君)에 해당한다. 염제신농은 직접 한웅의 아들이 아니므로 천자에 해당한다. 염제신농의 아버지인 소전씨는 유웅국의 왕이 되었는데, 한웅의 종실이라 하는 바, 만약 한웅의 아들이라면 천군이 되겠지만, 종실이라는 말은 혈족이라는 말이 되므로 천자(天子)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소전씨의 후손으로서 공손씨의 후손이 되는 황제헌원은 천군이 될 수 없으며 천자에 해당한다.

그래서 황제헌원의 나라를 이은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지, 요, 순은 모두 천자에 해당하고 천군이 아니며, 더우기 천왕이 될 수 없다. 천왕은 바로 한인천제의 아들인 한웅만이 해당된다.

한웅천왕이 살아 있을 때 한웅의 아들인 단군왕검은 천군(天君)이며, 구이의 추대를 받아 배달나라를 계승하여 임금이 되었으므로 천왕(천왕)이 된 것이다. 천지인 삼일신 사상에 의하여 천제, 천왕, 천군은 곧 삼신으로 일체이니 천왕이 곧 천제가 되며, 단군은 바로 천제가 된다.

천제>= 천왕>= 천군>> 천자(天下 王)>일반 왕(王)>군(君)>공, 후, 백, 자, 남의 제후의 순으로 적을 수 있다.

천자는 천제나 천왕에 의하여 봉함을 받은 임금이며, 일반적으로 왕이라 함은 천자에 의하여 봉해지는 왕이며, 왕의 아들은 군이 되고, 그 아래 공후백자남의 제후가 있다.

황제헌원은 처음 배달나라의 제후국인 유웅국의 왕이 되어 천하를 욕심내어 치우천왕에게 도전하였으나 100여회 전쟁 이후 자부선인의 가르침으로 도를 깨달아 진정한 신하가 되어 천자로 인정받았으며, 그 이후 300년이상 별다른 전쟁이 없이 평화시대가 계속되었고, 서기전2383년경에 출현한 요에 의하여 평화시대는 깨어지고 전쟁시대가 되었다.

요은 서기전2357년 형 제지를 멸하고 천자자리를 빼앗았는데, 천하를 욕심내어 마음대로 구주로 나누고 제왕이라 주창하면서 전쟁을 일삼았는데, 서기전2333년 한웅의 아들 단군왕검이 구이의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되어 조선을 건국하여 천왕이 되었고, 이에 요를 토벌하자 요가 굴복하여 진정한 신하가 되었으며, 이에 요임금을 천자로 인정해 주었던 것이다.

서기전2324년경 20여세에 요를 토벌하러 갔던 유호씨의 아들로 환부의 직을 수행하며 따라갔던 순은 요임금에게 협조하면서 불효자가 되었고 서기전2314년 30세에 등용되고 서기전2294년에 섭정이 되었으며, 서기전2284년에 요임금을 유폐시키고 위협하여 천자자리를 빼앗았다.

순이 처음 불효자가 되어 요임금에게 협조하여으나 결국 요를 쫓아내고 천자자리를 차지하였으며, 순임금 자신의 소행으로 단군조선과 소원하던 관계가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를 계기로 진정한 신하가 되니 천자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순임금은 말기에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영토를 침범하고 전쟁을 벌이니 유호씨는 단군조선의 사자로서 작은아들 유상과 우(禹)의 군사로 협공하게 하니 결국 순은 창오의 들로 쫓겨가 우의 군사에게 죽임을 당하여 제거되었다.

그러나 우도 곧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몰래 군사를 모으고 무기를 보수하여 자칭 하왕(夏王)이라 하면서 독단을 차렸다. 우는 단군조선으로부터 봉함을 받거나 인정받은 천자가 되지 못하였다. 끝까지 단군조선에 항거하며 가르침을 외면하니 유호씨는 하나라를 포기하였다. 이리하여 하나라는 왕조시대가 시작되었고, 단군조선에서 내놓은 자식처럼 되었다.

우는 서기전2267년 태자부루에게서 전수받은 치수법과 함께 홍범구주를 받았는데, 이 홍범구주 안에 "건용황극"이라는 글에 천자의 도리를 적은 것이 있는데, 우는 이러한 가르침을 악용하여 욕심 때문에 반역하여 참칭 왕이라 하였던 것이다. 우는 천자자리를 참칭한 것이며, 천제에 해당하는 단군으로부터 인정받은 천자가 아니었다. 이후 하나라는 단군조선의 제후국들에게 대대로 감시당하고 견제를 받았다.

서기전1766년 하나라는 걸왕의 폭정으로 결국 단군조선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나라를 멸망시킨 은나라가 건국되었다. 그러나 은나라도 곧 단군조선에 반역하여 침략전쟁을 일삼으니 진정으로 천자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하나라 은나라를 거치면서 고대중국은 단군조선에서 이탈되어갔다.

황제헌원이후 요, 순까지는 천자로 인정받았으나, 우는 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왕조시대를 열었다.

단군조선 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단군은 천제, 천왕에 해당하며, 단군왕검의 아들이 봉해진 구려, 진번, 부여는 천군(天君)의 나라에 해당하고, 그 외의 제후국들은 천자(天子)의 나라에 해당한다. 요순임금의 나라는 천군과는 다른 제후국에 해당하는 천자의 나라에 해당하는 것이다.

치우천왕은 배달나라의 한웅으로서 천왕이지 천자가 아니며, 이에 반하여 황제헌원은 배달나라의 제후로서 천자에 해당한다. 천자의 진정한 의미는 천하의 왕이라는 뜻이며, 천군의 아래에 해당하고 천왕이나 천제에 의하여 봉해지는 임금이 된다.

천자(天子)는 천제자(天帝子)가 아니며, 천제가 봉한 자작(子爵)에 해당하는 임금이다. 천제자는 천왕(天王)이며, 천왕의 아들이 천군(天君)이다. 한웅, 단군, 해모수, 고두막한, 고주몽 등은 모두 천제자(天帝子)이지 그냥 천자(天子)가 아니다!!!

요순임금은 절대로 천제자가 아니며 단지 천자에 해당한다. 그래서 요순임금은 단군(壇君)은 될 수는 있어도 단군(檀君)은 아니다!  단군(檀君)은 배달나라의 작은 임금이라는 말이며 배달나라 본 임금인 한웅천왕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제단 단자의 단군(壇君)은 단군(檀君)의 오기이거나 독단(獨壇)을 차려 하늘에 제사지내는 임금을 의미한다. 요순임금은 반역할 당시에는 단군(壇君)이 된 적이 있으며, 우(禹)는 참칭 하왕이라 하면서 독단을 차려 단군(壇君)을 도둑질 하였다. 

하나라시조 우는 천자로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였고, 은나라 탕왕은 단군조선의 후원으로 건국되어 천자로 인정받은 것이 되나 곧바로 반역하여 전쟁을 일삼았고, 주무왕은 은나라를 멸망시킬 때 단군조선은 묵인하였는 바, 묵시적으로 천자로 승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역대 하은주의 왕들 중 단군조선을 따르던 호의적인 왕들은 천자로 인정받은 것이 된다.  

한국(=하늘나라:오방위를 총괄하는 나라)은 천국(天國:하늘나라), 천제국(天帝國:하늘님나라), 천제자국(天帝子國:天王國) 또는 천손국(天孫國=天帝孫國:天君國)이며, 중국(오방위 중 중앙의 나라)은 천자국(天子國=天 子爵 國)이 된다.

*중국의 둘레에는 동국, 서국, 남국, 북국이 있게 되며, 동서남북중의 나라를 모두 포함하여 하늘나라라 하는 것이고, 서이(西夷)로서 중원(中原)을 차지한 주(周)나라를 중국(中國)이라 할 때 동국과 북국이 동이(東夷)로서 단군조선의 본국이 되는 것이다. 

진시황이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시황제라 하였는데, 이때부터 고대중국이 완전히 독립한 것이 된다.

요임금은 서기전2383년경 제곡고신의 시대에 도(陶)에 봉해지고 서기전2357년 제지를 멸하고 당(唐)을 세웠다. 그래서 요임금을 도당씨라 한다.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요임금의 아버지는 제곡고신이며, 황제헌원의 후손이 된다.

부도지에서는 도요가 천산의 남쪽에서 일어나는데 일차로 출성한 사람들의 후예이며 일찌기 제시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의 간에게서 도를 배웠으나 원래 수에 부지런하지 못하였으며, 스스로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와 허유 등이 심히 꾸짖고 거절하였으며, 요는 무리를 모아 묘예를 쫓아내었는데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씨의 고향이었고, 후대에 임검씨가 여러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그 비어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으로 흩어졌으며, 요가 곧 9주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당도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라고 적고 있다.<부도지, 제17장 참조>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요임금은 핏줄로는 황제헌원의 후손으로서 제곡고신의 아들이다.

*제지는 제곡고신의 큰 아들로서 요임금과는 형제간이다.
*황제헌원 이후 300년간 전쟁이 없다가 제곡고신이 배달나라에 전쟁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아마도 요임금이 서기전2383년에서 서기전2357년 사이에 전쟁을 일으킨 것을 두고한 말인 듯 하다.

2. 요임금은 지소씨(支巢氏)의 후예로서 백족(백이=호족) 출신이고, 배달나라 백제(서보의 간)에게서 도를 배웠다.

*지소씨는 파미르고원에서 서쪽의 서방으로 이동한 백소씨(백인종 시조)의 일파로서 사방으로 이동하기 전에 먼저 동쪽으로 출성한 족속으로, 토착인으로서 뒤에 이동해 온 황궁씨족(황인종=황족=황이=웅족)을 추격하여 죽이는 등 많이 해하였다. 한국말기에 호족과 웅족의 난이 일어나자 한웅이 배달나라를 열고 난을 평정하여 웅족은 황비족으로 삼고 호족은 쫓아내는 바 되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호족은 토착민으로서 나중에 황제헌원의 백성이 된 것으로 보이며, 황제헌원의 후대 나라는 이 호족의 피가 섞이어 그 영향 때문인지 요, 순, 하, 은, 주를 거치고 진, 수, 당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호전적이었다.
*한국에는 구족으로 그 중에 백족이 있고, 배달나라에는 헌구의 토착인의 우두머리 황제헌원이 전쟁을 일삼았고,  단군조선에는 구이 중 백이가 있었는데, 이 백족, 백이는 지소씨의 후손을 가리키며, 그 일부는 호족이었던 것으로 된다.
*서쪽 보(堡)의 간(干)은 서쪽의 작은 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배달나라로 말하면 오방위 중 서쪽의 임금인 백제(白帝)를 가리킨다. 소호금천씨는 백제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3. 묘예는 황궁씨(황족=황이)의 후예이며, 황궁씨의 뒤를 이은 유인씨(순임금의 선조)의 고향에 살던 족속이다.

*황궁씨는 마고의 후손 중 장손이며, 유인씨는 황궁씨의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린 분이고, 그 후손 유호씨가 순의 아버지인데, 단군왕검을 섬겼다.
*즉 묘예는 황궁씨의 후손으로서 단군조선 시대에 황이의 일부에 해당한다.
*황궁씨, 유인씨, 한인씨 각각 1,000년으로 3,000년이라고 부도지에서 기록하는 바, 이는 한국의 3,301년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이리하여 마지막 한인씨 시대에 7대 한인이 다스린 것이 된다.


4. 요임금은 단군왕검이 왕성을 나간 사이에 기습하였고 단군왕검의 백성들인 묘예가 피난하였다.

*단군왕검이 다스리던 부도는 바로 단웅국의 수도인데, 이때 단군왕검은 배달나라 거불단한웅의 아들로서 단웅국 왕의 외손 즉 단웅국 왕녀(공주)의 아들로서 14세이던 서기전2357년부터 섭정을 하고 있었으며, 서기전2333년까지 24년간 다스렸다.
*단웅국은 바로 염제신농씨국의 후손의 나라이다. 즉 서기전2697년 배달나라 치우천왕이 염제신농국이 쇠퇴함을 보고 평정하였고 8대 유망의 아들 괴를 단웅국에 봉하였던 것이다.
*염제신농의 13세 홍제가 단군왕검의 외조부로서 단군왕검에게 섭정을 맡겼던 것이다.
*단웅국의 위치는 공자의 출신지인 곡부 또는 공상으로서 요임금의 침입으로 동북의 아사달 즉 지금의 하얼빈으로 이동하여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게 되었다.


5. 요임금이 9주의 땅을 그어 당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제왕이라 하였다.

*요임금이 배달나라의 신하임을 거부하고 마음대로 9주(구족, 구이를 본딴 것!)를 나누어 당나라를 세우고 제왕(천자)이라 참칭한 것이다.
*그래서 소부와 허유가 요의 소행을 꾸짖고 거절하였다.


이상으로, 요임금은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황제헌원의 후손으로서 제곡고신의 아들이며, 백족(백이=>서이)인 지소씨의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고<황제헌원의 나라 백성은 백족으로서 호족이 된다>, 배달나라 서보의 간에게서 도를 배웠으나 도를 와전하여 마음대로 9주의 땅을 그어서 제왕을 참칭한 것이며, 배달나라 제후로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후 단군왕검은 구이의 추대를 받아 나라를 정비하여 조선을 건국한 후, 서기전2324년경 순의 아버지 유호씨에게 명하여 환부 권사 등 100여명과  군사를 이끌고 가서 요임금을 깨우치고 정벌하도록 하였던 것인데, 요임금은 이에 굴복하여 생명과 나라를 보존하였다. 이후 요임금은 생명과 나라를 보존하기 위하여 순을 유혹하였고 이에 순이 야망을 품고 요임금에게 협조하여 결국 등용되어 섭정하게 되었고 결국 순은 요임금을 유폐시키고 선양받아 천자가 되었다.  

이후 순임금은 단군조선의 제후가 되었고, 9년대홍수를 단군조선의 도움으로 치수하였는데, 말년에 단군조선을 배신하자 이에 단군조선의 군사(순임금의 동생 유상)와 우(하나라 시조)의 군사가 협공하여 결국 순임금이 우의 군사에게 죽임을 당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도 곧 야망으로 단군조선을 배신하고 자칭 하왕이라 하면서 독단을 차렸는데, 우의 폭정으로 단군조선의 영역으로 도망한 자가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단군조선은 하나라 백성들이 깨우치지 못하므로 포기하고 군사를 물리고 자치하도록 내버려 두었으며, 하나라 주위에 있던 제후국(구이)들로 하여금 대대로 감시하고 견제하도록 하였다.

요임금은 황제헌원의 핏줄이며, 기본적으로는 지소씨의 후손 즉 백족(백이)을 백성으로 둔 나라의 왕이었고, 태호복희의 후손들인 풍족(풍이=남이=치우천왕의 후손)들도 백성으로 포함되었다. 그래서 기록에는 요임금을 풍이출신이라고도 한다. 요임금의 무리에 속하는 우임금은 남이출신이라고 한다.

요임금은 단군조선의 사자 유호씨에게 굴복하였으므로 단군조선의 제후에 불과하였다. 이후 순임금도 단군조선의 제후였으며, 하나라는 단군조선이 가르침을 주기를 포기한 자치국으로서 조공국이며, 단군조선 제후국들의 견제와 통제를 받았다. 하나라의 단군조선에 대한 관계는 춘추전국 시대의 제후국들의 주나라 본국에 대한 관계에 비정된다 할 수 있다.

[구족=구이의 계보와 근거지]
마고(麻姑)의 후손에 황궁씨, 청궁씨, 백소씨, 흑소씨가 있었고 파미르고원에서 서기전7197년경이전에 사방으로 이동하였다. 황궁씨는 천산 쪽으로, 청궁씨는 동쪽으로, 백소씨는 서방으로, 흑소씨는 남방으로 각 이동하였다.
파미르고원의 동쪽에는 구족이 정립되었다. 즉, 대황원(천산~몽고~만주)에는 황족, 서쪽 사막에는 백족, 남쪽 해안가에는 적족, 섬지역에는 남족, 흑룡강쪽에는 현족이 있었으며, 황족에서 파생된 개마(백두산 또는 대흥안령산맥)의 남쪽에는 양족, 동쪽에는 우족, 송화강북쪽에는 방족, 서쪽에는 견족 등 모두 구족이 되었다.
이리하여 한국(桓國)은 9형제가 다스렸 9황 84민이라 하고 12한국이 되었다.

배달나라는 한국을 이어 구려의 나라로 불리며, 단군조선은 배달나라를 이어 구이의 나라로 불린다.

구이는 즉 구족을 가리키며, 단군왕검은 구이의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되었다라고 공자의 후손인 공빈이 서기전268년에 그가 지은 홍사의 서문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다.

 황제헌원은 원래 웅족으로서 황족 출신이며, 헌구의 토착인의 우두머리가 되어 즉 유웅국의 왕이 되었는데, 유웅국은 처음에는 강수근처에 있었으나 공손씨에 이르러 헌구에 있었고, 황제헌원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웅국이라 불리며, 치우천왕과 탁록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헌구는 황제헌원의 선조인 공손씨가 유웅국 시조 소전(少典)의 후손으로서 강수(姜水=서안근처 강이름=염제신농 출신지)에서 감병을 잘못하여 유배된 장소인데, 백족 즉 백이의 땅이었던 것이 된다.

요임금은 황제헌원의 나라를 이은 것이 되는데, 그 백성들이 백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단군조선은 이 백족을 포함하여 9족의 나라였던 것이다. 즉 요임금은 핏줄로는 황족 즉 황이이며, 태호복희의 후손들이 살던 지역 출신으로 풍이출신이라고도 불리우고 황제헌원의 백성인 백족을 백성으로 삼았으므로, 요임금의 나라는 황족, 백족, 풍족(남족)의 각 일부로 구성된 나라가 된다.

요임금은 태행산맥 이남의 태원을 중심으로 한 당나라이며, 그 주위에는 동쪽내륙(황하~산동~양자강)에는 남이(藍夷)와 황이, 북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땅에는 황이(黃夷), 서쪽에는 백이(白夷, 사막~서안)와 견이(田犬 夷, 삼위산~서안), 남쪽(양자강~남해안)에는 적이(赤夷)가 각각 둘러싸고 있었으며, 저 멀리 바다(북해=지금의 발해=고죽국의 동해=창해) 건너에는  황이의 일파인 양이(陽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그리고 먼 북쪽에는 현이(玄夷) 등 구이가 있었다. 

구이는 나중에 사방으로 나누어 크게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으로 4이로 불리우기도 한다. 여기서 동이는 주(周)나라 동쪽의 단군조선을 가리키는 국명이며, 남만은 적이, 서융은 백이와 견이 등을, 북적은 황이(=北夷)를 가리킨다.

주나라는 원래 서이(西夷)로서 은나라의 서쪽에 살던 이족이며, 백족이 살던 곳이고 견이가 살던 곳이다. 맹자집주에서는 주나라를 서이라 하고 견이 근처라 하는 바, 이 서이는 바로 백이의 일부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방위로 볼 때 서(西)는 백(백)이므로 서이가 곧 백이가 되는 것이다. 백이는 피부색과 얼국모습이 백인종에 해당하는 바, 주나라의 근간은 서이 즉 백이이며, 서안(西安) 중심의 나라인 것이다. 서안은 강수 근처에 있어 소전씨가 봉해진 곳이고 염제신농씨의 고향이다. 서안 근처에 소호의 백제국이 있었다고 한다. 황제헌원의 뒤를 이은 소호금천은 백제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원래 황제헌원이 공손씨의 후손으로서 공손씨가 헌구로 유배되기전의 나라는 바로 소전씨의 유웅국(有熊國)이었다. 소호금천이 황제헌원의 친자가 아니라면 바로 공손씨의 또다른 후손이거나, 소전씨와 더불어 고시씨의 후손으로 웅족출신이 된다.

소호금천씨는 서융이나 북적과 관련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데, 흉노족과 연관성이 있다. 흉노족은 원래 단군조선의 욕살 색정이 약수(弱水)에 금치(유배)된 이후 시대가 지나 서기전 7세기경부터 맹위를 떨치면서 서기전 2세기경까지 북이 또는 북적의 황동지역인 만리장성의 북쪽과 서융의 황동지역이던 티벳고원까지 황동하던 족속이다. 황제헌원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소호금천씨의 후손들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와서 뿌리를 내린 것이 되며, 전욱고양씨가 왕이 되면서 소호금천씨의 직계는 다시 서쪽으로 돌아간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