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실질적이 시조가 되는 공손헌원은 황제헌원이라고도 하는데, 서기전2698년 계해년에 유웅국이라는 제후국의 왕이되어 천자의 자리를 놓고 치우와 전쟁을 벌였다 한다.
치우는 황제헌원과 동시대 인물로 사기에서는 구려(동이)의 천자라 하고, 우리 기록에 의하면 배달나라 14대 자오지한웅으로서 서기전2706년부터 서기전2598년까지 만109년동안 다스린 천황이었다고 한다.
황제헌원은 서기전2698년부터 서기전2599년까지 100년간 다스렸다 한다.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의 죽은 해가 서기전2598년과 서기전2599년으로 1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누가 더 오래까지 살았을까?
물론 1년의 문제 밖에 안되므로 큰 문제로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황제헌원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라는 기록이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자 하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황제와 치우는 10년에 걸쳐 70여회의 전쟁을 하고 합100여차례 전쟁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도 황제헌원이 말년까지 전쟁을 하였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즉 치우를 주인 후 천자가 되어 평화시대가 되었다는 취지로 적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서기전2599년이나 서기전2598년에는 서로간 전쟁이 없었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므로 사기 등에서 적은 황제헌원이 치우를 죽였다는 기록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된다.
반대로 황제헌원은 치우천왕을 찾아 알현하는 길에 자부선인 광성자를 찾아뵙고 제자가 되어 삼황내문을 받아 도를 닦아 중국도교의 시조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 황제헌원이 치우천왕의 신하가 되었다는 기록이 정확한 것이 된다.
사기 등에서 적은 황제헌원에 대한 기록은 그들 나름대로 황제헌원을 높이고 찬양하는 뜻에서 그렇게 적은 결과로 보인다. 누가 조작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역사적 사실을 누군가가 과장하거나 가필하고 조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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