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달나라 전기 신시시대
수도는 태백산(太白山) 신시(神市)이다. 태백산은 지금의 중국 서안(西安)의 남쪽에 있는 태백산이 된다.
그래서 수도가 있는 곳이 황부(黃部)로서 배달나라의 중심으로 삼았다. 태백산 신시는 수도로서 한웅천왕이 머무는 곳이고, 주위에 해당하는 중부(中部)인 황부(黃部)의 땅은 황제(黃帝)가 다스리며, 동부(東部)인 청부(靑部)는 청제(靑帝)가 다스리고, 서부(西部)인 백부(白部)는 백제(白帝)가 다스리며, 남부(南部)인 적부(赤部)는 적제(赤帝)가 다스리고, 북부(北部)인 흑부(黑部) 또는 현부(玄部)는 흑제(黑帝)가 다스린다.
배달나라에는 오가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중앙기관에 해당하고 오가의 출신지는 곧 오부(五部)가 된다. 이 오부(五部)가 바로 오제(五帝)의 나라가 된다. 그리하여 오부의 오제는 중앙의 오가와 같거나 대체로 낮은 직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오부의 오제(五帝)는 제후(諸侯)가 되는 것이다.
오가(五加)는 지금으로 보면 장관격인데, 오가 위에 풍백, 우사, 운사의 삼사(三師)가 있어 이 삼사가 삼공(三公)의 공작(公爵)에 해당하며, 오가는 공(公)의 아래인 후작(侯爵)격이 되며, 그 아래 백작(伯爵)이 있고 그 아래 자작(子爵)이 있고, 그 아래 남작(男爵)이 있게 된다.
황제헌원의 선조가 되는 소전씨(少典氏)는 황부에 해당하는 강수(姜水)에 봉해져 유웅국의 시조가 되었고, 그 후손 공손씨가 감병을 게을리 하여 헌구(軒邱)로 유배당하였으며, 공손씨의 아들 또는 후손인 헌원이 서기전2698년경 치우천왕 시대에 왕이 되어 황제(黃帝) 자리를 차지하였다.
2. 배달나라 말기 청구시대
수도는 산동지역에 있는 청구(靑邱)이다.
신시시대에 비추어 보면 그 수도가 동쪽에 해당한다. 수도를 중심으로 중부인 황부라 하여야 하나, 전체적인 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전기와 마찬가지로 동서남북중은 그대로인 것이 되고, 다만, 수도만 동쪽에 옮긴 것이 된다.
치우천황이 수도를 청구로 옮겼는데, 이때 헌원이 유웅국을 이어 왕이 되어 치우천왕에게 도전하였고, 100여회 전쟁 후에 자부선인의 가르침을 받고서 도를 깨달아 치우천왕의 진정한 신하가 됨으로써 황부(黃部)의 천자가 되어 황제(黃帝)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 동에는 창힐(蒼詰), 북에는 대요(大堯), 서에는 소호(少皓), 남에는 축융(祝融)이 다스리고 있었다. 모두 배달나라의 제후들인 것이다.
창힐의 나라는 동이(東夷)이자 북이(北夷)로서 황이(黃夷)의 나라로서 대체적으로 발해만 동쪽이며 나중에 단군조선의 본국이 되었고, 북쪽은 황이(黃夷=北夷)의 나라로서 선비, 몽고리의 나라이며, 서쪽은 백이(白夷=西夷)의 나라이고, 남쪽은 적이(赤夷=남만)의 나라인 것이다.
문자의 전통은 배달나라 초기의 녹서(鹿書), 태호복희의 용서(龍書), 자부선인의 우서(雨書), 치우천황의 화서(花書)가 되었으며, 창힐이 이러한 문자를 황제에게 전수하였던 것이며, 단군조선에는 신전(神篆)과 가림토(加臨土)가 있었다.
이와같이 문자발전의 중심지는 배달나라 말기 청구 시대에는 치우천황의 화서와 자부선인의 우서, 창힐의 조족문자 또는 과두문자가 있어, 주로 동쪽에 해당하는 지역이 되며, 특히 창힐의 나라를 중심지로 이은 단군조선의 문자는 상형표의 문자와 함께 표음문자가 발전되어 서기전2181년에 가림토38가 정립되었던 것이다. 창힐은 배달나라의 부도문(符圖文)을 황제에게 전수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사기등의 기록에 의하면 창힐은 배달나라 문자 중에서 황제헌원에게 조족문자(鳥足文字), 과두문자를 전한 것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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