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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나라시대-태백산시대(한웅씨)-박달(배달)나라 (4

지식창고지기 2010. 2. 16. 09:43

1. 배달나라 전기 신시시대

수도는 태백산(太白山) 신시(神市)이다. 태백산은 지금의 중국 서안(西安)의 남쪽에 있는 태백산이 된다.

그래서 수도가 있는 곳이 황부(黃部)로서 배달나라의 중심으로 삼았다. 태백산 신시는 수도로서 한웅천왕이 머무는 곳이고, 주위에 해당하는 중부(中部)인 황부(黃部)의 땅은 황제(黃帝)가 다스리며, 동부(東部)인 청부(靑部)는 청제(靑帝)가 다스리고, 서부(西部)인 백부(白部)는 백제(白帝)가 다스리며, 남부(南部)인 적부(赤部)는 적제(赤帝)가 다스리고, 북부(北部)인 흑부(黑部) 또는 현부(玄部)는 흑제(黑帝)가 다스린다.

배달나라에는 오가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중앙기관에 해당하고 오가의 출신지는 곧 오부(五部)가 된다. 이 오부(五部)가 바로 오제(五帝)의 나라가 된다. 그리하여 오부의 오제는 중앙의 오가와 같거나 대체로 낮은 직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오부의 오제(五帝)는 제후(諸侯)가 되는 것이다.

오가(五加)는 지금으로 보면 장관격인데, 오가 위에 풍백, 우사, 운사의 삼사(三師)가 있어 이 삼사가 삼공(三公)의 공작(公爵)에 해당하며, 오가는 공(公)의 아래인 후작(侯爵)격이 되며, 그 아래 백작(伯爵)이 있고 그 아래 자작(子爵)이 있고, 그 아래 남작(男爵)이 있게 된다.   

황제헌원의 선조가 되는 소전씨(少典氏)는 황부에 해당하는 강수(姜水)에 봉해져 유웅국의 시조가 되었고, 그 후손 공손씨가 감병을 게을리 하여 헌구(軒邱)로 유배당하였으며, 공손씨의 아들 또는 후손인 헌원이 서기전2698년경 치우천왕 시대에 왕이 되어 황제(黃帝) 자리를 차지하였다.


2. 배달나라 말기 청구시대

수도는 산동지역에 있는 청구(靑邱)이다.

신시시대에 비추어 보면 그 수도가 동쪽에 해당한다. 수도를 중심으로 중부인 황부라 하여야 하나, 전체적인 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전기와 마찬가지로 동서남북중은 그대로인 것이 되고, 다만, 수도만 동쪽에 옮긴 것이 된다.

치우천황이 수도를 청구로 옮겼는데, 이때 헌원이 유웅국을 이어 왕이 되어 치우천왕에게 도전하였고, 100여회 전쟁 후에 자부선인의 가르침을 받고서 도를 깨달아 치우천왕의 진정한 신하가 됨으로써 황부(黃部)의 천자가 되어 황제(黃帝)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 동에는 창힐(蒼詰), 북에는 대요(大堯), 서에는 소호(少皓), 남에는 축융(祝融)이 다스리고 있었다. 모두 배달나라의 제후들인 것이다.

창힐의 나라는 동이(東夷)이자 북이(北夷)로서 황이(黃夷)의 나라로서 대체적으로 발해만 동쪽이며 나중에 단군조선의 본국이 되었고, 북쪽은 황이(黃夷=北夷)의 나라로서 선비, 몽고리의 나라이며, 서쪽은 백이(白夷=西夷)의 나라이고, 남쪽은 적이(赤夷=남만)의 나라인 것이다.

문자의 전통은 배달나라 초기의 녹서(鹿書), 태호복희의 용서(龍書), 자부선인의 우서(雨書), 치우천황의 화서(花書)가 되었으며, 창힐이 이러한 문자를 황제에게 전수하였던 것이며, 단군조선에는 신전(神篆)과 가림토(加臨土)가 있었다.

이와같이 문자발전의 중심지는 배달나라 말기 청구 시대에는 치우천황의 화서와 자부선인의 우서, 창힐의 조족문자 또는 과두문자가 있어, 주로 동쪽에 해당하는 지역이 되며, 특히 창힐의 나라를 중심지로 이은 단군조선의 문자는 상형표의 문자와 함께 표음문자가 발전되어 서기전2181년에 가림토38가 정립되었던 것이다. 창힐은 배달나라의 부도문(符圖文)을 황제에게 전수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사기등의 기록에 의하면 창힐은 배달나라 문자 중에서 황제헌원에게 조족문자(鳥足文字), 과두문자를 전한 것으로 된다.

한웅할아버지는 3*7일만에 도를 터득하신 분이다.

웅은 수컷 웅이라 하는데, 스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한웅은 큰 스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인은 하늘님으로 조화신(만물을 만든 신)이며 아버지(父)를 뜻하고

한웅은 크게 깨달은 자로 교화신(가르침을 펴는 신)이며 큰 스승(師)을 뜻하고 

단군(한검)은 크게 검소한 자로 치화신(다스림을 펴는 신)이며 임금(君)을 뜻한다.

한인, 한웅, 한검(단군) 모두 군사부 일체의 신이시다. 즉 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고 임금이었다.

다른 종교 즉 불교, 유교, 기독교의 시조는 군사부 일체가 아니다.

석가모니는 왕자였으나 가족을 뒤로하고 혼자 도를 깨우치려 출가를 하였고, 도를 깨달은 스승이었으나 임금자리와 아버지 자리를 지키지 아니하였다.

공자는 스승이고 아버지였으나 한 나라의 임금은 아니었다.

예수는 유대왕족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임금자리에 오르지 못하였고 제자를 거느린 스승은 맞으나 아버지로서의 자리는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타 다른 종교의 시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의 한인 한웅 단군은 군사부 일체로서 역할을 다하였으며, 성인(聖人)이 아니라 차원이 높은 신인(神人. 하늘님의 화신. 신선)이시다.

철학적 종교적으로 적었네요!

  

배달나라 수도는 태백산(신시)-천산과 청구(산동반도) 사이-서안 부근

2007.10.03 21:12 | 배달나라시대-태백산시대(한웅씨)-박달(배달)나라 | 천산역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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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한국의 수도는 천산!

배달나라의 수도는 태백산! 당시 태백산은 지금의 백두산이 아닌 중국내륙의 서안 부근!

배달나라 후기에 치우천황이 청구로 수도 이전!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의 탁록지전! 탁록은 북경 서쪽 부근!

요임금(유웅국의 왕. 땅이름이 도 또는 당.)이 단군왕검의 나라(단웅국)를 기습하여 점령하는 바람에 단군왕검은 서기전2333년경 무리를 이끌고 청구 지역에서 동북쪽 아사달(송화강)로 이동하여 10월3일 배달나라 정통을 이어 조선 건국!

염제신농씨는 배달나라 우가 출신으로 나중에는 산동지역 궁상(곡부)으로 옮겨 염제국을 세우고, 서기전2697년 갑자년 치우천황에 의해 유망의 아들 괴가 봉해져 단웅국이 되었으며, 서기전2357년부터 2333년까지 단군왕검이 비왕으로 섭정을 하였다.

그리하여 단군왕검은 요임금의 도를 벗어난 침략으로 산동반도 근처 단웅국으로부터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하여 조선을 건국하였던 것이며, 당시 중국내륙은 배달나라 땅이었던 것이다.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할 당시 요임금의 나라는 태원이남의 조그만 나라에 불과 하였으며, 티벳고원과 몽골지역, 만주지역 한반도 부근이 모두 조선의 무리였다. 특히 티벳고원지역은 단군조선시대에 서로 연락을 하며 유대를 이어 나갔다.

중국내륙의 태원지역 이남의 지역을 제외한 그외의 내륙은 단군조선 문화 지역이었으며, 특히 서안지역은 배달나라 초중기의 수도였으므로 청동기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