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임금은 서기전2383년경 제곡고신의 시대에 도(陶)에 봉해지고 서기전2357년 제지를 멸하고 당(唐)을 세웠다. 그래서 요임금을 도당씨라 한다.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요임금의 아버지는 제곡고신이며, 황제헌원의 후손이 된다.
부도지에서는 도요가 천산의 남쪽에서 일어나는데 일차로 출성한 사람들의 후예이며 일찌기 제시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의 간에게서 도를 배웠으나 원래 수에 부지런하지 못하였으며, 스스로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와 허유 등이 심히 꾸짖고 거절하였으며, 요는 무리를 모아 묘예를 쫓아내었는데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씨의 고향이었고, 후대에 임검씨가 여러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그 비어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으로 흩어졌으며, 요가 곧 9주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당도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라고 적고 있다.<부도지, 제17장 참조>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요임금은 핏줄로는 황제헌원의 후손으로서 제곡고신의 아들이다.
*제지는 제곡고신의 큰 아들로서 요임금과는 형제간이다. *황제헌원 이후 300년간 전쟁이 없다가 제곡고신이 배달나라에 전쟁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아마도 요임금이 서기전2383년에서 서기전2357년 사이에 전쟁을 일으킨 것을 두고한 말인 듯 하다.
2. 요임금은 지소씨(支巢氏)의 후예로서 백족(백이=호족) 출신이고, 배달나라 백제(서보의 간)에게서 도를 배웠다.
*지소씨는 파미르고원에서 서쪽의 서방으로 이동한 백소씨(백인종 시조)의 일파로서 사방으로 이동하기 전에 먼저 동쪽으로 출성한 족속으로, 토착인으로서 뒤에 이동해 온 황궁씨족(황인종=황족=황이=웅족)을 추격하여 죽이는 등 많이 해하였다. 한국말기에 호족과 웅족의 난이 일어나자 한웅이 배달나라를 열고 난을 평정하여 웅족은 황비족으로 삼고 호족은 쫓아내는 바 되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호족은 토착민으로서 나중에 황제헌원의 백성이 된 것으로 보이며, 황제헌원의 후대 나라는 이 호족의 피가 섞이어 그 영향 때문인지 요, 순, 하, 은, 주를 거치고 진, 수, 당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호전적이었다. *한국에는 구족으로 그 중에 백족이 있고, 배달나라에는 헌구의 토착인의 우두머리 황제헌원이 전쟁을 일삼았고, 단군조선에는 구이 중 백이가 있었는데, 이 백족, 백이는 지소씨의 후손을 가리키며, 그 일부는 호족이었던 것으로 된다. *서쪽 보(堡)의 간(干)은 서쪽의 작은 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배달나라로 말하면 오방위 중 서쪽의 임금인 백제(白帝)를 가리킨다. 소호금천씨는 백제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3. 묘예는 황궁씨(황족=황이)의 후예이며, 황궁씨의 뒤를 이은 유인씨(순임금의 선조)의 고향에 살던 족속이다.
*황궁씨는 마고의 후손 중 장손이며, 유인씨는 황궁씨의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린 분이고, 그 후손 유호씨가 순의 아버지인데, 단군왕검을 섬겼다. *즉 묘예는 황궁씨의 후손으로서 단군조선 시대에 황이의 일부에 해당한다. *황궁씨, 유인씨, 한인씨 각각 1,000년으로 3,000년이라고 부도지에서 기록하는 바, 이는 한국의 3,301년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이리하여 마지막 한인씨 시대에 7대 한인이 다스린 것이 된다.
4. 요임금은 단군왕검이 왕성을 나간 사이에 기습하였고 단군왕검의 백성들인 묘예가 피난하였다.
*단군왕검이 다스리던 부도는 바로 단웅국의 수도인데, 이때 단군왕검은 배달나라 거불단한웅의 아들로서 단웅국 왕의 외손 즉 단웅국 왕녀(공주)의 아들로서 14세이던 서기전2357년부터 섭정을 하고 있었으며, 서기전2333년까지 24년간 다스렸다. *단웅국은 바로 염제신농씨국의 후손의 나라이다. 즉 서기전2697년 배달나라 치우천왕이 염제신농국이 쇠퇴함을 보고 평정하였고 8대 유망의 아들 괴를 단웅국에 봉하였던 것이다. *염제신농의 13세 홍제가 단군왕검의 외조부로서 단군왕검에게 섭정을 맡겼던 것이다. *단웅국의 위치는 공자의 출신지인 곡부 또는 공상으로서 요임금의 침입으로 동북의 아사달 즉 지금의 하얼빈으로 이동하여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게 되었다.
5. 요임금이 9주의 땅을 그어 당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제왕이라 하였다.
*요임금이 배달나라의 신하임을 거부하고 마음대로 9주(구족, 구이를 본딴 것!)를 나누어 당나라를 세우고 제왕(천자)이라 참칭한 것이다. *그래서 소부와 허유가 요의 소행을 꾸짖고 거절하였다.
이상으로, 요임금은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황제헌원의 후손으로서 제곡고신의 아들이며, 백족(백이=>서이)인 지소씨의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고<황제헌원의 나라 백성은 백족으로서 호족이 된다>, 배달나라 서보의 간에게서 도를 배웠으나 도를 와전하여 마음대로 9주의 땅을 그어서 제왕을 참칭한 것이며, 배달나라 제후로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후 단군왕검은 구이의 추대를 받아 나라를 정비하여 조선을 건국한 후, 서기전2324년경 순의 아버지 유호씨에게 명하여 환부 권사 등 100여명과 군사를 이끌고 가서 요임금을 깨우치고 정벌하도록 하였던 것인데, 요임금은 이에 굴복하여 생명과 나라를 보존하였다. 이후 요임금은 생명과 나라를 보존하기 위하여 순을 유혹하였고 이에 순이 야망을 품고 요임금에게 협조하여 결국 등용되어 섭정하게 되었고 결국 순은 요임금을 유폐시키고 선양받아 천자가 되었다.
이후 순임금은 단군조선의 제후가 되었고, 9년대홍수를 단군조선의 도움으로 치수하였는데, 말년에 단군조선을 배신하자 이에 단군조선의 군사(순임금의 동생 유상)와 우(하나라 시조)의 군사가 협공하여 결국 순임금이 우의 군사에게 죽임을 당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도 곧 야망으로 단군조선을 배신하고 자칭 하왕이라 하면서 독단을 차렸는데, 우의 폭정으로 단군조선의 영역으로 도망한 자가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단군조선은 하나라 백성들이 깨우치지 못하므로 포기하고 군사를 물리고 자치하도록 내버려 두었으며, 하나라 주위에 있던 제후국(구이)들로 하여금 대대로 감시하고 견제하도록 하였다.
요임금은 황제헌원의 핏줄이며, 기본적으로는 지소씨의 후손 즉 백족(백이)을 백성으로 둔 나라의 왕이었고, 태호복희의 후손들인 풍족(풍이=남이=치우천왕의 후손)들도 백성으로 포함되었다. 그래서 기록에는 요임금을 풍이출신이라고도 한다. 요임금의 무리에 속하는 우임금은 남이출신이라고 한다.
요임금은 단군조선의 사자 유호씨에게 굴복하였으므로 단군조선의 제후에 불과하였다. 이후 순임금도 단군조선의 제후였으며, 하나라는 단군조선이 가르침을 주기를 포기한 자치국으로서 조공국이며, 단군조선 제후국들의 견제와 통제를 받았다. 하나라의 단군조선에 대한 관계는 춘추전국 시대의 제후국들의 주나라 본국에 대한 관계에 비정된다 할 수 있다.
[구족=구이의 계보와 근거지] 마고(麻姑)의 후손에 황궁씨, 청궁씨, 백소씨, 흑소씨가 있었고 파미르고원에서 서기전7197년경이전에 사방으로 이동하였다. 황궁씨는 천산 쪽으로, 청궁씨는 동쪽으로, 백소씨는 서방으로, 흑소씨는 남방으로 각 이동하였다. 파미르고원의 동쪽에는 구족이 정립되었다. 즉, 대황원(천산~몽고~만주)에는 황족, 서쪽 사막에는 백족, 남쪽 해안가에는 적족, 섬지역에는 남족, 흑룡강쪽에는 현족이 있었으며, 황족에서 파생된 개마(백두산 또는 대흥안령산맥)의 남쪽에는 양족, 동쪽에는 우족, 송화강북쪽에는 방족, 서쪽에는 견족 등 모두 구족이 되었다. 이리하여 한국(桓國)은 9형제가 다스렸 9황 84민이라 하고 12한국이 되었다.
배달나라는 한국을 이어 구려의 나라로 불리며, 단군조선은 배달나라를 이어 구이의 나라로 불린다.
구이는 즉 구족을 가리키며, 단군왕검은 구이의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되었다라고 공자의 후손인 공빈이 서기전268년에 그가 지은 홍사의 서문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다.
황제헌원은 원래 웅족으로서 황족 출신이며, 헌구의 토착인의 우두머리가 되어 즉 유웅국의 왕이 되었는데, 유웅국은 처음에는 강수근처에 있었으나 공손씨에 이르러 헌구에 있었고, 황제헌원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웅국이라 불리며, 치우천왕과 탁록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헌구는 황제헌원의 선조인 공손씨가 유웅국 시조 소전(少典)의 후손으로서 강수(姜水=서안근처 강이름=염제신농 출신지)에서 감병을 잘못하여 유배된 장소인데, 백족 즉 백이의 땅이었던 것이 된다.
요임금은 황제헌원의 나라를 이은 것이 되는데, 그 백성들이 백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단군조선은 이 백족을 포함하여 9족의 나라였던 것이다. 즉 요임금은 핏줄로는 황족 즉 황이이며, 태호복희의 후손들이 살던 지역 출신으로 풍이출신이라고도 불리우고 황제헌원의 백성인 백족을 백성으로 삼았으므로, 요임금의 나라는 황족, 백족, 풍족(남족)의 각 일부로 구성된 나라가 된다.
요임금은 태행산맥 이남의 태원을 중심으로 한 당나라이며, 그 주위에는 동쪽내륙(황하~산동~양자강)에는 남이(藍夷)와 황이, 북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땅에는 황이(黃夷), 서쪽에는 백이(白夷, 사막~서안)와 견이(田犬 夷, 삼위산~서안), 남쪽(양자강~남해안)에는 적이(赤夷)가 각각 둘러싸고 있었으며, 저 멀리 바다(북해=지금의 발해=고죽국의 동해=창해) 건너에는 황이의 일파인 양이(陽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그리고 먼 북쪽에는 현이(玄夷) 등 구이가 있었다.
구이는 나중에 사방으로 나누어 크게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으로 4이로 불리우기도 한다. 여기서 동이는 주(周)나라 동쪽의 단군조선을 가리키는 국명이며, 남만은 적이, 서융은 백이와 견이 등을, 북적은 황이(=北夷)를 가리킨다.
주나라는 원래 서이(西夷)로서 은나라의 서쪽에 살던 이족이며, 백족이 살던 곳이고 견이가 살던 곳이다. 맹자집주에서는 주나라를 서이라 하고 견이 근처라 하는 바, 이 서이는 바로 백이의 일부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방위로 볼 때 서(西)는 백(백)이므로 서이가 곧 백이가 되는 것이다. 백이는 피부색과 얼국모습이 백인종에 해당하는 바, 주나라의 근간은 서이 즉 백이이며, 서안(西安) 중심의 나라인 것이다. 서안은 강수 근처에 있어 소전씨가 봉해진 곳이고 염제신농씨의 고향이다. 서안 근처에 소호의 백제국이 있었다고 한다. 황제헌원의 뒤를 이은 소호금천은 백제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원래 황제헌원이 공손씨의 후손으로서 공손씨가 헌구로 유배되기전의 나라는 바로 소전씨의 유웅국(有熊國)이었다. 소호금천이 황제헌원의 친자가 아니라면 바로 공손씨의 또다른 후손이거나, 소전씨와 더불어 고시씨의 후손으로 웅족출신이 된다.
소호금천씨는 서융이나 북적과 관련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데, 흉노족과 연관성이 있다. 흉노족은 원래 단군조선의 욕살 색정이 약수(弱水)에 금치(유배)된 이후 시대가 지나 서기전 7세기경부터 맹위를 떨치면서 서기전 2세기경까지 북이 또는 북적의 황동지역인 만리장성의 북쪽과 서융의 황동지역이던 티벳고원까지 황동하던 족속이다. 황제헌원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소호금천씨의 후손들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와서 뿌리를 내린 것이 되며, 전욱고양씨가 왕이 되면서 소호금천씨의 직계는 다시 서쪽으로 돌아간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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