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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대-마고성시대(마고,궁희,소희,황궁 청궁 백소 흑소)

지식창고지기 2010. 2. 16. 09:45

1. 단군조선의 기본 구조

(1) 天符壇
단군왕검은 마고본성의 법을 취하여, 태백산(백두산)의 머리에 천부단을 설치하였다.

(2) 四方堡壇
천부단이 있는 태백산을 중심으로 각 사방에 보단을 설치하였는데, 각 보단이 있는 곳으로 즉 동쪽에는 예국(濊國)을 두었고, 남쪽에는 마한을 두었으며, 서쪽에는 번한을 두었고, 북쪽에는 진한을 두었다.

(3) 三條道溝
각 보단 사이는 각각 3겹의 도랑길로 통하게 하였으며, 각 도랑길의 사이는 1,000였다.

(4) 十二關門
각 도랑길의 좌우에 관문을 두어 모두 12개의 관문을 설치하였다.

위의 단군조선의 기본구조가 마고본성의 기본구조가 된다. 다만 각 보단 사이에 연결된 3겹의 도랑길의 폭이 단군조선의 영역에서는 각 1,000리가 되는데, 마고본성(麻姑本城)에서는 그 폭이 얼마인지 나타나고 있지 않다.

2. 마고본성(麻姑本城)기본 구조

(1) 천부단 : 마고성의 중앙에 천부단을 두어 마고에게 제사지내고 제천행사를 벌인 것이 된다.

(2) 사방보단 : 마고성의 동서남북에 각 보단을 설치하여 북보는 황궁씨, 동보는 청궁씨, 남보는 흑소씨, 서보는 백소씨가 각각 맡았다.

(3) 삼조도구 : 각 보단과 보단 사이에는 3겹의 도랑길이 있었다.

(4) 십이관문 : 각 도랑길의 좌우에는 성문을 설치하여 모두 12관문을 두었다.

마고성과 단군조선의 기본구조는 같다. 다만, 도랑길의 사이가 마고성에서는 얼마인지 나타나지 않으나 단군조선의 삼조도구에서 각 도구(도랑길)의 사이는 1,000리라 한다.





한국의 정통성은 마고할미라 불리우는 마고(麻姑)의 역사로부터 시작된다!

2009.03.24 22:19 | 한국시대-마고성시대(마고,궁희 소희,황궁 청궁 백소 흑소) | 천산역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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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은 마고의 계보(족보)를 정립하고 제족을 방문하면서 결속을 다졌고, 특히 수메르지역과 인도지역까지 순행하게 하여 가르침을 전파하는 등 서로 연락을 하고 10년마다 신시를 열어 문물을 교류하며 마고 후손 중 장손인 종주국으로서의 지위를 행사하였다.

즉 단군은 하늘님의 권세 즉 천권(天權)을 대행하는 임금으로서 마고 후손의 종주로서 제족을 순행하고 자치하게 하여 파미르고원 동쪽 모두를 포함하는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으며, 마고의 법을 이어 태백산에 천부단을 설치하고 사방에 보단을 설치하여 나라의 기본 틀을 잡았고, 큰 강에 뗏목을 띄워 연락 소통하였다.

단군조선은 단국(배달, 박달)을 계승하였고, 단국은 한국(桓國)을 계승하였으며, 한국은 마고의 나라를 계승하였다.

마고의 후손으로 크게 4족이 있으니, 황궁씨족, 청궁씨족, 백소씨족, 흑소씨족이다.
서기전7197년경 황궁씨족은 파미르고원의 동북지역인 천산지역으로 분거하고, 청궁씨족은 파미르고원의 동쪽인 운해지역(양자강 유역에 걸치는 지역)으로 분거하고, 백소씨족은 파미르고원의 서쪽인 수메르지역으로 분거하고, 흑소씨족은 남쪽인 인도지역으로 분거하였다.
그리고 백소씨족의 일파인 지소씨족은 분거시대 이전에 이미 동쪽으로 나가 선착하였고, 흑소씨족의 일파가 황궁씨족을 따라 동북지역으로 분거한 것이 된다.

이후 파미르고원의 동쪽에 해당하는 황궁씨족과 청궁씨족이 분파되어, 황인종인 황궁씨족의 황족에서 양족, 우족, 방족, 견족이 나왔고, 청궁씨족에서는 홍인종인 적족, 청인종인 남족이 나온 것으로 된다. 지소씨족은 백인종인 백족이 되고, 흑룡강쪽으로 분거한 흑소씨족의 일파는 현족으로 흑인종이 된다.

그리하여 파미르고원의 동쪽에 9족이 형성되었다. 이 9족이 단군조선 시대에는 9이라 불리운다. 파미르고원의 동북지역과 동쪽으로 분거한 마고 후손의 모두를 가리킨다.

서기전6197년경까지 약1,000년에 걸쳐 정착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서기전6,500년경부터 이미 파미르고원에서의 문명을 계승하여 강(江)을 중심으로 한 지상의 문명시대가 시작된 것이 된다. 파미르고원에서도 천부단이 있었고 4보단이 있었으며, 보와 보 사이에 3겹의 물길이 있었고 모두 12개의 성문을 두었는데, 성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것이 되므로, 강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며 성을 지어 살았던 것이 된다.

요하문명권에 나타나는 임신한 여신상과 신전은 바로 한국, 배달나라 때 마고를 모시는 신전으로서 삼신을 모시고 기도하는 종교생활을 하였던 것을 바로 나타내는 것이 된다.

*한,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은 "하늘, 땅, 사람, 너(여자), 다 서(완성. 준비완료), 어버이, 일구(일하다), 얻어, 아해(아이), 열"이란 말로서, 1.하늘과, 2.땅과, 3.사람이, 4.배우자도, 5.완비되었으니, 6.어버이가 되어, 7.일구어, 8.얻어서, 9.아이를, 10.열어 세상으로 나가게 하라라는 뜻이다. 우리 숫자에 자손을 번창시키라는 주문이 들어 있다. 

마고의 장손인 종주국인 한국은 이미 서기전6,500년경부터 요하문명을 이루었다. 요하는 발해만 북쪽의 요하상류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단군조선 시대 구려국의 땅에 해당한다. 구려는 단군왕검의 둘재 아들인 부소가 봉해진 나라이다.

황하문명은 태호복희와 여와에 의하여 서기전3500년경부터 시작된다.
수메르문명은 백소씨족이 정착한 서기전6197년경 이전부터 시작된다.
인더스문명도 흑소씨족이 정착한 서기전6197년경 이전부터 시작된다.

아마도 요하문명과 비슷한 시기에 이미 문명시대가 시작된 것이 된다. 상한선은 서기전7197년경까지 오를 수 있다.

만약 서기전7197년경 이전의 문명권이 밝혀진다면, 이는 마고시대의 성밖에 이루어진 문명이 되며, 마고성은 바로 세계 문명의 중심지인 낙원수도(파라다이스)가 되는 셈이다.

연대기로 따진다면, 마고시대는 서기전70379년경부터 시작되고, 한국시대는 서기전7197년부터 시작되며, 단국시대는 서기전3897년부터 시작되고, 단군조선 시대는 서기전2333년부터 시작된다. 

서기전3500년경부터 시작되는 황하문명은 단국시대 제후국에 해당하는 태호복희의 나라가 이룬 문명을 시작하여 제후국인 염제신농국(단웅국), 제후국인 황제헌원국(유웅국),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요, 순, 하, 은, 주나라의 문명이 된다.

고대 요하문명은 서기전6500년경부터 시작되어 단군조선말기까지 이어진다.

황하문명을 이은 고대중국의 문화는 물론, 수메르지역과 인도지역에 한국의 문화 역사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가 된다.

고대중국의 문자인 한자는 배달나라 때 전파된 것이며, 왕국의 체제(천자제도)는 단군조선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며, 그외 문화풍습이 유사하고, 심지어 도교나 유교는 바로 배달나라와 단군조선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 발전시킨 것이다.

수메르문명에 나타나는 태음력, 12진법, 60진법, 씨름하는 풍습은 모두 마고, 한국, 배달, 조선의 문명 문화를 전수한 것이며, 인도지역의 문명 또한 마고, 한국, 배달, 조선의 문명 문화를 전수한 것이다.

특히 인도지역의 아리안족과 이란지역의 아리안족 문화는 단군조선 시대 백인종에 해당하는 백족의 일파가 서기저2200년경부터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이루어진 문명이 된다.

단군조선이 북부여로 넘어가면서 중국 땅에 진시황이 폭정을 일삼고 정복전쟁이 일상화 되면서 백성을 위한 정치는 색이 바래지고 서로 다투면서 죽이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다. 특히 파미르고원 동쪽의 전쟁의 역사는 주로 고대중국의 전쟁광인 참칭 왕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리하여 낙원시대였던 마고시대의 법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어 천성을 잃고 서로 다투는 일이 일상화 되니, 단군조선의 홍익인간 시대도 아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고구려와 신라는 단군의 유법을 계승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였다. 고구려는 북보의 땅인 진한 땅을 회복하였고, 신라는 단군조선의 남보의 땅인 마한 땅의 남동쪽의 서라벌에 나라를 세우고 처음 북부여의 거서간의 나라로서 그리고 고구려를 섬기면서 단군조선의 풍습과 제도를 시행하였다.

신라는 단군조선의 순행제도를 이어, 마랑직(馬朗職)을 두어 멀리 순행하게 하였는데, 천산지역과 티벳, 양자강에 걸치는 지역은 물론 인도지역과 수메르지역까지 순행하여, 천문, 지리, 역수(曆數)와 박물(博物)을 공부하게 하였는데, 이는 황궁씨 시대부터 사해(四海)를 통하여 화합(和合)하고 인간세상을 하나의 법(法)에 맞추는 유업이었던 것이다.

신라에는 유독 구법승이 많았던 이유가 바로 마랑제도에 의한 것이며, 단군조선의 유법을 이은 것이고, 마고시대 이후 황궁씨 시대의 한국시대로부터 이어진 유습인 것이다.

그러나 서로 왕래가 오래 동안 끊어지고 전쟁의 풍조가 만연하여 제족이 각각 나라를 칭하고 오랜 세월에 전란이 반복하니 겨레가 종횡으로 나뉘고 말이 잡다하게 변하여 천부(天符: 근본이 원래 하나임을 나타내는 징표)는 거의 망각하기에 이르고, 혹 알더라도 변형되어 소리가 다르니 마랑들의 원행(遠行)이 심히 어려워 순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라고 부도지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고대중국과 인도지역을 순행하여 위업을 이룬 고승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