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서하(西夏, A.D.1038 ~ A.D.1227)
- 권력에 도취되면 필멸(必滅)한다. 신흥강국이었던 서하의 사례.
서하는 중국 서북부의 당항족(黨項族) 탁발씨(拓拔氏)가 건립한 봉건 왕조다.
서기 1038년, 이원호(李元昊)는 요나라와 송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칭 황제가 되어 국호를 대하(大夏)라 하고 수도를 흥경부(興慶府 - 지금의 영하영하 은천은천)에 정하였다. 하지만 송나라의 서쪽에 세워졌기 때문에 역사에서는 이 나라를 ‘서하’라고 부른다.
서하 건립 후, 이원호는 끊임없는 조치를 취하여 정권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경제 발전에도 노력을 기하여 새로 건립된 국가는 한층 더 강성해졌다. 그는 또한 송나라와 요나라와의 잇따른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여 북송 및 요나라와 함께 대립하며 존재하는 국면을 형성했다.또한 서하는 번학(蕃學)을 세우고 서하문자를 창제하여 점차 강렬한 민족 특색을 갖춘 서하 문화를 발전시켰다. 1139년, 인종(仁宗) 이인효(李仁孝)가 즉위한 후 서하는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번영 발전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인종 후에 서하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권력의 중심이 안정되고 강대한 데에서 권세를 쥐게 된 신하들은 전횡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군대는 쇠약해지고 정치는 부패했다. 궁중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 왕이 폐위되거나 새로 옹립되는 사태가 끊임없이 발생해 서하는 더욱 허약해졌다.
여기 더해 새로이 일어난 몽골은 금나라로 진격하여 후환을 없앤 다음, 서하에 대한 침략을 감행했다. 이에 서하의 마지막 황제 이현(李睍)은 군사들과 백성들을 거느리고 몽골에 대한 항쟁에 온힘을 기울였지만, 끝내 징기스칸의 맹렬한 공격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1227년 6월, 이현이 항복함으로서 서하는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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