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금(金, A.D.1115 ~ A.D.1234)

지식창고지기 2010. 5. 7. 12:01

(21) 금(金, A.D.1115 ~ A.D.1234)


- 한족의 나라와 같아졌던 여진족의 나라, 금나라

금나라는 요나라 통치 시절 송화강(松花江) 이북 지역의 여진족 부락이 강성해져 생긴 나라다.

서기 1115년, 여진족인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는 안출호수(安出虎水 - 지금의 흑룡강성 아십하阿什河 유역) 일대에서 건국하여 국호를 ‘대금(大金)’이라 하였다. 그 후 법령을 반포하고 문자를 창제하며 맹안모극제도(猛安謀克制度 - 백성들의 통제 및 징병을 위한 제도)를 실시하여 금나라는 급속도로 강대해졌다.

1120년, 송나라와 금나라는 연합하여 요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5년 후에 금나라의 군대가 응주에서 요나라의 천조제를 사로잡아 요나라를 멸망시켰다. 뒤이어 금의 공격과 침략의 목표는 북송을 향했고, 요를 멸한 그 해에 대군을 일으켜 송나라를 침공하였다.

1127년 금나라는 북송을 멸하고, 계속하여 공격을 늦추지 않으니 이에 부패하고 무능한 남송은 1141년에 금나라와 굴욕적인 ‘소흥화의’(송나라가 금나라의 신하가 되기로 하는 조약)를 체결하였다. 이로써 금은 중원에서의 통치 권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요나라와 송나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금나라의 통치자들은 끊임없이 한족화 되어갔다. 이에 따라 1161년 금나라 세종 즉위 후에는 폭넓게 한족 관리들을 흡수하여 군사와 정치에 참여시켰다. 경제적으로도 농업을 중시하고 시장을 개방하며 세금과 관련된 법률을 규정하고 동전을 주조하니, 경제가 크게 번영하고 발전하였다.

금나라 후기에 정치는 부패하고 중원의 한족 백성들과 여진 하층민에 대한 통치자들의 약탈과 압박이 너무나 잔혹하여 이들 백성들의 강렬한 저항을 불러왔다. 이리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 금나라의 통치는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1234년, 금나라는 송나라와 몽골의 연합군에게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