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민족 영토

역사연구가 정형진의 고대문화 새로 읽기 <13> 꿈속의 고향 박달촌에 가다

지식창고지기 2009. 8. 7. 08:18

역사연구가 정형진의 고대문화 새로 읽기 <13> 꿈속의 고향 박달촌에 가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행운 '백단촌'
공공족 동북이주 자취 쫓아간 中 북경 밀운현 답사길에서
상고시대 '박달촌' 흔적 찾아내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백단촌당지부'와 '백단촌민위원회' 간판. 백단촌이라는 지명을 보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우리 고대사와 밀접히 연관된 '박달촌'의 중국식 표기였기 때문이다.
한국상고사의 매듭을 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단군신화의 주 무대를 밝힌다든지, 환웅이나 웅녀의 존재를 역사적 사실로 확정짓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선학들이 벌써 이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정설은 없다.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이 문제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해결해보고자 오랜 세월 고민했다. 필자는 '삼국유사' 등에서 자장스님이 언급한 공공족이 환웅족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많은 준비를 하고난 다음 상고사의 현장을 답사했다. 오늘은 그 답사 중에 있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2005년 2월 19일, 마침내 공공족이 한원(韓原)에서 동북 지역으로 이주한 흔적을 답사하는 날이었다. 전날 대릉하의 발원지인 능원(凌源)에서 버스를 타고 승덕(承德)을 거쳐 북경시 밀운현(密云縣)으로 향했다. 승덕을 출발할 때가 오후 5시였다. 버스는 산맥 사이로 형성된 그리 넓지 않은 회랑을 한동안 달렸다. 그러다가 산길로 접어들었고 이윽고 연산산맥이 가로놓여 있음을 알았을 때쯤은 어둠이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7시40분께 밀운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가장 번화한 곳에 내려달라고 했다. 한참을 가서 택시는 오성급 호텔이 있는 곳에 멈추었다. 이곳이 밀운현의 중심인 듯했다. 호텔 주변에는 밀운현청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서 호텔을 나서다가 정문 옆에 있는 사무실 현판에 시선이 갔다. 순간 전율을 느꼈다. 붉은 색과 검은 색으로 '백단촌당지부(白檀村黨支部)' '백단촌민위원회(白檀村民委員會)'라고 쓴 현판이 보였다. '백단'은 곧 '박달'이다. 민족의 뿌리를 추적하는 데 정성을 쏟았기 때문일까. 캄캄한 밤에 난생 처음 방문한 도시에서 하룻밤 묵을 곳을 정했는데, 그곳이 박달촌이라니. 마치 깜깜한 밤에 멀리 있는 표적을 향해 쏜 화살이 중앙에 명중한 기분이었다. 야릇한 인연의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시공간을 초월하여 상고시대의 박달촌으로 날아갔다. 이곳이 동북 지역 최초의 박달촌이구나.

사실 그러한 지명이 그곳에 있으리라고는 오랫동안 준비하면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문헌 자료를 뒤지면서 확보한 자료는 현재 북경시에 속한 밀운현이 과거에 단주(檀州)로 불렸다는 사실과 밀운현에 공공성(共工城)이 있었다는 정도였다. 그 현판을 보는 순간 상고사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십수년 간 노력한 고생이 한 송이 꽃이 되어 피어났다.

다음날 아침 밀운수고의 서북쪽 상류 지역에 있는 공공성을 찾아갔다. 밀운현은 화북평원 최북단 도시이다. 밀운에서 북경까지는 남쪽으로 67㎞이다. 요임금 말년에 유릉으로 이주해온 공공족은 화북평원과 연산산맥이 만나는 이곳에 터를 잡았다. 중국의 역사에서 북경지역에 처음으로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 다음에는 숙신이 중국 동북 지역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고, 이어서 주나라 초기의 북연과 한국(韓國)이 등장한다. 이 무렵 (고)조선도 문헌에 등장한다. 주나라 초기에 현재의 북경 남쪽 50㎞지점인 고안(固安)의 한성(韓城)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한국(韓國)도 공공족과 관련 있다. 이들 공공족의 문화코드를 가지고 우리 고대문화를 이해하면 많은 부분의 의문이 풀린다.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저자
  입력: 2009.07.09 20:51 / 수정: 2009.07.09 21:16
ⓒ 국제신문(www.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