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금관 부속구.(호암미술관 소장) 제일 오른쪽 장식물에서 보듯 전체적으로 금개구리 형상이다. | |
이 금와 출생신화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해하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금와는 곤연가에 있는 지모신의 대석신전의 신녀(여사제)가 낳은 아이다. 어쩌면 그 아이는 부루와 신녀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일 수도 있다. 금와를 낳은 큰 돌과 유사한 바위신앙 흔적을 길림성 동남쪽에 있는 주작산(朱雀山) 8부 능선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바위는 필자가 부여지역을 답사할 때 발견한 것으로 송화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금와왕의 탄생 이야기는 동부여인의 이동과 함께 남쪽으로 전달되어 경남 양산 통도사의 자장암에 금와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의 '변화금와(變化金蛙)'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축서산 통도사의 자장암 곁의 커다란 암벽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는데 그 속에 작은 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이 되기도 하여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중략)…세상에 전하기를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으로 자라게 한 것이다."
길림성 주작산에 있는 금개구리 형상의 바위가 송화호(松花湖)를 내려다보고 있다. | |
필자는 이곳의 금와보살 전설은 자장율사가 부여계의 이동과 관련된 흔적을 불교와 습합시켜 남긴 것으로 이해한다. 동부여인들이 남하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물이 또 하나 있다. 동부여의 금와왕 출생 이야기에 나오는 금개구리에도 보인다. 이 유물은 금으로 만든 개구리로 고령에서 출토되었다.
이것에 대해서 '고분미술'에서는 "금관 부속 장식으로 믿어지는 것으로…(중략)…전체적으로 금판 장식은 소머리 형으로 보이는데, 곡옥이 소뿔의 모습을 하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고 하였으나 사진의 제일 오른쪽의 것에서 보듯이 금개구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 같이 동부여의 금와왕 전설과 관련된 이야기가 통도사의 바위신앙과 관련해 전해지기도 하고, 이야기 소재인 금개구리가 가야의 왕관 장식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는 동부여인들이 남하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자료다. 금개구리와 관련된 문화는 전연의 모용외(285년)나 모용황(346년)이 부여를 공격하여 심대한 타격을 입혔을 때 남하한 주민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