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민족 영토

역사연구가 정형진의 고대문화 새로 읽기 <17> 요동과 한반도 고인돌

지식창고지기 2009. 8. 7. 08:21

역사연구가 정형진의 고대문화 새로 읽기 <17> 요동과 한반도 고인돌
"BC 11세기 한반도 들어온 辰人들이 고인돌 문화 남겨"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요서지역 후기 신석기문화를 뜻하는 홍산문화권에 속하는 우하량의 돌널 무덤 유적.
한반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있다. 그러나 고인돌은 우리만의 독자적인 문화유산은 아니다. 고인돌은 세계적으로는 북유럽과 서유럽, 지중해 연안을 거쳐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하며, 인도와 동남아시아, 필리핀과 대만 등에도 있다. 한반도 주변에는 중국 요동·산둥 반도와 저장성 해안 일부, 그리고 일본 북큐슈에 고인돌이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고인돌은 어디에서 시작해서 확산됐을까? 한반도 고인돌의 기원에 관해서는 남방기원설과 북방기원설, 그리고 자생설이 있다. 남방기원설은 고인돌이 쌀농사와 함께 북상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벼농사 문화의 원류에 해당하는 양쯔강 유역과 회하(淮河) 하류에서는 고인돌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한반도의 고인돌에서는 남방 전래의 부장품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방기원설은 한반도 고인돌이 북방의 청동기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 주목한다. 북방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북방식 고인돌이 중국의 랴오닝성의 돌널무덤으로부터 발전했다고 본다. 최근에 요서지역의 후기 신석기 문화인 홍산문화 시기에 이미 돌널무덤이 유행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고인돌의 발생을 홍산문화와 연결해서 생각할 필요가 생겼다.

그렇다면 한민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요동의 고인돌과 한반도의 그것은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고교 역사 시간에 배운 대로 그것은 고조선 주민이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과연 그럴까?

최근 홍산문화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고조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필자는 후기 홍산문화를 계승한 요서의 하가점 하층문화인과 중원에서 북경 공공성을 거쳐 이주한 환웅세력이 연합해서 단군숙신이라는 정치체를 형성했다고 본다. 이들이 중국의 순임금시기부터 기원전 11세기경까지 중국 문헌에 동북지역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는 숙신이다.

이승휴는 '제왕운기'에서 '전·후조선기의 공백기가 시작되는 은나라 무정 8년에 단군이 아사달산으로 이주했으며, 그 후 164년의 공백기를 거쳐서 후조선이 성립되었다'고 했다. 당시 동으로 이주한 단군은 요서의 의무려산 이동 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고죽국이 있었던 난하 지역에 기자의 무리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정치체가 등장하는데 그들이 바로 '관자'에 등장하는 조선이다. 즉 기원전 11세기경 이후 한동안은 숙신(이들 중 요동을 거쳐 한반도로 이주한 이들을 진인이라 한다)은 요동에, 조선은 요서의 난하 동쪽에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쥬신족이라는 광의의 범주에는 숙신과 조선이 동일하지만 문헌상으로만 보았을 때 분명히 숙신이 먼저 등장하고 조선은 기원전 10세기 이후에 등장한다.

중국 측에서는 요동에 있는 가장 큰 고인돌인 개주시 웅악(熊岳)의 석붕산 고인돌이 기원전 1000년경에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단군숙신이 요동으로 이주한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이와 비슷한 시기의 서북한 지역의 탁자식 고인돌이나 그 후의 한반도 남부 고인돌은 이들 숙신인의 또 다른 호칭인 진인(辰人) 혹은 진국(辰國)의 문화유산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기원전 3세기 초 연나라 장수 진개의 공격을 받기 전까지 고조선은 요서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 고조선의 세력범위가 요동까지 미치고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 시기는 고인돌 축조시기가 아니다.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저자
  입력: 2009.08.06 21:08
ⓒ 국제신문(www.kookje.co.kr),